공주에서 발굴된 유물, 왜 중앙으로 가져가나
공주에서 발굴된 유물, 왜 중앙으로 가져가나
  • 송두범
  • 승인 2024.07.13 0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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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범칼럼] 유물은 발굴된 곳에 둘 때 역사적 가치 살릴 수 있어
백제 무령왕릉 발굴 당시 현장 녹음 테이프, 공주박물관이 제자리
공주 무령왕릉 발굴 당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가 발견됐으나 국가유산청으로 들어갔다. 

공주에서 생산하고, 공주에서 발굴한 유산은 공주에 두어야 한다.

올해 4월쯤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기 굉장한 것이 있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다. 서둘러 가보니 그곳에는 1971년 무령왕릉을 발굴하러 들어간 분들의 목소리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고 재생을 위한 오디오기기 조차도 찾기 어려운데 마침 그 집에는 이를 들어볼 수 있는 오디오가 있었다. 사연인즉 이 카세트테이프 등은 이집을 매입한 젊은 부부가 창고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하였다.

여러 차례 원 소유자 자녀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는 카세트테이프의 존재를 공주대학교 모교수에게 말씀을 드렸고, 여러 차례 소장자를 설득한 후에 모교수와 함께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기회를 가졌다.

1971년 7월 8일 녹음된 “백제25대 무령왕릉 발굴현장에서(부장품 출토), 김원용 박사, 안승주 사대”라는 제목이 적힌 카세트테이프는 50년 전 무령왕릉 내부에서 나누는 목소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녹음되어 있었다. 김원용 박사는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었고, 안승주 교수는 공주사범대학 교수였다. 처음에는 왕릉인지조차 몰랐고, 22대? 24대? 등으로 설왕설래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녹음되어 있었다.

무령왕릉으로 진입한 후 지석을 발견하고 나서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 영62세...’등으로 읽어나갔으나, 당시에는 ‘사마왕’이 누군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연대표를 확인 후에도 성왕이다 무령왕이다논란을 벌이다 결국 무령왕으로 밝혀지는 과정이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었다.

공주박물관에 기증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선물까지 준비해온 모교수님은 카세트테이프 녹음을 들은 후 이 자료는 공주를 위해 매우 소중하다. 이 카세트테이프를 공주박물관에 기증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이유로 첫째, 공주박물관은 무령왕릉에서 나온 모든 자료를 수장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이다. 둘째, 공주박물관은 왕릉 발굴 당시 중앙박물관과 함께 중심적 조사기관이다. 셋째, 이 자료는 공주에서 생산된 자료이므로 공주에서 보관하여 공주를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공주소재 기관에 기탁하면 기탁자에 대한 예우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섯째, 만약 공주소재 기관에 기탁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에는 관리자로서 녹음 자료의 사본을 남겨 보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고, 우리는 소장자에게 이를 설명한 후 공주박물관에 기증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소장자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으로 그 자료를 넘겨버렸다. 허탈했지만 할 수 없었다. 이 카세트테이프를 디지털자료로 복사한 다음 되돌려 주겠노라 했다고 한다.

이 집 창고에는 카세트테이프 이외에도 공주시내 제민천 보수과정, 마을금고 설립과정, 새마을운동자료 등 무령왕릉 발굴자료 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근대 공주의 변화과정을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들도 다수 있었고, 우리는 이 자료를 공주시에서 설립하고 공주대학교에서 운영 중인 ‘공주학연구원’에 기증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기증의사만 있다면 공주학연구원 자료담당 교수가 와서 목록을 정리하고, 디지털화하고 원자료는 돌려주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마침 공주와 관련한 자료를 기증해달라는 공주학연구원 현수막이 시내 곳곳에 걸려 있던 시기였다.

공주와 관련한 자료가 국가기관에 있든 공주소재 기관에 있든 그것이 무슨 문제냐 라고 하실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무령왕릉에서 발굴한 수많은 유물을 서울로 가져가려 했을 때, 왜 공주시민들은 무령왕릉 발굴유물이 공주에 있어야 한다고 들고 일어났을까? 공주시민들이 유물을 지켜낸 결과 무령왕릉 발굴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박물관을 새로 지었고(현, 충남역사박물관) 덕분에 공주는 무령왕의 도시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유물은 발굴된 지역에서 보존하면서 역사성을 살려야 한다. 무조건 서울로 가져가는 곳은 또다른 방식의 중앙집권이 되면서 지역과의 균형을 이루는 게 불가능해진다. 
유물은 발굴된 지역에서 보존하면서 역사성을 살려야 한다. 무조건 서울로 가져가는 곳은 또다른 방식의 중앙집권이 되면서 지역과의 균형을 이루는 게 불가능해진다. 

이번 카세트테이프는 공주시민들이 지켜낸 무령왕릉 발굴현장을 녹음한 것이기에 더더욱 공주에 남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협동조합 이사장은 공주의 자료라는 인식보다는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대학원 동료와의 사적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이사장은 우리가 소장자를 설득하는 자리에도 함께 했고 개인적으로도 이 자료들이 공주에 있어야 하는 당위성을 이야기 했음에도 우리에게 아무런 논의도 없이 공주보다는 중앙부처를 택했다.

국립공주박물관과 공주학연구원에 기증하여 디지털 자료로 복원한 후 그 자료를 국가기관에 공유하는 절차를 거쳤다면 명분과 실리 모든 것을 살릴 수 있었지만, 학문적 동반자라고 명명한 대학원 동료들이 재직하는 국가기관에 기증함으로써 자신의 실리만 챙긴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자신의 이러한 행위가 자랑스러웠던지 SNS에 업로드하여 국가기관에 기증한 것을 합리화하고 감격해 했다. 공주에서 생산한 자료를 중앙부처에 기증하고는 공주시와 산하기관으로부터 지원사업을 신청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없을까? 공주에서 발견한 중요한 자료를 국가기관에 기증하고 개인적인 생색을 냈다면, 공주시와 산하기관으로부터의 지원사업은 신청하지 말고 중앙부처 지원사업만 신청하는 것이 그나마 그의 행위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공주에서 생산한 자료, 공주에서 발견한 유산은 공주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무령왕릉 발굴유물을 지켜낸 공주시민들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 될 것이며, 공주의 역사와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송두범, 행정학박사. 공주학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전)공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전)충남연구원 연구실장, 전)세종문화원부원장, 전)세종시 안전도시위원장, 이메일 : songd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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