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산 영평사, 또 하나의 보물이 탄생했다
장군산 영평사, 또 하나의 보물이 탄생했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21.05.11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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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사경, 변상도 전시 후 부처님 진신사리탑 조성 복장 예정
죽음 체험한 무량수 보살, 6년 걸쳐 150만자, 1.5㎞ 사경 완성
장군산 영평사 환성 주지스님이 불자 무량수 보살이 6년에 걸쳐 완성한 사경과 변상도를 펼쳐 보이고 있다. 불심이 담긴 방대한 물건은 부처님 진신사리탑 조성에 복장될 예정이다.

전통사찰 장군산 영평사에 또하나의 보물이 탄생했다.

그 보물은 한 불자(佛子)의 인간으로서 한계를 뛰어넘는 지극한 신심(信心)의 결정체 ‘변상도’(變相圖)와 ‘사경’(寫經)으로 인연(因緣)따라 영평사로 왔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불경을 세필묵서(細筆墨書)로 쓴 사경과 부처님의 설법 모습을 그린 변상도는 승려나 신도가 큰발원성취(大發願成就)를 위해 쓰고 그리면서 불심을 가다듬어 중생행복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다.

영평사가 위치한 세종시 장군면 산학리에서 태어난 올해 예순 살의 무량수(無量壽) 보살이 무려 6년간 하루 15시간씩 생 삼베에 붓으로 화엄경80부와 대반열반경40부, 정토삼부경 등 17개에 달하는 경전을 쓰고 변상도 작품을 묘사(描寫)했다.

폭 63㎝, 길이 25m 삼베에 쓴 글자는 150만자. 천자문을 150만 번이나 쓴 분량으로 총 연장 1.5㎞에 달한다. 게다가 변상도를 요소요소에 그려 넣어 방대한 규모에서 한번 놀라고 섬세한 솜씨에 또 한번, 그리고 사경불자(寫經佛子)의 지극한 정성과 수행정진력(修行精進力)에 입을 다물 수 없다.

일획일점(一劃一點) 흐트러짐이 없는 글씨와 불교미술 전공자답게 수려하게 그린 변상도는 ‘어떻게?’, ‘왜?’를 먼저 떠올리게 했다.

불교미술 전공 후 대학 강단에 섰던 무량수 보살은 죽음을 경험한 불자였다. 그게 사경을 하고 변상도를 그리게 한 계기가 됐다.

40대 초반 국부마취주사 부작용으로 쇼크사가 왔다. 죽어가면서도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으면 안된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휘황찬란한 광명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데 온 세상이 연꽃과 신비로운 꽃대궐이고 진기(珍奇)한 향내음이 진동했다.

또한 아미타부처님과 수많은 불보살(佛菩薩)님들을 친견(親見)하고 설법을 듣는 등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평온함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 무슨 큰 소리에 깨어났는데 그 세계에서 되돌아온 것이 얼마나 억울하던지 의료사고에 허둥대던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왜 살려냈느냐고 다짜고짜 소리 질렀다.

영평사 왼편에 위치한 '삼명선원'에 사경과 변상도는 일반에게 전시되고 있으며, 마치 경남 합천 해인사의 장경각을 연상케 했다.
영평사 왼편에 위치한 '삼명선원'에 사경과 변상도는 일반에게 전시되고 있으며, 마치 경남 합천 해인사의 장경각을 연상케 했다.

어찌 보면 거짓말 같은 얘기다. 하지만 광활한 우주에는 다양한 세계가 있을 수 있고 각자 다양한 체험이 있을 수 있는데 자기가 보지 못했다고 남의 체험을 부정하는 일은 무지의 소치다. 죽음을 체험한 후 2000년 초에 영평사 주지 환성스님을 만나게 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상담과 조언을 받는 신도가 되었다.

사실 무량수 보살은 모태신앙으로 불교신도라 했지만 교리도 모르고 윤회니 극락이니 하는 불교사상도 믿지 않던 터였는데 죽음 속에서 극락세계의 환경과 불보살님들을 친견한 후로 참 불자가 된 것이다. 의상 디자이너로 꽤나 이름나고 나름 부도 축적하던 그가 180도 다른 삶으로 전환하여 극락세계 불보살님을 그리는 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10여년만에 큰 시련을 겪으면서 그 시련은 누구의 탓도 아닌 무량겁래(無量劫來) 자신이 저지른 죄업이라는 깨우침을 얻게 되어 화가에서 참회하는 사경수행자(寫經修行者)로 다시 전환하게 되었다.

하루 16시간 6년이라는 세월을 하루같이 쓰고 그리는 그 정진력(精進力)은 가히 초인적이라 할 것이고 인고(忍苦)의 세월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시기까지 겪으신 난행고행(難行苦行)에 비견(比肩)된다 할만 하다.

6년만에 환성스님을 찾아온 무량수 보살은 유사이래 전무후무할 이 역작이요 대작인 사경물을 불살라 회향하겠고 했다. 스님의 물음에 무량수 보살은 “사람도 죽으면 한 줌 재요, 삼라만상이 다 ‘공’(空)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무엇에 쓰려고 쌓아 두겠나 싶다는 얘기였다. 더구나 작품을 보면 자꾸 아상(我相:자랑하는 마음, 교만심) 생기는 것 같아 그렇게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환성스님은 “두고두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하면서 “‘하는 체’ 즉 ‘상(相)’을 내는 폐단(弊端)보다 대중들의 신심(信心)을 북돋아 주고 발심(發心)하는 동기부여의 공덕이 더 많은 득(得)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에 무량수 보살은 흔쾌히 스님의 말에 따랐고 한 불자의 업장소멸 원력이 담긴 역사적인 수행의 결정체라 할 사경과 변상도가 영평사의 부처님진신사리극락구품보탑(佛眞身舍利極樂九品寶塔) 복장성물(腹藏聖物)로 시주(施主)되었다.

불교문학을 전공한 사재동 충남대학교 명예교수는 “사경문화는 역대 불교 신행문화의 핵심이며 보배로운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귀중한 것”이라며 “21세기에 새로운 사경문화로 기록 될 사경집(寫經輯)을 누구든지 직접 와서 보면 부처님의 세계와 불교수행문화를 알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량수 보살이 직접 쓰고 그린 사경과 변상도

영평사는 지난 1일부터 오는 10월 15일까지 절 왼쪽에 위치한 ‘삼명선원’에 전시, 세종시민들이 언제든지 와서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전시가 끝나면 대웅전 앞에 정림사지 5층 석탑 모형이 있던 자리에 옮길 예정이다. 여기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부처님진신사리극락구품보탑’이 만들어지면서 복장(腹藏)으로 진신사리와 함께 무량수 보살의 사경과 변상도를 모시게된다. 34년 영평사 역사에 또 하나의 보물이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환성스님은 “코로나19사태로 보탑 안치가 미루어져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이 성스러운 인연을 만났으니 오히려 큰 경사가 났다”며 “무량수 보살의 불심으로 만든 결과물과 불사동참시주들이 자필 서명한 명부를 함께 복장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정성은 바위도 뚫는다'고 했고 '이 세상 모든 현상 마음이 만든다'(一切唯心造)고 했던가. 무량수 보살의 정성은 미래의 국보급 문화재를 만들어냈고, 지극한 불심이 탑과 영면하면서 영평사(永平寺)가 지향하는 모든 생명 진정한 행복, 불멸의 행복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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