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평마을 조성해놓고 수수방관… 마을간 분쟁 어렵지만 해결하고 빛보게 해야
32번 국도를 따라 충남 공주시에서 대전시로 가다 보면 박정자 삼거리를 만난다. 오른쪽 동학사로 가는 길을 따라 500m쯤 가다 보면 왼쪽 계룡산 자락과 용수천 사이 학봉리 79-24에는 ‘일본자기시조 이삼편공기념비(日本磁器始祖 李參平公記念碑)’가 서 있다.
1990년 가을 일본 아리타 시민이 모금한 성금으로 박정자 삼거리 인근에 설치했지만, 2016년 도로 확장으로 현 위치로 옮겨 조성했다. 일본 자기의 시조로 불리는 이삼평(출생 미상~1655년)은 정유재란시 일본 사가번(佐賀藩)으로 끌려갔고 공주 요지 도편과 아리타(有田) 지역 초기 도편이 같다는 점이 그가 공주출생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이후 아리타에서 일본 최초의 백자기를 생산했고 이후 아리타 지역은 일본의 대표적 도자기 생산지가 되었고 유럽으로 수출하여 세계적인 도자기 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아리타 도자기는 바로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위치한 공주학봉리요지(公州鶴峯里窯址, 대한민국사적 333호)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계룡산 기슭에 여러 곳의 가마터가 분포하는데 그 중 학봉리 도요지가 중심이 되며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철화분청사기, 귀얄철화, 백자 등이 출토되었고, 그 가운데 철화분청사기가 대표적이다.
철화분청사기는 상감과 인화 기법이 쇠퇴해 가던 15세기 중반 약 30년 동안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일대 계룡산록의 40여개에 이르는 가마터에서 개성 강한 지방양식으로 제작되어 일명‘계룡산 분청사기’라고 불리고 있다.
학봉리 가마터는 계룡산의 장군봉과 황적봉 사이의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어 풍부한 땔감을 얻을 수 있으며 태토와 유약, 특히 철화기법에 사용되는 철재를 비교적 쉽게 채취할 수 있는 유리한 입지조건을 지니고 있다. 철화분청사기는 연꽃, 물고기, 모란, 넝쿨, 새 등의 독특한 무늬로 장식을 했고, 표현은 간결하지만 대범하고 해학적이며 형태와 문양이 자유롭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박진감이 넘치는 서민적이면서도 예술성이 뛰어나 도자기로 유명하다.
한편, 90년 대부터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 도예가들은 ‘계룡산도자예술촌’을 조성하여 도자기 생산, 전시·판매, 교육·체험, 축제 등을 추진해 오고 있다. 반면, 학봉리에도 2017년 ‘동학동철화분청마을영농조합’을 설립하여 도자기 전시 판매장 및 체험관 운영, 교육, 철화분청문화제 등을 추진해 오고 있다. 초기 큰 갈등 없이 지내오다 학봉리에 ‘이삼평 도자문화예술단지’ 조성계획이 발표되면서 양 마을간 이해관계가 대립하기 시작한다.
‘계룡산도자예술촌’에서는 도자문화예술단지 조성이 문제가 아니라 이삼평이라는 명칭에 대한 고증과 재검토가 필요하고, 학봉리에 예술단지가 생기면 상신리 도예촌은 쇠락할 수밖에 없어 상신리로 이전을 주장한다. 반면, ‘동학동철화분청마을’에서는 학봉리 도요지, 이삼평 공원 등이 있는 곳을 랜드마크로 조성하여 세계적인 도자도시로 발전시키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도예촌에서는 ‘계룡산철화분청사기 축제’를 개최해 왔고, 동학동철화분청마을에서도 ‘철화분청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공주시에서는 ‘이삼평 도자문화예술단지’ 조성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나, 양 마을간 입장차이가 커 원활한 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상신리 ‘계룡산도자예술촌’과 학봉리 ‘동학동철화분청마을’ 모두 공주 원도심과는 비교적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보니, 공주 원도심 방문객들은 그 명성에 비해 계룡산철화분청사기를 접하지 못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무령왕릉 출구에 위치한 백제오감체험관 내 충남공예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전시·판매장에 일부작가의 계룡산철화분청사기를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방문객들이 계룡산철화분청사기를 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공주 원도심에 경기도 지역 생산도자기를 판매하는 도자카페가 영업 중에 있는 반면, 정작 공주에서 생산하고 있는 계룡산철화분청사기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은 공주시나 철화분청사기를 생산하는 도방들 입장에서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삼평 도자문화예술단지’ 조성을 놓고, 마을간 갈등이 있다 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 예술단지 조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공주시와 도예가들이 힘을 합해 공주 원도심에 계룡산철화분청사기 작품을 전시 및 홍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공주를 찾는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철화분청사기의 우수성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시급한 일이 아닐까 한다.
‘이삼평 도자문화예술단지’를 조성하면 도자 도시로서의 명성을 드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학동 철화분청마을과 그 보다는 현재 도자기를 생산하는 상신리 예술촌을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상산리 도자예술촌 간 서로 다른 생각은 여전히 평행선을 긋고 있어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 문제는 시간을 두고 심금을 터놓는 논쟁을 하더라도 지금 할 수 있고, 상호 도움이 되는 일부터 협력하여 추진하는 것이 계룡산철화분청사기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공주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것이다. 풀기 어렵고 오래 걸려야 하는 일은 미뤄두고 오늘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송두범, 행정학박사. 공주학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전)공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전)충남연구원 연구실장, 전)세종문화원부원장, 전)세종시 안전도시위원장, 이메일 : songdb@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