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정기, 용수천 타고 세종으로 흐른다
계룡산 정기, 용수천 타고 세종으로 흐른다
  • 임비호
  • 승인 2021.09.0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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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칼럼] 계룡산 발원한 용수천, 정감록의 수도와 일맥상통
새로운 세상 방향 말해주는 성덕교 위령비... 안타까운 역사 간직
도암교에서 바라다본 용수천 

며칠 전 동학사로 들어가다가 생각지 못한 입간판 하나를 보게 되었다. ‘용수천’이라 쓰여 있었다.

‘우리 세종시에도 이런 하천이 있는데....’

‘같은 하천일까 다른 하천일까’ 라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세종보 건너편에 숲뜰근린공원과 당진-대전 간 고속도로 사이에 금강으로 합류하는 하천 이름도 용수천이다. 감성리 학마을을 건너 흐르면서 대평리라고 불리는 용포리와 성덕리를 가르는 하천이다.

왜 같은 용수천이 지자체에 따라 달리 설명되었을까?

호기심이 발동하여 자료를 찾아보았다.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에는 용수천을 ‘세종시 금남면 성강리에서 발원하여 금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이 자료에 의하면 용수천은 이름만 같은 다른 하천으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국교리 고인돌 안내판에도 그 앞에 흐르는 하천을 ‘갑천’으로 기재되어 있어 다른 하천으로 생각 들게 하였다.

의구심이 들어 『디지털공주문화대전』을 찾아보니 용수천을 ‘세종시 금남면 성강리’ 아닌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계룡산 북쪽사면 일대)에서 발원하여 세종시 금남면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왜 행정구역에 따라 이리 다르게 표시를 해 놓는 것인가?, 지역에 오래 산 사람도 헛갈리는데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은 이런 자료들만 봐서는 이해하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료를 보면서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동학사 입구의 용수천과 세종시에 있는 하천은 같은 하천이라는 낯선 이해였다. 행정구역도 다르고 거리도 좀 있는데 계룡산 동학사 앞 은선폭포에서 흐르는 물이 세종시까지 흐른다고 생각을 하니 미묘한 기분도 들었다.

더욱이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에서는 용수천을 세종시 금남면, 공주시 반포면뿐만 아니라 대전시 유성구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정의하고 있어 그 기분은 증폭되었다. 소위 관암지맥이라고 불리는 능선을 기준으로 대전의 반석역 일대의 낮은 구릉이 물줄기를 용수천과 갑천으로 가르고, 일부가 안산천이 되어 세종시 금남면 용담리에서 용수천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에 용수천은 공주의 계룡산에서 발원하여 대전의 안산천과 만나 흐르다 세종의 금남면 감성리에서 금천천과 합류하여 금강으로 흐르는 하천인 셈이다. 그 길이가 20.90km이고, 유역 면적이 95.29㎢이 된다. 구릉성 산지들이 연속적으로 발달해 있어 대규모 충적 평야가 형성되지 않았지만 골골에 나름의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국곡리의 고인돌 모습

용수천은 계룡산에서 발원하고 있다

세종시가 용수천을 통해 계룡산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 좋다. 계룡산은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열망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정감록에 의하면 정도령이 출현하는 곳이고, 새로운 민족 종교의 발원지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이는 세종시가 새로운 행정수도와의 심리적 연결성을 가지게 한다.

세종시는 국가 균형발전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이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자는 사회적 변혁의 발로라고 본다면 계룡산은 그에 대한 풍수적인 상징성을 더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용수천은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고려 왕건이 차령 이남의 사람들을 거용하지 말라는 훈요십조의 풍수적 근거가 금강이 북으로 흐르는 모습과 계룡산이 화살촉을 당긴 활시위같은 모습 때문이라는 속설이 있다. 이는 개성이나 서울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들이 볼 때 반역의 기운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변혁의 기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변혁의 기운이 용수천을 통해 세종시까지 흘러 들어온다고 하니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동학사는 새로운 세상의 씨앗을 품고 있다

어쩌면 동학사는 계룡산이 가진 변혁 기운의 역사적 모티브가 되는 곳이다. 동학사에는 특이하게 현실에서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을 모신 사당이 있다. 신라의 시조와 박제상의 충혼을 모신 동계사, 고려말의 충신인 삼은(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을 모신 삼은각, 사육신과 단종 그리고 계유정란으로 돌아가신 이들을 모시는 숙모전이 있다.

