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빛낸 세계적인 인물, 흔적 찾아보면서 꿈과 용기 얻길...
공주의 쓰리(three) 박을 아시나요?
공주사람들은 우스개 소리로 공주에는 쓰리박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박찬호와 박세리 선수, 박동진 명창을 공주사람들은 쓰리박이라 부른다. 물론 세 사람 중 박세리 선수는 공주태생은 아니나 공주소재 금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공주인물로 보는 것이다.
박찬호 야구선수는 공주중동초등학교-공주중학교-공주고등학교-한양대를 거쳐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투수로 선수생활을 하면서 통산 124승을 했다. 그는 공산성 남쪽 자락 산성동에서 자랐다.
학창시절 그는 하체단련을 위해 공산성 진남루 계단 길을 토끼뜀을 하면서 오르내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공주시는 옛날 박찬호가 살던 집과 주변 집들을 매입하여 7개 전시관으로 구성된 박찬호 전시관을 조성하였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국가대표시절, 메이저리그 7개 구단 시절의 유니폼과 야구공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위쪽에는 그의 투구 폼을 형상화한 조각과 이현세 화백의 만화 등이 전시되어 있고, 전시관 앞에는 폐타이어로 만든 황소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그의 기념관으로 가는 길을 산성찬호길로 명명하고 있다.
무령왕릉 주차장 건너편 공주문화예관 입구에는 박세리 선수를 기념하는 세리파크(seri park)가 조성되어 있다. 박세리 선수는 대전 태생이나 1993년 공주금성여고에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1998년 스물한 살 최연소의 나이로 US여자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일궈낸 맨발투혼을 상징하는 명장면이다. 박세리의 우승으로 IMF사태로 고통을 겪고 있던 국민들에게 ‘불굴의 한국인상’으로 찬사를 받았다.
세리파크는 1999년 ‘한국투혼21 건립추진위원회’와 공주시가 중심이 되어 박 선수가 졸업한 금성여고 인근 공주 문예회관에 부지를 확보하고 실물보다 1.3배 크게 제작한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세리파크는 당시 IMF로 인한 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사회적 분위기와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형물로서 의미가 있다.
1998년 US오픈에서 박세리 선수가 맨발 투혼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박세리 같은 선수가 되기 위해 골프에 입문한 1986~1988년생들을 지칭하는 박세리키즈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공주문예회관 입구 세리파크인당(忍堂) 박동진 명창(국가무형문화재 제5호)은 1916년 공주군 장기면 무릉리(현, 무릉동)에서 태어났으며, 대전의 한 중학교에 다니다 졸업을 앞두고 이동백, 송만갑, 장판개, 이화중선, 감창룡 등 당대 대명창의 소리를 접한 뒤 이에 매료되어 소리꾼의 길로 나설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가 판소리에 입문하게 된 것은 청양의 손병두를 찾아가 춘향가 중 사랑가, 옥중가 등 토막소리를 배우면서부터 이다. 그 후 서울로 상경하여 춘향가, 수긍가, 적벽가, 홍보가, 심청가를 차례로 배웠다.
스물다섯 때 목소리가 제 기능을 상실하여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다 독약을 마신 적도 있었으나, 치열하고 혹독하게 독공에 정진하여 마침내 득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1968년 흥부가 완창(5시간), 1969년 춘향가 완창(8시간), 1970년 심청가 완창(6시간), 1971년 적벽가 완창(7시간)을 하였으며, 1973년 국립창극단 단장과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강릉해화전, 무숙이타령, 수궁가, 옹고집전, 장끼타령 등을 완창하였으며 1987년 국립국악원 지도위원이 되었다. 1993년에는 인간문화재진흥회 회장, 국립극장 명예 종신단원이 되었다.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은 1998년 박동진명창의 소리를 잇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충남도와 공주시의 지원으로 건립하였다. 소리꾼 배출을 위한 전수교육, 판소리 연수교육 및 판소리체험교육 등 지방문화의 활성화와 판소리의 대중화를 위한 전수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현대 판소리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당 박동진 명창의 생애, 예술세계, 업적 등을 알리기 위한 박동진 유물관도 운영중에 있다.
박동진 명창이 판소리 사설을 직접 적어놓은 소리책, 완창공연과 관련된 팜플렛, 연습 때 애용하던 북, 공연에 사용하던 부채, 의상 등이 진열되어 있다. 이외에도 박동진 명창의 소리를 직접 감상할 수 있도록 음원과 동영상 코너도 설치되어 있다.
박동진 명창은 2003년 7월 8일 공주시 무릉동 인당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에서 노환으로 영면하였고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현재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에는 박동진 명창의 수제자인 김양숙 전승교육사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와 같이 공주는 백제왕도, 충청감영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인물들이 활동해 왔다. 그 중 최근 공주를 빛낸 인물 중 박찬호 및 박세리 선수, 박동진 명창을 쓰리박으로 부르는 것은 공주를 알린 전문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굳이 운동이나 판소리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미래 새대들이 한 번쯤 박찬호 전시관, 세리파크, 박동진 전시관에 들려 그들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꿈과 용기를 얻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송두범, 행정학박사. 공주학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전)공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전)충남연구원 연구실장, 전)세종문화원부원장, 전)세종시 안전도시위원장, 이메일 : songdb@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