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자동차 김제원·창원 형제, 세종시 곳곳에 흔적 남아있다
신진자동차 김제원·창원 형제, 세종시 곳곳에 흔적 남아있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21.10.21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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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로 충령탑 확장 보수... 형제 공덕비 연기군민 이름으로 세워져
경부선 철도 육교 건설, 면지역 가설극장 영화상영 등 세종과 인연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을 이끈 김제원, 창원 형제가 사재를 털어 확장보수한 충령탑

“신진자동차 창업주 김제원, 김창원 형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세종시 향토사를 연구하고 있는 윤철원 전 조치원읍장(64)은 대한민국 자동차공업의 효시(嚆矢)를 만든 김씨 형제와 연기군의 인연이 잊혀지는 걸 안타깝게 여기면서 “늦었지만 흔적을 찾아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업가, 정치인으로 알려진 형 김제원씨는 신진자동차 성공을 바탕으로 현실참여의 길을 선택했고 동생 창원씨는 학교 설립을 통한 후학 양성과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모두 어린 시절 조치원읍에서 성장했으며 조치원이 고향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자료에는 충북 청주시 오송읍으로 적혀 있다. 다만 동생 창원씨가 대동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을 보면 유년시절을 조치원에서 보낸 것은 틀림이 없다.

이들 형제가 세종지역에 남긴 흔적으로 대표되는 것이 바로 조치원읍 침산리 충령탑이다.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모시는 충령탑이 보잘것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명맥만 유지하자 당시 설일진 연기군수의 건의로 보수 확장, 나라와 겨레를 위해 산화한 넋을 기리는 장소로 만들었다.

1969년 10월 당시 설일진 연기군수가 김제원, 창원 형제의 도움을 받아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영령을 모시는 조형물과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충령탑으로 오르는 길 오른편에 김제원, 창원 형제에게 감사하는 ‘송덕비’가 연기군민이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이와 함께 조치원읍을 가로지르는 경부선 철도를 건너다닐 수 있는 육교를 역시 자신의 돈으로 건설했고 동물원을 찾기 힘든 당시 사정을 감안, 교동 노인회관 앞에 기린·호랑이·사자 등 모형을 만들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효과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육교는 조치원읍 동서관통도로 건설로 자취를 감추었다.

충령탑 오르는 길 오른편에 세워져 있는 김제원, 창원 형제 송덕비

뿐만 아니다. 1955년 신진공업사를 설립하여 자동차산업을 발전시킨 것을 토대로 형 제원씨는 연기군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다. 1969년 김용태가 박정희의 3선개헌을 반대하다가 제명되자 연기·대덕지구당 위원장에 임명됐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에 공화당 후보로 당선되면서 9대까지 재선되기도 했다.

정치적인 입지 강화라는 숨은 뜻도 있었겠지만 영화관이 없었던 면지역에 가설극장을 만들고 순회 상영하는 문화사업에도 관심을 쏟았고 지역민들을 부평 소재 신진자동차 공장에 곧잘 견학시켰다.

또, 조치원읍 신안리에 신진자동차 직원 연수원을 건립하고 사원 재교육이 연기군에서 이뤄지게 만들어 지역을 알리는 계기로 삼았다. 연수원 건물은 지금도 남아 있다.

황우성 세종향토사연구소장은 “세종시에서는 자그마한 전통와 역사라도 발굴하고 가꿔 미래로 나아가는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며 “김제원, 창원 형제의 흔적을 정리해서 연기군과의 깊은 인연을 찾아내고 역사성을 더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연기군의 소소한 유래와 역사를 기록한 ‘추운실기’에는 충령탑 건립에 관한 비사가 4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으며 ‘김군 형제의 성스러운 사업’이라고 표현했다.

신진자동차 연수원으로 사용됐던 조치원읍 신안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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