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부임 이래 40년간 국어 교육 및 행복한 학교 만들기에 열정 다해
한겨울답게 하늘에서 꽃송이 같은 눈이 펑펑 내린다.
지구는 한껏 어지러운데, 아직 자연의 언어는 아름답고 감동적이어서 잠시 생각을 멈추고 바라보게 된다.
코로나19의 혼돈 속에서 꼬박 2년을 악전고투하다 정년을 맞았다.
거짓말처럼 흐른 40년의 교단생활이 막을 내리려는 즈음, 얼마 전 학교장으로서 마지막 종업식과 졸업식을 마치고 난 감회는 뜻밖에도 미묘하다.
평소 대과 없이 정년을 맞이하는 선배들이 단순히 부럽기만 했었는데, 마치 인생 무대에서 퇴장하는 노배우의 심정이랄지, 마침내 종점에 다다른 한 순례자의 마음이랄지 이른 아침 눈을 뜨면 생각이 많아진다.
돌아보면 영화로울 것은 없으나 교육만이 대한민국의 희망 사다리였던 시절, 자부심 넘치는 ‘사도’를 가슴에 품고, 당시에는 선망의 대상이던 공주사범대학을 나와, 1982년 봄 첫 발령을 받았던 시절이 아직 선연한데, 어느덧 40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 오직 학교의 하늘로만 흘러갔다. 공적조서를 작성하다 보니 40년의 세월이 단 두 줄로 요약된다.
1982년 부임 이래 40년간 올바른 교육관과 사명감으로 학생들의 삶과 꿈의 힘을 키우는
국어교육 및 교육공동체가 행복한 학교 만들기에 열정을 다해 교육애를 실천해 왔음
이 무미건조한 추상적 미사여구를 그냥 구술하라면 “나는 평생 ‘교사라서 행복’했고, 이 세상 어느 곳보다 ‘신성한 공간인 학교’를 내 인생의 무대로 삼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말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게도 빛나는 젊은 교사 시절이 있었다.
삶과 꿈을 가꾸는 국어교육과 독서교육에 헌신한 열혈교사였다고나 할까.
첫 부임교인 충남 공주 유구중학교는 첫사랑(지금도 유구 쪽을 지나가노라면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곤 한다), 부임하자마자 2년간 교육부 지정 독서지도 연구학교 실무를 맡아, 독서교육의 지평을 넓히며 국어교사로서의 초석을 다진 시기였다.
이후 공주여중, 부여여중, 벌곡중, 논산여중, 용남중, 전의중, 금호중을 거치며 평소 국어 시간 ‘나의 문집을 통한 창의적 사고력과 표현력 신장’은 물론, 가는 곳마다 ‘학교신문과 교지, 학급신문’ 등을 발간하고, ‘시낭송대회, 창작시 쓰기 대회, 토론아카데미, 독서토론대회, 전국고전백일장’ 등 각종 독서문예교육에 헌신하며, 눈부신 재능을 발휘하는 제자들을 길렀던 기억과 탁월한 성과는 참 행복한 추억이다.
제1회 전국교지콘테스트 대회 은상 수상, 제3회 전국열린교육수업연구대회 1등급, 2007 충청남도교육청 으뜸교사, 모범공무원 표창 등의 개인적인 성취는 덤이었다.
특히 학교도서관을 네 개나 만들고, 충남최우수상과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던 기억, 무엇보다 가는 곳마다 독서교육연구학교 운영으로 쌓은 노하우로, 도서관 활성화 프로그램을 통해 풍성한 학교독서문화를 창조하는 데 온 힘을 쏟았던 시간들은 내 마음의 보물로 아로새겨져 있다.
해마다 ‘내 고장 및 전국 역사문학기행’을 운영하고, 연기교육청 중등국어교과연구회장을 하며 전국문학기행자료집을 발간한 것, 세종교육청 인문고전연구회장으로 인문고전교육자료집 발간 프로젝트를 맡아 한여름날 숨돌릴 새 없이 동분서주했던 것과 재주 많고 열정적인 동료들도 잊을 수 없다.
