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 곳에는 용이 살고 있을까?
아직도 그 곳에는 용이 살고 있을까?
  • 임비호
  • 승인 2021.08.07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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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 칼럼] 연기 제4경 용당기암(龍塘奇岩)... 용의 전설 어린 곳
용대기산, 바위산 깊은 소에 이무기 아닌 용이 직접 살았다던 전설
이무기가 아니니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용댕이산에서 유래되고 있다.

용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때였다. 소풍가는 날이면 비가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가 이랬다. 1,000년 묵은 이무기가 있었는데 용이 되려 하늘에 오르는데 학교 소사(70년 대 학교를 관리하던 분을 부르던 명칭)가 몰래 그것을 봐서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다시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 좋은 행사가 있으면 심술이 나서 비를 내린다는 것이었다. 하여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날 비가 오면 우리는 늘 학교 소사 아저씨를 원망하곤 하였다. 성장하여 소풍날 비를 내리는 용 이야기는 약간 다르지만 각 학교에 거의 전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픽 웃음이 나왔다.

농경 정착 생활을 주로하는 문화에서는 용에 대한 전설과 지명이 다양하게 전해진다. 마을의 우물에서, 둠벙에서, 강가의 소(沼)에서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용강(龍江)·용연(龍淵)·용담(龍潭)·용추(龍湫)·용소(龍沼)·용정(龍井) 같은 용과 관련된 지명도 이에 해당한다.

한자어 용(龍)은 고유어인 물을 뜻하는 ‘미르’의 한자식 표현이라 본다면 용에 관련 된 다양한 표현들은 물을 신격화한 표현일 것이다. 자연의 물(水)이 신으로 표현될 때는 용이 되는 것이다. 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농경사회에서 용은 중요한 신으로 격상되는 것이다. 하여 가뭄이 심할 때는 기우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종시에 용(龍)과 관련된 지명을 가지고 기우제를 지냈던 장소이면서, 연기팔경 중 제4경인 곳이 있다. 연동면 명학리에서 합강리 오토캠핑장으로 가는 길에서 황우산이 금강 쪽으로 뻗은 줄기가 끝나는 곳인 용대기산(97.6m)이 바로 그곳이다. 금강의 물길이 매포에서 부강 금호리를 휘돌아 흐르다 금남면 부용리 부용봉를 만나 역방향으로 휘돌아 흐르다 만나는 곳이다.

용대기산(97.6m)은 바위산이라 금강의 물길이 이곳에 이르면 부딪쳐 그 깊이가 수십 길 되는소(沼)를 이루게 된다. 특이한 것은 대부분 용의 전설은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나오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실지로 용이 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바위산의 깊은 소에서 나오는 장엄하고 엄숙한 지형적인 특성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용대기산 위 금강 다리에서 본 광경, 물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 대하여 『여지도서』에서는 “용당(龍塘)은 내태에서 서낭당 고개를 지나 금강변에 위치하며 ‘용댕이’라고 부른다. 용당리는 관문에서 15리, 편호 18호이며 남자 35명, 여자 42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933년 발간 된 『연기지(燕岐志)』에는 이 용담기암(龍塘奇岩)에 대하여 이리 노래하고 있다.

孤巖奇立俯龍塘 바위 하나 우뚝 솟아서 용당을 굽어보니

龍去塘流巖獨蒼 용은 간데없고 물은 흘러 바위만이 홀로 푸르르네.

復有垂楊頻科楫 축 늘어진 수양버들 절하듯 드리우니

東風吹似起元章 동풍이 불어와 원 모습으로 일으킨다.

탄유(灘臾) 임영철(林營喆)

하지만 지금은 기억만 있을 뿐 그 경관을 느끼기에는 쉽지 않다. 대청댐이 생겨 과거처럼 크고, 강한 물길이 없어지고, 하구둑이 생겨 밀물 썰물의 영향이 감소되어 토사로 인해 지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자건거 길이 생기면서 졸지에 음습한 주행 주의 구간으로 변하였다.

용댕이 매운탕 식당 옆 합강 양수장에서 백천까지 구간 중 바위산으로 된 산기슭이 그곳이다. 한 때는 마을 신앙의 성소이었는데, 금강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바위산이 가지는 웅장한 엄숙함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자연경관을 보여 주었지만 이제는 그저 자전거 길을 위한 테크길 주변으로 전락하였다.

용대기 산의 기암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세종시 금강 문화는 싹 지워지고 새로운 지명들이 지도를 차지하고 있다. 합강섬 꽃나루는 강산공원, 동진나루는 한나래 공원, 앵청이 나루 앞은 한글공원으로 개명되었다. 오랫동안 살았던 지역민들의 삶의 문화가 졸지에 뿌리없는 공원으로 둔갑을 한 것이다. 이 문제는 바로 잡아야 할 지역의 큰 과제이다. 지명이 살아 있을 때 문화도 역사도 복원이 가능해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 일을 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용암기암 구간에 안내 간판이라도 세웠으면 한다. 이곳은 연기팔경 중 제4경인 용암기암(龍塘奇岩)과 제5경인 금강귀범(錦江歸帆)이 겹치는 지역이기도 하다. 향토 역사와 문화를 기억하는 것은 후손에 대한 우리의 숙제이도 하기에 이곳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는 안내판이라고 세웠으면 한다. 안내 표지라도 있으면 바위산 자전거 테크길이 지역의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되어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임비호, 조치원 출생, 국제뇌교육과학대학원 지구경영학 박사과정,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전)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전)세종시 환경정책위원, (전)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
이메일 : bibo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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