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처럼, 기름처럼 살아야죠"
"그림자처럼, 기름처럼 살아야죠"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3.07.31 18:0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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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부'(副)자론 강조하는 변평섭 세종시 정무 부시장

   변평섭 세종시 정무부시장은 "'부'자는 조용히 그림자처럼 행동해야 한다" 며 몇 차례 인터뷰를 거절한 끝에 "세종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변평섭 세종시 정무부시장은 어디에 있든 ‘언론인’이다. 그만큼 지역 언론계에서 차지했던 자리가 컸다는 얘기다. 사실 후배 입장에서 보면 선배가 언론이 아닌 곳에서 일을 하면서 잘 하면 ‘다행’이지만 못하면 쑥스러운 일이 되어 버린다. 이는 후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스터와 도제(徒弟)와 같은 언론계 끈끈한 속성 탓이다.

지난 해 7월 중순 임명장을 받은 그를 찾은 건 7월 마지막 날이었다. 다시 언론에 등장시키려고 한 건 나름대로 정무직을 잘 하고 있다는 평가를 했기 때문이다. 인터뷰 성사까지에는 서너 번의 밀고 당기기가 있었다. ‘부’(副) 자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건 좋지 않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었다.

31일 오후 3시 세종시청 별관 정무부시장실에서 만난 그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얘기를 먼저 꺼냈다. 남편 필립 공 일화와 한국 방문 시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어 얘기했다.

“그 전에도 얘기를 했지만 남편 필립공은 여왕이 어디를 가든 한발 짝 뒤에서 따라가요. 언제든지 2인자는 뒤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왕실에서 두 가지를 요청했어. 하나는 통역하는 여자가 여왕보다 더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아야 하고 또 하나는 여왕보다 키가 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변 부시장은 기자가 대전일보 입사 당시 기획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최초 직선 편집국장 역임 후 논설실장으로 있으면서 집필하던 대형 연재물을 이어서 쓰도록 넘겨준 적이 있었다. 대 선배의 연재물을 물려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구미속초’(狗尾續貂)와 같은 글이 되긴 했지만 지금도 만나면 그때 얘기를 가끔씩 하곤 한다. 그래서 ‘김대표’라는 존칭을 쓰지만 말은 편하게 한다.

“‘부(副’자는 뒤에서 그림자처럼, 기름처럼 역할을 해야 하지. 여러 사람도 만나야 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얘기도 듣지만 시정에 반영 후 공은 1인자에게 돌리는 것을 신념처럼 해왔어. 소리 없이 일하는 게 좋은 게 아닐까. 지난 1년 동안 그렇게 해왔어.”

몇 번의 사양과 ‘부’(副)시장으로서의 역할이 겹쳐지면서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조심스럽지만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세종시 체육회 사건이었다. 모르긴 해도 국민권익위가 성급하게 조사 결과를 발표한 면이 많은 사건이었다. 감사를 하면 해당 기관에 통보를 하고 소명 기회를 준 다음 문제가 되는 것만 발표하는 게 순서인데 그런 과정을 생략했다.

“사실 우리가 너무 알레르기 반응들을 해요. 기다리고 차분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비리’라는 말이 나오면 본질에 접근하기도 전에 감성적으로 반응을 보이지. 이제는 그런 수준을 넘어야 해요. 사실(Fact)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해요. 정치적으로 접근하려는 건 여야는 물론 지역에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봐요.”

오랜 언론계 경험이 정무직 수행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그리고 취재원이 되어버린 전직 언론인의 고뇌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누가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 언론은 ‘갑’이라고, 그래요. 언론은 항상 ‘갑’이었던 같아. 공직자는 ‘을’이고. 지금 와서 보면 정말 그런 것을 실감해요. 좋은 점도 많아요. 어떤 사건을 볼 때 종합적으로 본다는 거지. 바로 이해를 하고 앞과 뒤, 그리고 흐름까지 단편적으로 판단을 하지 않는 게 좋은 거지.”

그는 점쟁이는 아니지만 종종 예측을 통해 주변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곤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반딧불처럼 사라질 것도 보았고 그렇지 않는 것도 보아왔다. 그게 오랫동안 빠른 판단력을 필요로 하는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만들어진 후천적 DNA이었다.

“공직자는 녹아들어가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설탕가루나 소금이 아니고 일이면 일, 대인관계면 대인관계, 거기에 진정성을 가지고 대중 속에 녹아들어가야 마음을 얻을 수 있어. 행정이든 정치든 그렇다고 봐요.”

소금물이 되고 설탕물이 되어야 시민들로부터 공감을 얻는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게 큰 자산이 된다. 언론인은 ‘박이부정’(博而不精), 즉 깊이보다 넓고 얕은, 이 특징이다. 폭 넓은 인맥은 그렇게 만들어 진다. 언론계에서 쌓은 인맥의 효용가치를 물어보았다.

“여야를 떠나서 예전에 관계를 했던 분들이 많은 힘이 되어요. 오랫동안 접촉했던 분들이어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곤 해요. 좀 전에 얘기한 것과 같이 사물을 종합적으로 보고 많은 인적 네트워크가 강점이 될 수 있어요.”

   지난 해 7월 16일, 세종시 정무부시장 임명장을 받은 후 기자실에 들러 포부를 밝히는 변 부시장
변 부시장은 언론인 시절 명문(名文)으로 유명했다. 은근하게 비판하면서 정곡을 찔러 독자들로 하여금 통쾌함과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다. 서울 언론인클럽에서 주는 ‘칼럼상’을 지방신문에서는 전무후무하게 수상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류근일, 동아일보 김중배 같은 분이 탔던 상이었다. 암울했던 1980년대 후반, 속을 후련하게 만드는 칼럼으로 고정 독자를 끌고 다니기도 했다. “기회가 닿는대로 지금도 글을 쓰곤 한다”는 그는 임명 당시 우려했던 나이를 불식시켰다.

“김 대표도 나더러 젊게 하고 다니라고 하지 않았어요. 노인네 소릴 듣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 그러다 보니 직원들과 친화력도 생기고...지금은 인생 상담도 하러오고 어려운 일을 가지고 와서 함께 고민도 하지. 그게 내가 할 일이 아닐까. 큰 형님같이 직원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언론계에서 전관예우 여부를 묻자 잠시 동안 생각한 후에 “많이 해주지”라고 말하면서 ‘항심(’恒心)을 강조했다. 최선을 다하면서 항상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게 생활신조라고 소개했다.

“세종시 특별법 개정이 늦어지고 있는 게 아쉬운 점이죠. 최선을 다해도 현 상황이 우리 뜻대로 풀려주지 않아 안타까워요.”

그는 매일 아침 4시30분에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걷는 운동이 체력을 유지시켜주고 있다는 말과 함께 “있는 날까지 세종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약 40여분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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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후배 2013-08-01 06:47:16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기사대로 경험을 충분히 살려 시정에 도움이 되는, 꼭 필요한 분이 되길 바랍니다. 다만 부시장은 항상 보완재입니다. 계속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이기영 2013-07-31 20:03:19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모습 부럽습니다
건강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