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모노세키-야마구치, 조선과 백제 만났다
일본 시모노세키-야마구치, 조선과 백제 만났다
  • 송두범
  • 승인 2024.06.05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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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범 칼럼] 일본에서 돌아본 무령왕 탄생지, 임성태자 가문 탐방기
조선통신사 첫발 내디딘 '시모노세키', 김종필총재 친필 등 교류 이어져

무령왕국제네트워크협의회와 공주향토문화연구회 주관으로 제23회 무령왕탄생제에 참가하기 위해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사가현(佐賀縣) 가라츠시(唐津市) 북쪽 해상 무령왕탄생지인 가카라시마(加唐島)를 비롯하여 백제 성왕의 셋째 아들로 알려진 임성태자(琳聖太子)의 후손인 오우치(大內)가문, 임진왜란시 조선출병지인 나고야성(名護屋城) 등 역사문화자원을 답사했다. 공주와 관련이 많은 일본의 옛 도시를 돌아본 소회를 '세종의소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글을 썼다. 

조선통신사상륙기념비

공주에서 새벽 4시20분 출발한 우리 일행은 일본 후쿠오카공항에 10시 30분 도착했다. 첫 방문지는 야마구치현(山口縣)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모노세키(下關)이다. 큐슈와 혼슈 사이를 가로지르는 폭 1.5㎞의 간몬해협에 접한 시모노세키는 예로부터 서부 일본 육해교통의 중심지로 교통과 상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1763년 말 공주 무릉동 출신 조선통신사 종사관 서기로 일본에 다녀온 퇴석 김인겸이 기술한 ‘일동장유가’에는 시모노세키(아카마가세키, 赤間關)를 이렇게 묘사했다.

‘예로부터 도내양이라 산도 낮고 물도 적어서 산수는 절승하고 여염도 즐비하다. 평지가 전혀 적어 포변의 대소인가 돌로 쌓아올려 서너 장씩 높게 하고 그 위에 집을 지어 접옥연장하였구나. (중략) 절집이 굉걸하고 경치가 기절하여 죽백도 많거니와 그 중의 소철나무가 모양도 기이하고 이울어 죽어갈 때 쇠못을 박아두면 도로 산다 하는구나.’

조선통신사는 총 17번의 일본방문 중 16번을 이곳에 들렸다. 통신사를 태운 배가 간몬해협으로 들어서면 시모노세키에서는 안내선 100여 척을 보내 환영했다.

통신사가 첫발을 내디딘 곳에는 ‘조선통신사상륙엄류의땅(朝鮮通信使上陸淹留之地)’ 기념비가 서 있는데 2001년 한일의원연맹 한국 회장이었던 김종필 민자당 명예총재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 기념비 맞은편에는 일본 81대 안덕천황의 묘가 있고, 조선통신사행렬이 객관으로도 사용했던 빨간색의 아카마신궁(1185년)이 보인다.

인근의 일청강화기념관(日淸講和記念館)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1895.4.17)한 장소이다. 1894년 4월 25일 동학농민혁명의 주도권을 놓고 맞붙은 일본과 청국이 시모노세키 요정겸 여관인 슌판루(春帆樓)에서 이토히로부미와 리홍장 간 조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청국의 북양대신 리홍장은 패전국 수장으로 조약체결을 위해 시모노세키까지 와야 했다.

시모노세키조약이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이유는 조약의 제1조 때문이다.

시모노세키조약 회담장 재현

‘청은 조선이 완결무결한 자주 독립국임을 확인하며 무릇 조선의 독립 자주체계를 훼손하는 일체의 것, 예를 들면 조선이 청에 납부하는 공헌, 전례 등은 이 이후에 모두 폐지하는 것으로 한다.’

그러나 이 조항은 승전국 일본 입장에서 조선을 청국의 세력에서 떼어내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수순이었다. 그러나 당시 조선정부는 이러한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조선의 운명을 결정하는 회담장에 조선대표는 참가하지 못한 것도 힘없는 민족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혼슈의 관문도시이자, 복어의 도시 시모노세키를 뒤로 하고, 야마구치시(山口市)로 향했다. 야마구치시는 백제 성왕의 셋째 아들 임성태자(琳聖太子)의 후손으로 알려진 오우치(大内, おおうち)가문이 교토를 모방하여 도시를 건설하고, 내전을 피해 교토에서 탈출한 문화인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서쪽의 교토’라 불렸으며 그 유적도 많이 남아 있다.

이러한 연유로 1993년 2월 23일 공주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후 상호 축제방문, 음식문화교류, 친선 축구대회 등 73차례에 걸쳐 행정뿐 아니라 양 도시민으로 구성된 방문단이 서로 만나 문화체험을 하는 등 교류를 이어온 도시이다.

지금도 야마구치에는 백제부라는 마을이 있고 백제부신사(百濟部神社)의 도리이(鳥居)는 백제로 가고 싶다는 듯이 바다 쪽을 향하고 있다. 임성태자를 모시는 절 조호쿠사(乘福寺)도 있고 임성태자를 못 잊어 일본으로 합류한 그의 어머니인 성왕비를 기리는 카모신사도 있다.

오우치가 가계도를 보면 임성태자에서 시작하여 야마구치의 대표가계로 32대까지 이어져 왔다. 임성태자가 창건한 고류지(興隆寺)에는 검, 관(冠), 피리를 보존하고 있으며, 1312년에 창건한 조후쿠지(乘福寺) 본당에는 임성태자 상과 본당 뒤에는 공양탑이 있다. 오우치저택(大內館) 터에는 현재 류호쿠지(龍福寺)와 자료관이 있어 임성태자를 시조로 하는 역대당주 도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오우치 저택 터와 류후쿠지, 자료관의 오우치 가계도(맨 위 중앙이 임성태자 )

오우치가에서 세운 루리코지(溜璃光寺) 5층 목탑은 26대 오우치 모리하루(大內盛見)가 1442년에 그의 형인 25대 요시히로(義弘)를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4계절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모습인 이 탑은 일본 3대 목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방문한 날은 2년 동안을 계획으로 보수 중에 있어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16세기 후반 오우치가는 사라졌지만, 야마구치에는 임성태자와 관련한 수많은 유적들이 남아있고, 백제 성왕 후손임을 주장하는 후손들도 있어 KBS역사스페셜에 방영되기도 했다.

공주시와 야마구치시간 자매결연 활동에 더해 공주시무령왕네트워크와 공주향토사연구회에서는 2018년부터 야마구치한국연구회와 민간차원에서 임성태자를 찾아가는 교류를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선통신사와 임성태자를 매개로 시모노세키시, 야마구치시와 공주를 오가는 역사문화 교류를 통해 왜곡되어 가는 한일 과거사가 신뢰의 기반 위에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밀알이 되기를 기대해보는 답사였다.

루리코지 오층목탑과 보수중인 목탑

 

 

송두범, 행정학박사. 공주학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전)공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전)충남연구원 연구실장, 전)세종문화원부원장, 전)세종시 안전도시위원장, 이메일 : songd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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