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앞은 일하는 기관, 뒤는 배설기관... 앞으로 보며 살자
인체 앞은 일하는 기관, 뒤는 배설기관... 앞으로 보며 살자
  • 이경도
  • 승인 2021.08.24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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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도칼럼] 주는 게 좋은 사람 vs 받기만 원하는 사람
명리학에서 최고의 복 '식신'(食神), "너도 와서 먹어라"
명리(命理)에서 최고로 치는 복성(福星)은 식신(食神)으로 밥그릇이 커서 "너도 와서 먹어라"라는 것이다. 사진 출처 : 다음

주위에 보면 남들에게 잘 베풀고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어떻게든 안 주고 받기만 하려는 사람도 있다.

평소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내 손에 먹을 것이 있으면 내 입에 넣기보다는 옆에 사람에게 먹이면 얼마나 맛있게 먹을까부터 상상한다. 때문에 나는 조금만 먹고 누군가에게 먹이고 그가 좋아하는 모습을 즐기고 뿌듯해 한다.

하지만 나도 먹고 싶을 것이었기에 너무 많이 퍼주면 뒤에서 후회하기도 하는데 다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여지없이 퍼주는 기질이 발동하는 것이다.

잘 베푸는 사람에게는 벗겨먹으려는 얄미운 사람도 잘 꼬여들어 선의를 가진 이의 마음을 상하게도 한다. 주는 사람은 안 주면 불편하고, 퍼주면 만족하고, 너무 많이 퍼줘서 후회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하지만 이를 대리만족 정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이타심과 구휼의식과 같은 훨씬 숭고한 정신이 깔려 있다.

명리(命理)에서 최고로 치는 복성(福星)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식신(食神)이다. 주변 글자와의 관계가 있겠지만 일단 사람의 명에 식신이 있으면 큰 밥그릇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며 밥그릇이 크다보니 ‘너도 와서 먹어라~’ 하는 관념을 가지게 된다.

식신이 없는 사람은 식신의 운을 지나갈 때 삶이 더욱 윤택해진다. 식(食)의 뜻이 밥이다 보니 이 식신의 운에는 살이 잘 찌며 다이어트가 잘 안 된다.

식신의 행위로는 말 그대로 밥을 주는 것이 있으며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 기부, 재능 공유, 교육 등이 있으며 쓰레기를 줍거나 길 위의 깨진 유리조각에 누가 다치지 않게 치워주는 것도 식신의 행위에 들어간다.

이 식신은 내가 생(生)하는 기운을 말하는 것으로 내가 나무(木)라면 불(火)이, 내가 불(火)이라면 흙(土)이, 내가 흙(土)이라면 쇠(金)가, 내가 쇠(金)라면 물(水)이, 내가 물(水)이라면 나무(木)가 된다.

받기만을 좋아하고 바라는 사람은 어떻게든 행동은 최소화하고 이익을 구하기 위해 부단히 머리를 굴린다. 이런 사람은 무얼 할 때도 옆의 사람이 알도록 티를 잘 내는데 도와주려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냅다 던져준다.

심하면 자기 집에 손님이 와도 부려먹는다. 보통 자신의 머리가 남들보다 좋다는 우월감을 깔고 있다. 때문에 손발을 써서 하면 될 일도 머리를 굴려 남에게 떠넘기려는 심리이다.

이렇게 받기만을 바라는 것은 인수(印綬)의 기운이다. 이것은 내가 생해주는 것이 아닌 나를 생해주는 기운으로서 내가 나무(木)라면 물(水)이, 내가 물(水)이라면 쇠(金)가, 내가 쇠(金)라면 흙(土)이, 내가 흙(土)이라면 불(火)이, 내가 불(火)이라면 나무(木)일 때를 말한다.

상생의 기운은 木→火→土→金→水→木→火‥‥의 방향으로 순환해야 하는데 나를 생해 주는 기운이 강하면 역방향을 쳐다보는 모습이 된다. 즉 나의 행함을 통해 무언가를 구하는 것이 순리인데 역방향을 바라보니 누가 나에게 뭔가를 안 주나 하는 심리가 스며들게 된다. 木의 기준으로 봤을 때 木→火의 방향이 아닌 水←木의 모습이다.

사람은 손, 발, 입, 눈 등의 모든 표출 도구가 앞을 향해 있다. 손으로 남을 돕고, 발로서 뛰며, 입으로 가르치고, 눈으로는 할 일을 찾는다. 하지만 사람의 뒤에는 무엇이 있나? 배설기관이 있다. 앞을 향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고 있으니 무언가를 얻으려는 마음은 큰데 누군가를 생해야 할 자리에는 배설물만 나올 뿐이다. 그래서 생해주는 오행만 있고 생하는 오행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가 더 이상 필요 없어서 버리는 것 외에는 얻을 것이 없다.

언뜻 보면 나를 생해주는 기운이 좋아 보이고 내가 생하는 기운이 뭐가 그리 좋은가 할 수 있다. 오행이라는 것은 상생의 방향으로 순환하는 것이 순리이다. 내가 무언가를 원한다면 생함을 일으켜 순환을 통해 다시 나에게 돌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좋은 것을 생하면 좋은 것으로 돌아올 것이고 나쁜 것을 생하면 나쁜 결과로서 보답이 돌아온다. 그러니 내가 생하는 운동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론(因果論)과도 상응한다.

이경도, 명리학 석사, 목원대 음악대 관현악과 졸업(클래식 기타 전공), 공주대 동양학과 역리학 전공, 세종,대전에서 명리학 강의 및 연주활동(현),
이메일 : lkdlkd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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