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최첨단 스마트 스쿨, 학급당 학생수가 25명이라는 최고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너무도 매력적인 환경이지 않은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였다.
지난 1년 교단에 선지 17년차.
교무 수첩을 꼼꼼히 기록하려 노력한 흔적은 있으나, 교단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기쁨들을 일기로 남길 시도는 해보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교사는 든든한 존재여야 하고 아이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더 강해서, 정작 마음을 전하는 데에는 인색했는지 모르겠다.
이 글에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주고 부단히 노력해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모두 담기는 어렵지만, 지난 1년을 회상하면서 그동안 못다 한 말과 마음을 비로소 표현해보려고 한다.
나와 나의 아이들은 충청도,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참 다양한 곳에서 세종이라는 낮선 곳으로 와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였다. 학교 주변에는 학원도 상가도 없었기에 어둠이 내리면 주변은 입주하지 않은 아파트 사이에 야간 자기 주도 학습을 하는 우리 학교만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어찌 보면 어렵고 삭막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의 아이들은 놀랍고 기특하게도 생소한 환경에서 고등학교 새로운 생활에 너무나도 잘 적응해 주었다. 아이들은 아마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특히 내가 담임을 맡은 1학년 5반 학생들은 최고의 자랑스런 학급을 만들어나갔다.
‘자신에게는 철저하게 타인에게는 관대하게’라는 급훈 아래 함께 한 아이들, 처음의 경계는 금새 사라지고 유달리 식구처럼 사이가 좋았다. 1학년 5반 표찰이 달리던 날, 교복을 처음 입던 날, 학교 앞에 편의점이 처음 생기던 날……. 우리는 이곳에서 모든 처음을 같이 맞이하며 소소하지만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기 시작했다.
한 학기에 한 주제씩을 정해 연구하는 생명과학 프로젝트 학습에서 아이들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흥미로운 주제를 정해 탐구를 즐길 줄 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끔은 행동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공개 설문 조사에도 적극적이며,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 세상의 어느 곳에 있는 자료들도 검색하여 유용하게 사용할 줄 알고 새로운 것에 흥미를 보이고 그 과정을 즐길 줄 알아갔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여 막 하복을 입을 무렵, 영어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우리 아이들이 선택한 노래는 저스틴 비버의 ‘Baby’였다. 교실 책상을 쭉 밀어 놓고 연습을 하던 모습, 그 또한 너무 열심이었다. 무대 위에서 한없이 부끄러워하면서도 동작을 크게 해보려는 모습이 기특하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엄마 미소를 짓게 했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진 것을 나눌 줄 알았다. 사교육 기관이 전혀 없는 우리 동네에서 아이들은 서로 멘토링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과외 선생님이 되어주고 서로 의지하며 공부했다. 가르쳐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친구에게 배워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기뻐하기도 했다. 교훈처럼 어느덧 아이들은 ‘이루고 나누는 사람’이 되어갔다.올해는 담임이 없는 나를 위해 깜짝 파티를 해주며 사랑을 전하는 아이들! 계속된 고등학교 근무로 아이들의 진학만을 위한 디자이너가 되어 버릴 뻔한 나에게, 경기도를 떠나 세종에서 새로운 교직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우리 아이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끔 한다.
다소 힘든 환경에서도 뿌리를 잘 내리고 하늘 향해 풍성한 잎을 키우며 자라는 아이들! 세종에서 만난 나의 제자들이 모두 모두 밝고 큰 별이 되어 빛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