2학년 부장을 시작으로 난생 처음 가슴조이며 설악산 수학여행을 인솔했던 기억, 고입 선발시험이 있던 3학년 부장 시절에는 야간자습 등 진학지도에 매진하고, 연구부장 시절에는 ‘사회교육, 학력향상, 독서교육, 교원능력개발, 디지털교과서연구학교 등’ 다양한 실천적인 연구학교 운영으로 학교 교육력을 높이는 데 앞장서 무진 애를 썼다.
무엇보다 교부무장 시절에는 ‘행복한 선생님이 행복한 학생을 만든다’는 신념으로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2년 연속 충남교육청 교육과정 최우수교 수상을 하기도 하였고, ‘한여름밤의 별밤캠프’, ‘반딧불이 공부방’ 등을 운영하여 충남교육청 학교문화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학교의 위상을 높이며 커다란 희열을 맛보았다.
한편, 학생들만 보고 살다가 늦게 승진에 뜻을 두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승진을 위한 승진’이 아닌, 어찌하면 학생과 학교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고, 밤낮없이 수업과 업무에 무섭게 몰두했던 시절, 지나친 컴퓨터 작업 탓에 몸이 망가지는 것도 몰랐다.
드디어 대망의 관리자 시절, 작지만 강한 교육력이 넘치는 ‘세종시의 핀란드’라 애칭한, 장기중학교로 첫 교감 발령을 받아, ‘나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을 기르는 행복학교’라는 비전으로 학교문화를 새롭게 하고자 했고, 신설교인 새움중학교로는 자진 부임하여 전 교직원과 함께 집단지성을 모아 혼신의 힘으로 ‘새로운 배움이 움트고 모두가 성장하는 즐거운 학교’라는 비전과 학교 바탕을 함께 만들며 개교 1등공신 역사를 쓰기도 하였다.
첫 교장으로 ‘세종시의 캐나다’라 칭한 전의중학교에 부임하여, 면 단위 학교의 명암을 경험하였고, 2년 전 현임교에 부임하여 교직 생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니 감회가 어찌 적을까.
부임 첫인사는 “학교의 높이는 학교장의 높이, 학교장은 학교의 기후”라는 신념으로 조금은 새롬을 새롭게 하겠다.
‘2014년 개교 이래 역대 교육가족이 잘 다져온 명품학교 전통을 이어가자’는 다짐이었고, 그 약속을 어느 정도 지켰다고 자부하기까지에는 오직 훌륭한 교직원 덕택이다.
그해 겨울, 2020년 1월부터 코로나의 블랙홀이 시작되어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대면/비대면 학사일정 속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면서 ‘미리 온 미래 교실’을 만드느라 무던히도 힘이 들었고, 길고 지루한 코로나 터널로 진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 2년의 학교생활은 온통 철저한 방역에 방점을 두고, 안전과 학력을 아우르는 일과 운영 자체에만 함몰되어야 했기에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힘든 시기였지만, 그래도 모두의 힘으로 잘 버텨왔다.
아직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남은 길이 있지만, 이쯤에서 편안한 고별을 하게 된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지난 모든 것을 따뜻하게 간직하며, 사도 바오로가 한 이 말을 모두에게 위로와 응원으로 전하고 싶다.
누군가 내게 지난 40년이 남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디선가 제 몫을 하며 뜻깊게 살고 있을 사랑하는 제자들과 이 외롭고 고단한 교육자의 길을 묵묵히 함께 걸어온 멋진 길동무들이라고 힘주어 말하리라.
글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저는 1943년 금남면 반곡리 뒷메뜸(현재 반곡동 괴화산 아래)에서 태어나,
대전사범부속국민학교 제2학년 때 6·25 전쟁이 발발하여 고향 금남국민학교로 전학하여,
금호중학교 제6회 졸업하고,
1971년 공주사범대학 외국어교육과(영어)를 졸업하고,
경기도 파주군에서 첫 영어 교사를 발령 받았고,
2005년 8월 만 연령 62세로 정년퇴임하였습니다.
현직 영어 교사 시절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올바른 한글 교육에 신경을 썼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현재 너희들은 국제어인 영어를 학습하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한글이 세계어가 되는 날을 고대한다."
선생님께 기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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