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없이 주었을 때 마음의 그릇은 더 커져요"
"조건 없이 주었을 때 마음의 그릇은 더 커져요"
  • 류주희 교사
  • 승인 2021.12.20 05:23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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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류주희 새롬초 교사... AI처럼 계산적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세상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사칙연산 가르쳐, 해외 친구와 연결하는 삶의 행복
류주희 새롬초 교사

뺏기지 않으려 두 손을 꼭 쥐면 내 손에 남는 건 조금의 부스러기만

가슴을 열어 두 손을 한껏 뻗으면 세상 모든 것이 내 품에 안기게 된다

인간을 대신하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igence)이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으로 분석하고, 통계 내고, 정확하게 실행해 한 치의 오차 범위도 용납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좋고 더 정밀한 신기술을 만들어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런 세상의 분위기와 환경 탓인지 사람들도 자꾸만 AI와 닮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재빠르게 재고, 따지고, 정확하게 나누고, 누군가에게 손해 보고 사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매일 매일 애쓰며 살고 있다.

나 같은 어른 교사들의 삶을 들여다봐도 별다르지 않다.

초등학생 수준의 사칙연산처럼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정확하게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의 학생들에게는 도덕책에 나오는 봉사, 배려, 공감이라는 단어들을 글로만 가르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학생들이 책으로만 배우는 지식이 아닌, 교사가 가르쳐서 알게 되는 삶도 아닌, 무한히 펼쳐진 아름다운 세계를 품고 꿈꾸며 그 안에서 진정으로 공감하고, 배려하고, 나누며 살기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빼기: 달걀 부화하기, ‘조건 없이 주었을 때 더욱 커지는 마음의 그릇’

“선생님 이거 잘하면 뭐가 좋아요?”, “엄마가 100점 맞으면 새 휴대폰 사주신다고 했어요.”

하나 주면 하나 받아야 하고, 모든 것에 조건이 따라야 행동하는 아이들에게 손해 보고도 만족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줄까?

달걀 부화 활동은 단순히 실과수업의 ‘동식물 기르기’ 단원의 배움과는 다른 차원의 배움이었다.

아이들이 부화시키는 달걀은 흔히 우리가 아는 그 달걀이 아닌 아이들의 ‘자식’이 되고, 아이들은 그 달걀의 ‘엄마’가 되어보는 시간이었다.

자신의 아기를 태중에 담아 태교하듯 매일 좋은 말을 해주며 달걀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실에선 어느새 나쁜 언어나 소란스러움은 사라지고, 부화의 기쁨을 서로 나누었다.

쉼 없이 먹고 싸는 병아리들의 지저분한 뒤처리를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였고, 견딜 수 없이 나는 냄새까지도 덤덤히 참아내었다.

수업 시간에 쉼 없이 ‘삐약! 삐약!’ 거리는 소리에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고, 제일 늦게 태어나 힘없고 작은 병아리에게 먹이를 따로 더 주고 있는 모습은 우리의 부모가 그리하듯 조건 없이 주고 또 주고도 아까워하지 않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난민을 이해해요'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
'난민을 이해해요'라는 행사에 참여한 새롬초등학교 학생들

나누기&곱하기: 아프가니스탄 난민 돕기, ‘나누어 배가 되는 삶의 행복’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의 이슈들이 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고, 코로나 블루가 평범한 일상 같은 우리들의 삶.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난무한 우리들.

이러한 시기에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작은 것이라도 서로 나누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때마침 국가의 어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자국에서 살기 어려워진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가까운 진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새롬초 학생들은 그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기부 행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부는 돈 많은 부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거나 “남과 나눈다는 건 돈의 가치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내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나누고 베푸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라는 설명만으로는 어린 학생들에게 나눔을 이해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강요가 아닌, 작은 것이라도 내 것을 베풀고 나누는 습관과 소소한 것이라도 마음에 가득한 기쁨을 학생들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유네스코 주간 활동으로 전교생 대상 ‘평화 캐릭터’ 공모전을 실시하였다.

아이들은 온 책 읽기와 세계시민교육 동아리 활동을 통해 난민들의 실상을 알아보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기부활동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기부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에게는 공모전에 당선된 평화 캐릭터가 인쇄된 머그컵이 선물로 증정됐다..

머그컵을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닌, 나의 용돈을 모아 조금씩 기부하고 선물로 머그컵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가치로 따지자면 학생들의 기부금보다 더 비싼 머그컵이었지만 나누어 없어지는 것이 아닌 나눔으로 배가 되는 행복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나눔은 생각이 아닌 실천이기에 이 작은 발돋움이 미래에 큰 발자취로 남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하기: 지구 저편의 친구와의 연결, ‘나 + 너 = 우리’

한국의 세종이라는 도시 안에서 같은 아파트, 같은 학교,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만 지내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와 다른 언어, 다른 얼굴, 전혀 다른 환경의 아이들과 소통해보면 어떨까?

네팔에 보낸 엽서와 네팔 친구가 보낸 사진
네팔에 보낸 엽서와 네팔 친구가 보낸 사진

세계시민교육이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말이나 글로만이 아닌 진짜로 연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진짜 연결이라는 것을 해 보기로 했다.

봉사단체의 도움으로 네팔에서도 아주 작은 마을, 길도 나 있지 않은 산속으로 몇 시간을 가야 하는 오지의 Shree sharda secondary school의 아이들에게 우리 반 친구들이 서로 연결되는 두 장의 그림엽서를 그려서 보냈다.

그 엽서를 받은 네팔의 아이들은 그중 한 장의 엽서에 그들의 언어로 답장을 써서 보내줬다.

비록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닌 엽서로, 사진으로, 그리고 알 수 없는 서로의 나라의 글자들로 만나는 것이었지만 아이들은 그들이 세상 저편의 또 다른 우리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세상의 모든 삶의 방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학교의 선생님을 비롯하여 의사, 변호사 등의 많은 직업인들이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들 말한다.

사람보다 더 빠르게 계산하고 판단하고 더 정확하게 실행하는 기계들이 있기에 우리 인간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쓸모없어지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엔 AI나 완벽한 데이터베이스로도 해결되지 않고 대신할 수도 없는 것이 있다.

우리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고 어떠한 완벽한 계산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빼고도 남고 나누고도 더해지고 하나를 더했는데 배가 되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내 것을 뺏기지 않으려 손바닥을 꼭 움켜쥐고 있으면 내가 가진 것은 그 움켜쥠에 쉽게 부서지기 마련이지만, 어깨에 힘을 빼고 양팔을 크게 벌리면 이 세상은 내 품 안에 들어온다.

부화한 병아리를 새롬초 반 학생이 사랑스럽게 보고 있다.
부화한 병아리를 새롬초등학교 반 학생이 사랑스럽게 보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세상은 수학 공식처럼 정확히 나누어떨어지는 삶이 아니라 나누고 또 나누고, 빼고 또 빼도 더해지는 배가되는 기쁨을 아는 세상!

앎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앎이 삶이 되는 세상! 그 세상을 꿈꾸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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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건우 2021-12-20 17:24:08
1

건우아님 2021-12-20 17:26:11
멋진글이네요

ㅎㅎ 2021-12-20 17:45:37
정말 멋져요!!!!

미니미니 2021-12-20 17:58:26
이 시대에 참 필요한 교육이네요~

우스 2021-12-20 20:41:16
요즘 어린이에게 꼭 필요한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