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세종에 나만큼 지분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이완구, "세종에 나만큼 지분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 김중규 기자
  • 승인 2021.10.1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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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세 짧은 인생 마감한 이완구 전 국무총리, "언론에 대한 배려, 이해 깊은 분"
'언론=동반자', 어려움 이해하고 해외연수 프로그램 마련으로 파트너로 여겨
2019년 목요언론인클럽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이완구 전 총리는 "충청 대표주자가 없다"고 개탄했다. 

“김 대표! 당신들이 하는 여론조사,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거 반드시 1등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상대방에서 악용합니다. 잘 알잖아요.”

2006년으로 기억된다. 이완구 충남지사 후보는 당시 대전의 인터넷 신문 ‘디트뉴스24’ 대표였던 기자와 만나 홈페이지 상에 여론조사를 1등으로 만들어놓았다며 거리낌없이 털어놓았다.

그 때는 여론조사 법령이 엄격할 때가 아니라서 가능했지만, 간간이 인터넷 신문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야말로 ‘재미삼아’(?) 자주 정치인들을 건드렸다.

‘별 것 아니다’, ‘1등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거슬렸지만 언론과 만남은 언제나 소탈했고 대범했다. 그리고 배려를 했다. ‘세종의소리’를 만든 이후에는 “회사 경영은 잘 돌아가나”라며 걱정의 말도 종종 했다.

국무총리를 마지막 공직으로, 너무나 아까운 71세의 일기로 세상과 세종과 인연을 마감한 이완구 총리와의 첫 만남은 대전일보 사회부장이었던 1994년이었다.

첫인상은 ‘단단하고 야무진 경찰’이었다. 충남지방경찰청장을 하기에는 너무 젊었고 늘 단정한 용모가 깐깐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젊음의 패기로 언론계와 좋은 관계를 맺고 떠났다. 아쉬움 속에 중앙에서 클 인물이라는 평을 낳았다.

대전, 충남에서 언론계에 몸담았던 웬만한 기자들은 대부분 이 총리와 크고 작은 인연이 있다. 경찰청장, 충남지사, 국회의원 등 그가 남긴 궤적은 크고 많았기 때문이다.

그 발자국은 기자들에게 늘 즐거운 추억이 되고 몇 번 퇴고(推敲)를 해도 빙그레 웃음짓게 만든다. 여론조사 1등도 그랬고 상대방이 이용한다는 말도 그랬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맨 먼저 떠오른 그 기억은 또 다른 기억을 소환했다.

충남도지사 시절, 인터넷신문을 운영하면서 특별대담차 지사실을 찾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어렵지, 내가 광고하나 큰 거 해줄게”라며 선빵(?)을 날렸다. 뜸을 들이거나 간을 보는 그런 일은 없었다. 서로 다 아는 사이인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는 언론인들도 외국을 많이 다녀봐야 시야가 넓어진다며 해외 연수를 지원하기도 했다. 기자 퀄리티가 높아져야 도정도 함께 발전시킬 수 있다며 언론을 동반자로 본 것이다. 한동안 언론인들이 해외 연수 명목으로 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간담회 후 지역언론인들과 오찬을 하면서 대화를 하고 있는 이 전 총리

중견언론인들 모임인 ‘목요언론인클럽’ 초청 토론회는 별일 제쳐놓고 참여했고, 국회에 있을 때도 지역 언론인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늘 충청이라는 지역을 강조하면서 고향 발전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 2019년 2월 열린 충청권 정치 발전 토론회에서 “현재 정치 지도에 수도권 중부권 영·호남권은 있어도 충청권은 없는 실정”이라며 “이대로는 결코 안 되며 충청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 총리를 생각하면 입가에 살짝 웃음이 나온다. 바로 약간의 ‘뻥’과 ‘오버’ 때문이다. 괜히 안 해도 될 소리를 정색을 하고 오버를 한다. 처음 대한 기자들은 오해하기 십상이다. 국무총리 시절 중앙지 기자들에게 윗선을 잘 안다는 등 문제가 됐던 발언도 이 총리를 잘 아는 지역 기자들이었으면 “또 오버를 한다”고 웃어넘길 수도 있었으리라.

이 총리는 기자와 사석에서 “김 대표! 세종시에 나만큼 지분있는 사람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고 큰소리를 쳤다. 지난 총선거 때 김병준·김중로 후보 지지를 위해 세종을 찾았을 때도 그랬다.

사실 그렇다. 충남지사 시절 세종시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도시가 갖춰질 때까지 충남도 산하에 두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생각의 차이일 뿐이지 그게 충남도가 잘되고 세종시가 못 되도록 하기 위한 꼼수는 절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이명박정부 수정안이 나왔을 때 도지사 직을 던졌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중앙정부, 그것도 대통령의 정책에 반발하며 직을 던진 건 과문한 탓일지 몰라도 들어본 적이 없다. 자신감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정치인은 죽을 때 화려하게 죽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는 피를 흩뿌리고 화려하게 산화했고 그게 재기의 힘이 됐다. 보란 듯이 국회의원, 국무총리로 자신의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그의 행진은 그토록 사랑했던 고향의 덫에 걸려 어이없이 무너졌다. 충청권에 기반을 둔 대아건설 사장의 극단적인 선택이 최단명 국무총리라는 주홍글씨를 남겼다. 대법원에서 무죄로 최종 판결이 났지만 인생 이완구의 정치 열차는 떠난 뒤였다. 정치만 본다면 패잔병 가슴의 훈장이 됐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국무총리에서 대권 주자, 그리고 충청권 정치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이완구 카드는 안개처럼 허공으로 사라져 갔다. 지역의 기대를 저버린채... 그렇게 정치를, 충청을, 세종을 떠나갔다.

필자와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 이 전 총리가 대통령이 되면 춘추관장은 맡아 놓았다는 조크를 들은 사진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13일 ‘이완구 전 국무총리 위독’이라는 보도에 이어 14일 부음이 전해졌다. 백혈병이 완치됐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무방비 상태로 맞은 비보였다. 충격은 더 컸고 가슴이 더 아렸다.

그는 갔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보내지 않았다.

“김 대표! 세종에 내려가니 한번 봅시다.”

이 전갈을 기다리고 기다리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온몸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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