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면 이유알아야 다음 문제 넘어가"
"틀리면 이유알아야 다음 문제 넘어가"
  • 강수인
  • 승인 2012.04.01 07: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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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의 생활 속 이야기]운전면허 시험은 마음 가짐 테스트

   미국 운전면허 시험은 필기에서 시험 도중 틀리면 반드시 설명이 나오고 이해를 해야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지난해로 기억되는데 운전면허 자격증을 따는 절차가 대폭 간소화 되었다는 언론보도를 본 적이 있다. 아주 어렵게 운전면허를 딴 나로서는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또 제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운전면허는 ‘운전기술만 있으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교통사고는 운전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기계치라고 할 만큼 기계조작에는 영 재주가 없어서 몇 차례 낙방의 쓴잔을 곱씹으며 어렵사리 그것도 학원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서 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20년 넘게 운전했지만 지금도 운전대 앞에 서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무서운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미국에 갈 때 국제면허증을 가지고는 갔지만 한국에서의 20년 가까운 운전 경력은 인정되지 않았고 그래서 보험료도 초보자 취급을 받아서 아주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보험료 혜택도 보고 미국에서 신분증 역할을 하는 운전면허증을 받기 위해서는 빨리 필기고사라도 통과해야 하는 그런 좀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상 도전하려고 하니 막막했다. 영어도 어눌한데다 시험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었다. 주(州) 마다 차이는 있지만 면허시험은 3단계로 진행되었다. 1차 필기시험, 2차 구술시험, 3차 기기조작과 주행시험으로 이뤄지는데 한 번에 이어서 시험을 치렀고 연속해서 세 차례 낙방하면 100달러 가까운 비용을 내고 교육을 받아야 했다.

한 번 떨어지면 심리적으로 부담이 될 것 같아 사전을 찾아가며 목숨을 걸다시피 운전면허 설명서를 겨우 읽었고 거리에 표지판이 나타나면 소리 내어 외워 댔다. 그렇게 해서 미국 도착 보름 만에 용기를 내서 시험장을 찾았다. 자기 차로 시험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우리 차는 밴이라서 차 길이가 길어 도로 일렬주차가 좀 불리했기 때문이다.

필기시험은 컴퓨터로 보는데 한국어가 있어서 마음이 한결 편했다. 문제를 풀어나가다 모르는 문제가 있어 틀렸다. 다음 문제로 나가겠거니 하고 기다리는데 느닷없이 왜 틀렸는지 설명이 나왔다. 알았다고 수용하자 다음 문제가 이어서 나오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필기시험을 통과하니 다음은 도로 표지판 읽기 등 구술시험과 시력검사가 있었다. 운전할 때는 반드시 안경을 착용할 것을 강조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시력이 나쁜데도 착용을 안하면 문제가 된다고 했다.

마지막 주행시험까지 다다랐다. 당시 한국 사람들에게는 시험장에서 바라는 공통된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백발머리 여성경찰관이 배정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얼마나 원칙적이고 까칠한지 유독 탈락률이 높아 인종차별자라고도 하고 백발마녀라고도 부르곤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경찰관이 배정되었다. 가슴이 탁 막혔지만 한편으론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을 못하랴는 일종의 오기도 생겼고 하던 대로 해보자는 다짐도 되었다. 경찰관이 차 앞에 서서 몇 가지를 지시하고 물어 보았다. 좌우 깜박이, 앞뒤 와이퍼 조작, 앞뒤 성애 제거, 전조등 등 기본적인 기기조작을 테스트하고는 거리로 나가자고 했다.

 
모르는 영어를 할까 걱정되어 천천히 말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도로로 나갔다. 운전을 하면서 주도로가 어디고 절대 보호가 안되는 비보호 우회전 등을 체크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안전운전 의식이 있는지를 테스트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 교통표지판 중에 우리와 다른 대표적인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신호등을 달기에는 그리 혼잡하지 않은 거리에 정지(stop) 표지판이 있다는 것이다. 주로 도로가 교차하는 주택가에는 어김없이 있는데 이 표지판은 일단 정지했다가 먼저 온 순서대로 가는 안내 표지판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 왔느냐 보다는 눈치껏 앞차를 따라 가는 것에 익숙해 있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위반하는 사례였다. 일종의 줄서기 문화에 익숙한 우리의 단면이 아닌가도 생각해 봤다.

미국 운전자들은 기다리는 차량의 대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온 순서대로 가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다음 차례는 누구라는 것을 예측할 수가 있어서 굳이 대기차가 적은 줄(거리)을 찾아가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시험을 마쳤는데 조수석에서 채점하던 경찰관이 내용 하나 하나를 설명해 주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잘못한 부분을 꼼꼼하게 설명해주는데 못 알아듣는 부분은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해 줬다. 한국에선 뭐가 틀리고 맞았는지도 모르고 합격만 하면 됐는데 말이다.

그리고는 합격이라고 판정해주고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칭찬까지 해주는데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미국에 온지 보름 만에, 그것도 단번에, 게다가 백발마녀라고 하는 경찰관에게 합격한 것은 아주 드문 경우라고 하면서 시험을 준비하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고지식하리만큼 법규를 지키면서 바보처럼 운전한 내가 그들에게 가르쳐 줄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운전을 잘하는 것은 곡예운전이 아니라 안전운전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조금은 느리고 답답할지 몰라도 운전면허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안전운전이라고 하는 운전자의 마음가짐을 테스트하는 것이란 생각이 그래서 더 간절한지 모르겠다.<필자 강수인은 올해 44세로 자녀 둘을 둔 가정 주부이다. 최근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살면서 그곳 학교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자녀 교육 방식을 전해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매월 서너번에 걸쳐 잔잔한 가족 얘기를 주제로 한 글을 '세종의 소리'를 통해 연재할 예정이다./편집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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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 2012-04-02 21:11:43
어딜 봐도 선거얘긴데 신선한 글이 있어 읽어 봅니다. 좋은 글을 많이 쓰셨네요. 아마 소리없이 읽는 사람이 많을 듯 합니다. 삶의 가치를 느끼는 좋은 글 감사해요.

첫마을 2012-04-02 08:49:50
이번에는어떤글이올라오나하고 기다렸는데 역시기대를저버리지않았군요
글잘읽었습니다 강수인씨의독자가되었네요
다음에도 좋은글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