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어? 진짜!”
“에이~ 그래도 선생님 너무 하세요~ 여학생에게 선동열이라니~!”
조용한 야간자율학습 시간, 교실은 일순간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가뜩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고에서 담임선생님의 이 말은 다음날 전교생에게 전해졌고, 급기야 그 소문의 당사자인 나의 귀에도 들어오고 말았다. 지금과는 달리 새침하고 소심했던 나는 담임선생님의 얼굴을 보는 것도 불편했다.
그 후 내 별명은 ‘나고야의 태양, 선동열’이 돼 버렸고, 전교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 ‘선동열 사건’이 내 마음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담임선생님은 두 번째 별명을 선사해주셨다. 그날은 담임선생님 과목이었던 국사 시간이었고, 때마침 우리는 국사와 중국사를 연결하여 배우고 있었다. 수업 중 담임선생님의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지셨다.
“얘들아! 청태조 아니? 누르하치 말이야!”
역사에는 문외한이었던 나를 포함한 우리 반 아이들은 멀뚱멀뚱 담임선생님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담임선생님의 시선은 천천히 내게로 향해졌고, 그 시선을 따라 학급 친구들의 시선도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잠깐 뜸을 들이신 후 두 번째 별명의 결정적인 발언을 하셨다.
“그 누르하치가 말이다. 저기 혜진이처럼 생겼다.”
“푸하하하~ 누르하치래~ 혜진이는 어쩌면 좋아!!”
“아이~ 선생님~ 왜 자꾸 혜진이만 가지고 그러세요. 저러다 혜진이 울겠어요!”
교실은 예의 그 감수성 풍부한 여고생들의 탄성과 웃음소리로 덮여버렸고, 그 중에서 유일하게 나 혼자만 웃지 못하고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을 들지도 숙이지도 못한 채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잦아진 후, 담임선생님은 학급 아이들에게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얘들아! 왜 웃니? 선동열이나 누르하치나 다 유명한 사람들 아니니? 그런 사람들을 닮았다는 건 혜진이 역시 그렇게 훌륭하게 될 거라는 의미야! 혜진아! 넌 나중에 잘못되고 싶어도 잘못 될 수가 없겠다. 그렇게 유명하고 훌륭한 사람들을 닮았는데 어찌 잘못 될 수 있겠니? 넌 분명 크게 될 거야!”
이상하게도 선생님의 그 말씀은 그 동안 서운했던 내 마음을 단번에 녹여주었다. 더 이상 ‘선동열’이나 ‘누르하치’가 부끄럽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축복의 말씀이었고, 희망의 말씀이었으며, 사랑의 말씀이었다.
어쩌면 그 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내 별명이 ‘나고야의 태양, 선동열’이나 ‘누르하치’라고 하여도 더 이상 속상하거나 기분 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나 역시 담임선생님과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선동열’이나 ‘누르하치’로 부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마음 속에서는 그 별명을 잊지 않고 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평범한 여고생을, 매사에 소심하고 불평 많았던 나를 이렇게 키워준 원동력이 바로 그 ‘별명’이었음을 말이다.
그 담임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실까? 15년 전, 꽃향기 가득한 봄날,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그 별명이 내게 희망이 되었고, 빛이 되었으며, 그리고 현재의 나를 만들어주셨다는 것을! 교사가 된 지금, 나 역시 아이들에게 별명 붙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엔 어리둥절해 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내가 붙여준 별명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한다.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15년 전 ‘선동열’과 ‘누르하치’로 내게 꿈을 주셨던 선생님처럼, 나 역시 별명을 통해 그들에게 소망과 꿈을 건네주고자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