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변해야 세상이 변합니다”
“공무원이 변해야 세상이 변합니다”
  • 신도성 편집위원
  • 승인 2013.09.05 12:20
  •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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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김관수 방축동 동명찾기운동 대표..."민원인의 간절함 이해해야"

검소하게 생활하고 있는 김관수 대표가 자신의 20년 넘은 아시아 자동차 트럭 앞에 서 있다.
“행정은 누가 봐도 공평해야 합니다. 역지사지 입장으로 민원인의 간절한 처지를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세종시(구 연기군 남면 방축리 322번지)에서 태어나 35년간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고향을 위해 헌신하다가 지금은 동네에서 농사를 지으며 노후를 보내고 있는 김관수 선생(71)이 방축동 동명찾기운동 대표를 맡아 힘들게 분투하고 있다. 80대, 90대 등 동네 어르신들이 잔뜩 화가 나 계시기 때문이다. 조상을 볼 면목이 없다는 한탄을 듣고 있다.

세종시가 들어서며 정부청사 주변의 동명을 지으면서 대평동과 나성동, 월산동 등의 명칭은 기존대로 살려주고 600년 전통의 방축동만 유독 도담동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에 원주민들이 반발하여 세종시의회에서 의원들이 전원일치로 방축동으로 동명을 변경해주었던 것. 그러나 뒤늦게 유한식 세종시장이 “외지인이 반발한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지난해 6월 의회 재심의에서 의원들의 찬반투표로 방축동 명칭이 아깝게 부결되었다.

이에 방축동 원주민들은 “방축동 지명은 꼭 찾아야 한다”고 집념을 보이고 있다. 방축이라는 지명이 촌스러운 게 절대 아니고 최고의 명당 길지에 맞는 지명이라는 주장이다. “방축동은 1414년 조선시대 연기현 때부터 방축골이라 하였고 일제강점기에도 마을이름을 개명 안하고 방축리로 했는데, 갑자기 도담동으로 개칭하는 것은, 가뜩이나 선대부터 살던 땅을 팔고 조상묘까지 이장한 마당에 오래된 마을이름마저 뿌리 뽑히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며 행정구역 명칭을 방축동(方丑洞)으로 실현하는데 원주민들이 힘을 쏟고 있다.

"표리부동한 시장, 지역의원을 응징하여 내년 지방 선거 후에 새로운 시장에게 방축동 명칭 변경을 호소할 계획“이라고 밝힌 김관수 대표는 ”공무원들이 더욱 많이 변해야 나라가 안정되게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직자들은 위로는 대통령부터 장관, 시장이 깨끗해져야 아래로 내려갈수록 깨끗해진다는 지론이다.

김관수 대표는 가난한 농가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연양초등학교와 경천중학교를 어렵게 나와 주경야독으로 낮에는 지게 지며 농사 짖고 밤에는 공무하면서 지내다가 18세 때 연기군 남면사무소에서 일용직인 소사로 1년간 근무하며 공무원의 꿈을 꾸었다. 하지만 당시 고교졸업이상만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어 좌절하던 차에, 박정희 대통령이 학력제한을 철폐하여 1970년 충남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렸다.

처음 공무원 되면서 '백성 등골 빨아먹는 탐관오리 되지 않겠다" 다짐

 지난해 후손을 위해 발행한 '시련과 도전' 자서전
김 대표는 공무원이 되면서 “절대로 백성의 등골을 빨아먹는 짓은 하지 않고 돈을 탐하는 탐관오리가 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짐했다. 그래서 김 대표는 자식이나 후배들에게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성실하게 노력의 댓가로 살아라”는 이야기를 좌우명처럼 해준다.

공무원의 자세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주민을 가족같이 생각하고 공정하게 업무처리를 하는 것이라는 소신을 지닌 김 대표는 35년 간 공직생활을 알차게 보냈다.  

