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그리고 머리만 때리는 이웃 아이
윤창중, 그리고 머리만 때리는 이웃 아이
  • 강수인
  • 승인 2013.06.10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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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의 생활 속 이야기]모두가 공감하는 것이 최고다

   학교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책가방을 벗어던지고 농구 등 온갖 놀이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 천진하기 이를 데가 없다.
얼마 전 대통령 방미 때 수행한 전 대변인인 윤창중의 성추행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옛날에는 그냥 참고 견뎌야 했던 성 추행 사건들이 요즘은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게다가 갑과 을의 관계로 부당함을 설명하며 연일 신문 사설과 칼럼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미국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미국에 가서 몇 달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아침에는 학교까지 아이들을 데려다 주기 힘들어서 아이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는 8시 15분쯤 스쿨버스가 오는데 보통 아이들은 20분정도 전부터 나와서 가방을 던져놓고 농구나 장난을 치고 놀다가 버스가 오면 타고 갔다.

이웃집에 사는 백인아이 7, 8명에 한국아이 4명, 히스패닉계 아이 2명 정도가 항상 탔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타는지 한국 엄마 한둘은 나와서 지켜보기도 하지만 보통 집안에서 브라인드 사이로 아이가 탈 때까지 살짝 내다보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우리 애 보다 상급생인 같은 우리나라 아이 하나가 우리 애 머리를 계속 쥐어박는 것이었다. 다른 집 부모가 지켜보고 미국 친구, 우리나라 친구들도 다 있는데 말이다. 급기야 우리 아이가 “하지 마”라고 했는데도 그런 행동은 멈추질 않았다. 나중에는 차안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곤 하였다고 했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 창피하기도 하고 또 관계도 어색해 질까봐 며칠을 더 지켜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참 곤란한 상황이 됐다.

참다 못해 남편에게 그 아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아이의 그런 행동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부탁 좀 하라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전화한 뒤에 우린 더 힘들어 졌다.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어 봤더니 그런 적 없다고 하더라며 오히려 우리를 이상하게 몰았다. 더구나 동네 사람들이나 같이 차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이 다 보아서 필요하면 증인이라도 되어줄 수 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2008년 그해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때다. 마침 오바마 민주당후보가 대학에서 유세를 하는데 연설주제가 변화(Change) 였다. 미국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많은 분야에서 참 많은 변화가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의 거짓말과 계속되는 머리 폭행에 나름대로 터득한 미국식 대응방법을 해보기로 작정했다. 다름 아닌 증빙 사진을 찍는 것인데 어쨌든 그러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현관에 섰던 기억도 있다. 나중에는 차안에서도 그런다고 하니 기가 막혀서 다시 그렇게 하면 버스 기사에게 알리라고 했다. 그러면 경찰에 신고해서 처리된다고 일러줬다.

나중에 그 가족이 먼저 귀국했는데 그 때까지 참 어색하고 꺼려졌었다. 갈 때쯤 되서야 미안하다고 얘기 했다고 한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다른 나라에서 다른 국민에게 보인 우리의 덜 성숙한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았고 또 창피하기도 했다. 지난달 윤창중 사건을 보면서 참 닮은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교훈과도 같이 그간의 생각이 정리되는 계기도 되었다.

먼저,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인간으로서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누구나 다 별것도 아닌 일이라 여기고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자기 잘못을 말로 인정하기를 꺼린다. 사실 이 한마디로도 피해자가 조금 위로 받고 누그러질 수도 있는 일을 거짓말하고 자꾸 덮으려고 해서 화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법으로 따지기 전에 인간으로서 양심적으로 정직하게 고백하고 뉘우친다면 법의 영역까지 가지 않고 해결을 볼 수 있는 일들이 엄청 많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사회적 약자의 소리를 듣는 마음이 생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참 기뻤다. 여성과 아이, 노인과 장애자 등을 배려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신변보호에 힘쓰는 선진국처럼 우리도 강자의 횡포에 눈물을 머금고, 어리다고 여자라고 힘이 없다는 등의 갖은 이유를 들어 참기만을 강요하는 시대는 이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제도만으로도 또 목소리만 높인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제도와 의식이 같이 성숙될 때 가능한 것인데 그런 조짐을 보이는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 지역의 법대로 그곳에서 해결하는 게 원칙이다. 실제 주위에서 많이 겪은 일인데 미국에서 여행 중에 교통사고가 나면 아무리 멀더라도 사고가 난 관할지역에 가서 경찰관 지시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그것은 권력 유무에 관계없이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기 때문이다. 우린 가끔 법을 선택적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유리하면 법을 들이대고, 불리하면 정(情)을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꼭 바꿔야 할 한가지다.

   시내 페스티벌(Down Town Festival)을 하는데 기마경찰관이 정식복장을 하고 행사안내를 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머리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머리는 인격이다. 우리가 외국에서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이며 추행으로 오인받기 쉬운 경우다. 칭찬을 하거나 귀여울 때 머리를 쓰다듬고 또 화가 나서 싸울 때도 머리를 때리고 얼굴을 때리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공익광고에서 조차도 칭찬하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어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이젠 하나하나의 동작과 연출에도 신중해야 한다. 세계화를 외치면서 외국으로 나가고 또 다문화 사회가 익숙해지는 요즈음이기에 문화 선진국으로 가야하는 절실함은 더 간절하다.

이젠 ‘우리 것이 최고다’가 아니라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 최고다’라는 인식이 필요한 때다.

     
   
 
강수인, 대전 출생, 대전여고, 충남대 졸업, 침례신학대 영양사, 미국 미주리주 콜럼비아 시 2년 거주, 미용사 자격증 취득 후 노인복지관, 군부대 봉사활동 eskang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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