이질적일 것 같은 사찰과 사당이 공존하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공통점들이 있다. 나라는 사라졌지만 신라의 정신을 기억하고자 하는 동계사, 같은 성리학이지만 현실 정치에서 밀려난 이상적 유학자들을 모신 삼은각, 집권 지배층에서 적폐 세력으로 살아야 하는 불자들이 모여 이상은 있으되 현실에서 밀려난 이들의 삶과 혼이 있는 곳이다.

계룡산 상신리에 있는 소설 '단'의 실재 인물인 봉우 권태훈 선생의 묘소와 마을

그리하여 이곳은 자연스럽게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씨앗을 잉태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 올바른 세상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권력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자연스레 그 감추어진 열망들을 차곡 차곡 쟁여두었을 것이고, 쌓인 신념들이 정도령이나, 후천개벽, 대동세상이라는 말로 자라났을 것이다.

계룡산 상신 계곡에는 소설 단(丹)의 실제 주인공이 잠들어있다

더욱이 삼불봉과 장군봉을 넘어 상신 계곡 주변 마을에는 한민족 고유 수련 방법을 소재로 한 소설 단(丹)의 실제 주인공인 봉우 권태훈 옹의 흔적과 무덤이 있다. 소설 단(丹)은 봉우 권태훈 옹의 구술을 김정빈 작가가 지어 40만부 이상이 팔린 초 베스트셀러였으며, 이후 ‘단(丹)열풍’이라는 사회 현상을 일으킨 책이다.

이 책은 나라는 망해도 정신은 존재한다는 구호 아래 독립 운동을 하던 항일독립운동가들의 한민족 고유 수련 방법을 전승받아 대중적으로 보급하는 단초를 마련했으며, 일제 강점 시대는 벗어났지만 민족 분단의 고착화, 경제의 고속 성장에 따른 부의 편중, 정신의 황폐화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한 줄기 빛처럼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외치는 광야의 소리였다.

90년대 이후 요하문명(홍산문명)의 발견으로 더 확실하게 밝혀졌지만 최치원 선생이 말한 현묘지도(玄妙之道)라는 한민족 고유의 정신과 수련 방법을 시대에 맞게 제시한 분의 흔적과 무덤이 용수천 인근에 있다는 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용수천 인근에는 이상하리만큼 민족 정신 함양을 위한 문화들이 많은데, 감성리 학마을에서 합류하는 금천천 상류에는 ‘금강대도’라는 민족 종교 총본산이 있다. 18세부터 구도와 수련에 정진한 창시자 이승여(1874년 생)는 1906년에 도를 깨우쳐 1910년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으로 내려와 포교를 시작하여 1923년 지금의 세종시 금남면 금천리로 총본부를 이전하였다고 한다.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금강대도의 교리를 “천·지·인 삼합의 원리에 순응하며, 인간의 도덕을 수립 함에 있어 유·불·선 삼도를 만법귀일(萬法歸一)의 원리로 통합, 실천하여 심(心)·성(性)·신(身) 삼합의 경지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내단(內丹)·외단(外丹)이 합일된 진단(眞丹)을 이루어 차생군자(此生君子)와 내생선불(來生仙佛)의 극락을 향유하게 하고, 인류사회에서는 도덕 문명이 개화되는 대동세계(大同世界)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성덕교 위령비

성덕교 위령비는 새로운 세상의 방향을 말해준다

새로운 세상의 열망을 품고 흐르는 용수천이 하류 지점에 오면 그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참으로 슬픈 사연을 담은 위령비 하나가 세워져 있다.

43년 전인 78년 7월 19일 이곳을 배로 건너다 전복되어 세상을 등진 15명의 어린 학생들을 기리는 위령비이다. 이곳은 평소에는 물이 30m정도로 기존에 놓여진 다리를 통해 건널 수 있었으나 강물이 불어 전날도 결석한 학생들이 이틀이나 결석을 할 수 없다하여 배로 건너다가 참사를 당한 곳이란다. 성덕교 위령비는 우리에게 꼭 새로운 세상이란 이런 꽃다운 학생들이 억울하게 죽는 일 없게 세심한 배려까지 준비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임비호, 조치원 출생, 국제뇌교육과학대학원 지구경영학 박사과정,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전)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전)세종시 환경정책위원, (전)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
이메일 : bibo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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