당시 “돈방석”이라는 연기군 관리계장, 병사계장 등의 잘 나가는 보직을 맡으면서 전임들과 달리 청렴하게 일처리를 하다 보니 주변의 질시를 많이 받았다. 동료 공무원들이 봉급날이면 술집주인들의 외상값 받으러 오는 것을 피해 내빼는 것을 보거나, 상사의 부패한 모습을 보면서 내가 관리자가 되면 절대로 저런 짓은 하지 말자고 각오를 다진 김 대표는 4개 면에 면장으로 재직 시에는 전임 때부터의 외상값을 싹 정리해 버렸다. 마구 켜진 가로등 전기 값이나 함부로 사용하는 통신요금 등을 줄여 채무정리를 한 것. “공직자가 떠나고 나서 도둑놈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다”는 김 대표는 당시 주민들로부터 ‘공무원은 도둑’이라는 소리가 가장 듣기 싫었다. 그래서 돈을 최대한 아껴 주민에게 손 내미는 ‘동냥행정’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술도 안 사주는 짠돌이 면장이라고 질시도 받았지만 임기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갈 때 진심으로 고마워해 보람을 느꼈다고.

이런 김 대표의 성실함이 청와대에도 알려져 노태우 태통령 시절인 1990년 7월 청와대 대통령 총무비서실 행정관으로 발탁되어 근무하기도 했다. 2001년 지방행정서기관으로 정년하기까지 김관수 대표는 훈장과 대통령 표창 등 65개의 상을 받았다.

김관수 대표는 95년 1월에 방축리유래비를 세웠으나 현재 마을이 개발되면서 세종시공원으로 이전되었다. 또한 그가 면장으로 재직 시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충절의 고장답게 95년 8월 15일 금남면에, 97년 8월 15일 서면에, 99년 8월 15일 남면에 국가유공자비를 각각 세워 후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밖에 원수산유래비, 연양초등학교유래비, 나성유래비 등을 세우는데에도 일조하였다.

김관수 방축동 동명찾기운동 대표는 “이제 귀거래사의 심정으로 선대부터 살아온 방축골의 농부로서 조용히 살고 싶었다”며 “하지만 삶의 여정이 얼마 남지 않은 방축동 어르신들의 간절한 소망인 600년 지명인 방축동 지명을 살려달라는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600년 명당 방축동 지명이 살아나는가 죽는가는 인간들의 의지와 하늘의 도움에 달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자는 취재를 마치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공직자라면 김관수 선생만 같아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청렴한 공무원으로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은 현역시절 김관수 대표의 당당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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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축주민 2013-12-01 10:39:58
역사적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뿌리의 고향 방축리!
고향을 잃게된 애석한 마음을 어대다 비해 표현 하오리까
김관수 전 면장님의 노고에 우리 주민 다같이 힘을 모아서
뿌리의 고향 방축리 지명을 올바로 세우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갑시다.

한솔동 2013-11-27 11:22:19
김관수 전 면장님의 노력이 헛되지 말아야 하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회석 되어가는것 같아 마음이---
유독 방축동만 안되는 이유가 무엇 인가요

임재혁 2013-10-07 11:39:10
서울도 과거 경기도였다가 서울로 편입되어 신시가지를 조성하였어도 과거의 지명을 거의 그대로 썼습니다.
조치원읍이 세종시에 편입되었다고 한글읍, 연서면을 복사꽃면, 장군면을 국화꽃면이라고 한다던지 금남면을 비젼면이라고 바꾸면 되겠습니까?
지명은 한번 제정하면 바꾸기가 힘듭니다. 그 지역을 가장 잘 나타내고 상징하는 지명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입니다.

임재혁 2013-10-07 11:35:06
지명은 역사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지역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지명입니다. 지명만 보고도 아! 이 곳이 과거에 어떠한 곳이었나르 잘 파악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종시가 되고 신시가지가 되었다 하더라도 전해 오는 좋은 지명을 버리면 않됩니다.

김인식 2013-09-13 16:25:13
조상대대로 내려온 방축리를 꼭 찿아 옛이름을 찿읍시다.
회장님을 중심으로 방축주민들 다같이 힘을 모읍시다.
과거가 없으면 미래도 없는것입니다.
옛역사를 꼭 찿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