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나, 더 좋은 우리’ 급훈 삼아 ‘자주’와 ‘협동’ 키우기로 새 출발
신선한 가을 바람이 살랑이던 지난 주, 3년 만의 요리 실습 수업이 있었다.
모두가 뜰에 모여 마스크를 벗은 채,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먹으며 서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감회가 새로웠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전면 해제되고, 주변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던 확진 소식이 눈에 띄게 잠잠해졌다.
확진자 추이가 심상치 않던 지난 여름, 2학기 학급별 원격수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쌍방향 수업 방안을 준비해두기도 했으나 염려와는 달리 학교는 점점 더 온전한 회복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아이들도 덩달아 몇 년 만의 현장 체험학습과 학교 축제를 기다리며 들떠있는 요즘이다.
한 해를 통째로 빼앗긴 것만 같았던 2020년을 그저 흘려보내고, 무력감과 두려움을 안은 채 이듬해 2021년을 맞았다.
현 상황이 금방 종식될 것이라는, 그래서 학급 운영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꼬깃꼬깃 접힌 채였다.
내가 방역에 소홀하면 우리 반 학생이 확진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언제든지 갑작스레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통제와 제재가 학급 운영의 기본값이 되었으니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힘들고 버거운 한 해가 되었음은 당연지사다.
올해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하며 작년을 돌아보고 이를 거름삼아 교사교육과정의 토대를 다시금 세우고자 했다.
나는 교사로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학생들에게 있어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는지, 나의 장점과 강점은 무엇인지 자기 이해에서부터 시작하여 학생들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지 생각하며 학생 교육의 목표를 정했다.
학생들에게 길러주고자 하는 핵심 역량을 기본적 학습 능력, 자주적 생활 능력, 관계 맺기 능력, 몸과 마음의 건강 총 네 가지로 정하고 이에 따른 구체적 실행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특히 올해 아이들에게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스스로 하는 힘, 즉 자주적 생활능력이다. 우리 반에 필요한 역할, 시간표 구성, 자리 바꾸는 방식과 주기, 학급 특색 활동 등 학급의 대소사를 아이들이 직접 협의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내어주었다.
아이들이 학급에 주인 의식을 갖고 소속감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주축이 된 것이 바로 학급 다모임이다.
매주 금요일 마지막 교시에 진행하는 학급 다모임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며 한 주간의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바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바라는 점으로 나온 이야기들을 안건화하여 토의를 진행한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여 진행한 내용으로 학급 마니또 활동, 반 티 제작, 책거리 데이 운영, 체육 시간 팀 편성, 학급 내 보드게임 규칙 제정 등이 있었다.
마니또 활동을 꼭 하고 싶었던 아이들은 마니또의 목적, 방식, 규칙에 대한 의견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펼쳤다.
다른 아이들의 우려 섞인 반대 의견에서 보완점을 찾아 규칙을 수정하고 마침내 설득에 성공해 결국 일주일 간 마니또 활동을 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 반 반 티를 주문 제작할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전사용지를 구매하여 우리 반에서 직접 만든 로고를 프린트하고 직접 다림질하여 붙이는 방안을 생각해내 실천에 옮기고 다같이 체육대회 날 맞춰 입기도 했다.
둘째는 함께 하는 마음, 즉 관계 맺기 능력이다.
아이들끼리 서로 닿아있는 것조차 염려되어 시험 대형으로 찢어놓고 대부분의 수업 활동을 개별 활동으로 진행했던 지난 2년을 보내고 나니, 학급 내에서 따뜻한 관계 맺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협동 활동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 반에서는 현장 체험학습 동선 계획하고 발표회 열기, 학교 안뜰에서 가을을 느끼며 쓴 시로 곡 완성하여 녹음하고 감상하기, 자료 제작하고 부스 열기 등의 모둠 활동이 이루어졌고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갈등을 의사소통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성취감을 함께 나누고, 친구의 긍정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더불어 협력 놀이들을 통해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공동체 의식을 지닐 수 있도록 했다. 모둠 이름 정하기, 토닥토닥 스티커로 문장 만들기, 서로 손 잡고 원 만들어 풍선 띄우기, 손 잡고 일어서기, 손 풀기 놀이, 탁구공 협력 놀이 등 놀이 연수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협력 놀이를 적용할 수 있었다.
또한 학급에서 문제 상황이나 갈등이 생겼을 때면 바로 학급 다모임을 열어 다함께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서로의 입장과 감정을 터놓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친구를 비판하기 전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참 좋은 나, 더 좋은 우리’ 우리 반 환경 게시판 가장 높은 곳에 걸려 있는 문구이다.
아이들은 허용하는 만큼 생각할 수 있고, 믿어주는 만큼 할 수 있으며, 서로 함께 한다면 기대한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것들을 해내기도 한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된 한 해였다.
언제부턴가 교실 곳곳에 아이들의 손때 묻은 종이들이 붙고 있다.
‘문이 고장나기 일보 직전입니다. 문으로 장난하지 마세요.’, ‘풀은 앞에서부터 쓰세요.’, ‘색칠도구 쓰고 꼭 정리하세요.’, ‘책은 우리 반 모두의 것!’
우리 반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종이들을 둘러보며 가을이 무르익듯 아이들 내면의 자주성과 공동체성도 무르익고 있으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