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중심 생활교육 통해 회복 탄력성 키워, 진심어린 사과는 마음의 상처 치유해
“선생님! 쟤가 2학년 때 저한테 욕하고, 제 물건 망가트리고 사과도 안 했단 말이에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모니터링하며 6학년 아이에게 서술형 응답 내용을 묻자 아이는 볼멘소리로 얼굴이 벌게져라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교실에서 우리는 몇 해가 지나도 풀리지 않는 감정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아이들은 “네가 옛날에 그랬잖아!”라고 원망의 소리를 쏟아내기도 하고, 때론 앙갚음을 해놓고는 “너는 나한테 더 심하게 했잖아!”라며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과거 때문에 현재의 폭력을 합리화할 수 없다고 설명하지만 그 설명만으로 아이들의 속상했던 마음이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을 접하며 아이들에게 남은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가 있다. 지금은 키가 170㎝가 넘지만 초등학교 시절 유독 키가 작았던 나를 쫒아다니며 놀렸던 친구와의 안 좋았던 기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 생생하다. 아마도 신체적인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몇 곱절은 더 크고,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모든 다툼과 마찰이 다 마음의 상처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진심으로 서로의 마음에 사과를 하고 웃으며 화해가 되는 경우는 상처가 아닌 해프닝 정도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다툼 속에서 생긴 피해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거나, 선생님이나 부모님에 의해 형식적으로 사과를 받았지만 그 사과가 진심이 아니었거나 내 속상한 마음을 다 풀어주지 못했다면 마음에는 상처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오랫동안 남아 아이들에게는 몇 년이 지나도 문득문득 떠올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생채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 마음에 관계에 대한 상처가 오래 남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 스스로 과거의 속상함, 마음의 상처에 얽매여 관계에서 아직도 힘들어하는 것을 줄여줄 수 없을까?
이러한 생활교육에 대한 고민은 여러 해 동안 나에게는 교사로서 큰 숙제로 남았다.
아이들이 서로를 원망하지 않고 현재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것! 내가 찾은 정답은 바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를 겪을 수 있지만, 이것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도록 마음의 근력을 높여주는 회복탄력성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를 생활교육에 적용하여 교실에서 3가지 힘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해 보았다.
첫째, ‘진정한 사과의 힘’을 알게 해주려 노력했다.
작은 다툼이더라도 무조건 용서해 주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마음을 들어주고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가끔은 이전, 그 이전의 학년에서 있었던 일이라도 서로 사과하고, 사과를 받아주는 ‘마음 쓰레기통’ 활동을 통해 이제 더 이상 속상해하지 않도록 상처를 매듭져주려고 노력했다.
둘째, ‘평화를 지키는 힘’을 길러주고자 노력했다.
10년 가까이 실시된 학교폭력예방 교육들로 학교폭력에 매우 민감해져 있는 아이들은 작은 장난에도 “너 학교폭력 신고한다?”라고 소리치며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기보다는 가해자, 피해자로 나누기 바빴다.
이런 아이들에게 우리는 서로 성격과 생각이 달라 작은 다툼은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친구의 실수는 너그러이 여기는 마음을 길러주려 노력하였다. 대신 학교폭력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게 하고 지나친 장난에 어떻게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는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상황에 따른 역할극으로 자주 표현해보았다.
셋째, ‘소중한 나를 아는 힘’을 키워주려 노력했다.
아이들 스스로 강점이 많은 나를 알게 하고, 잘하는 것은 아낌없이 칭찬해주었다.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소중한 나를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소중한 나를 지키고 당당함을 잃지 않아야 함을 알게 해주려 노력하였다.
이런 회복탄력성을 키우기 위한 교사로서의 노력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줄 알고, 친구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할 줄 알며, 소중한 나로 당당히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는 아이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최근 세종시교육청에서는 학생들 스스로 관계 회복 역량을 기르는 ‘관계중심 생활교육’을 통한 생활교육 패러다임의 변화와 학교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관계중심 생활교육은 과거 교사 중심의 징벌적, 문제 해결적 생활교육의 접근에서 벗어나 학생들 스스로가 갈등 조정자가 되어 공동체 문제를 해결해보고 회복되는 과정을 경험하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학교폭력이 예방되도록 하는 것에 그 목적이 두고 있다.
2021학년도에는 아이들과 세종시교육청 ‘관계중심 실천동아리’에 선정돼 학교폭력 예방 활동을 함께 실천해보고, 교과연계 어울림프로그램을 적용하여 스톱모션 UCC를 만들어 교내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에 활용해 보았다.
제작된 UCC는 어울림 프로그램 우수사례 공모전에도 응모해 보았는데 뜻밖에 학생 부문 대상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하게 되어 지도교사로서 보람찬 한 해였다.
하지만 더 큰 보람은 아이들 스스로 친구들 사이의 갈등을 스토리로 만들어 갈등의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고, 직접 그림 제작, 더빙, 편집까지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 친구들 간에 그동안 남았던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어 관계가 더 굳건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진심 어린 사과는 마음의 상처를 말끔히 낫게 하고, 상처로 틀어져 버린 관계도 회복될 수 있게 한다.
아이들의 회복과 관계의 힘을 키울 수 있게 돕는 일, 다른 누군가가 아닌 ‘교사’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서 마음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고 도와주자.
이렇게 회복된 아이들은 스스로 관계의 힘을 키워 학교폭력마저도 줄어들게 할 것이다.
희망차게 시작된 2022년에는 ‘회복을 통해 관계의 힘’을 키워주는 관계중심 생활교육의 해로 삼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