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
  • 강수인
  • 승인 2013.05.23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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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의 생활 속 이야기]무엇이 진정한 예절인가

   미국에서 알게된 한국아이 입양가족과 2년만에 경주 불국사 연등 밑에서 다시 만났다.오랜만에 만나서 서먹서먹할 법도 한데 금방 친해져서 장난을 하면서 노는 모습에서 마음으로 사귄 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부터인가 방송에서 한글 자막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출연자들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더니 얼마 전부터 조금씩 각색(?)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출연자들의 대화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반말이 거슬렸는지 마지막에 ‘요’자를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이가 어린 방송인에게 친근감의 표시로 했다고는 하지만 반말이 왠지 시청자에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제작진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말은 위, 아래 또는 또래 간에 적절한 올림과 내림이 있다. 그래서 존칭이 없는 영어는 위아래도 없는 막말이라고 무시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서 살아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제일 착각했던 것 중에 하나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잘 적응하리란 것이었다. 물론 영어는 풍부한 어휘가 생명이다. 모르는 것을 묻고 찾는 데는 다양하고 정확한 언어구사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에게는 수준급의 언어구사 보다는 다소 서툴러도, 고급스런 언어를 구사하지 않아도 친구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언어가 아니라 비언어적인 부분이었다. 몸으로 표정으로 눈으로 말하고 있는 겸손과 정직, 남을 존중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말로만 유창한 영어로 그들과 친구가 되려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란 것을 알았다. 처음엔 미국에 왔으니 미국식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도 했지만 표현이 달라도 마음의 예의를 금방 읽는 그들을 보며 우리만의 예를 다했다. 아이들 선생님을 보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감사함을 표현했다. 우리가 한국인이며 우리 나름대로의 표현이었던지라 굳이 바꾸고 싶지 않았다. 또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없지 않았다.

가끔 우리는 사람을 새로 사귀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낯선 사람을 만나기 전에 보통 상대방을 미리 알아보고 상상도 하고 긴장도 한다. 물론 그렇게 해서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어 의도했던 바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도적이고 단기적인 목적으로 한 만남은 길게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나 쉽게 부담주지 않고 말하는 방식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없는 것이 그들에겐 있었다. 소몰 토크(small talk)라고 하는 거였다. 날씨, 스포츠 등 가벼운 이야기로 어색한 첫 만남을 자연스럽게 하는 말이다. 좀 있어 보이는 책 얘기나 정치얘기가 아니었다. 만남에 있어서 자기를 드러내고 어려운 소재로 논쟁을 하는 사람보다 가벼운 소재를 통해 조금씩 친해지려는 그 인내와 절제가 인상 깊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말하는 법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다. 친근감의 표시라며 부모와 자식 간에 반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마주칠 수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며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가장 기본적인 것이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줄곧 아이들은 존댓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과 거리가 있거나 친근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존중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여유가 있다. 게다가 아이들과 같이 다닐 때면 이런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참 예절바르다고 칭찬하기도 하고 또 학교에서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한 편이다. 아이들 스스로도 존대한다고 자신이 낮아지는 게 아니고 반말을 한다고 자기가 높아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듯하다.

   미국에서 그 가족과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하러 갔을때 일인데 영어가 다소 서툴러도 쫑끗이 귀기울여 주고 대화에 몰입하는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존댓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낮아지는 게 아니라 남을 존중하는 법을 터득했으니 대인관계에서 훨씬 여유로운 우위를 차지한다. 또 듣는 사람이 좋은 감정으로 화답할 것이기에 마음도 편해지고 만남은 진실되고 끈끈해지며 길어질 것이다. 말을 쉽게 놓음으로써 빨리 친해지려고 하다보면 말이 많아 실수하기 쉽고 함부로 말을 해서 관계를 망치기 쉽다. 존대하면서도 얼마든지 친해질 수 있고 친해지다 보면 존중하면서 말은 자연스러워지기 마련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흔히 쓰는 속담이 있다. 1960년대에 고미안 운동이 있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을 쓰자는 운동이다. 이 세 가지 간단한 문장이 주는 힘은 정말 크다. 너무나 기본적인 예절이라고 무시하거나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말자. 마음의 예의와 범절을 입으로 표현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실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동안 누군가와 쌓인 오해와 감정이 있다면 한번 시도해 보자. 분명 매끄러운 관계를 복원시키고 유지시켜주는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강수인, 대전 출생, 대전여고, 충남대 졸업, 침례신학대 영양사, 미국 미주리주 콜럼비아 시 2년 거주, 미용사 자격증 취득 후 노인복지관, 군부대 봉사활동 eskang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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