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 그리운 페트리샤 선생님
아 ~ 그리운 페트리샤 선생님
  • 강수인
  • 승인 2013.05.15 08: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수인 칼럼]스승의 날에 생각나는 분...믿고 맡겼던 아이들

   미국에서 아이들 튜터 했던 페트리샤 선생님 가족과 함께 일요일 아침 식사 후 찍은 사진으로 왼쪽 두번째가 튜터 선생님이다.
큰 아이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전 수학학원을 알아보러 다닌 적이 있었다. 학원 보다는 집에서 공부하는 게 익숙한 터라 최대한 천천히 가르치는 학원을 구하려했다. 그런데 가는 학원마다 어디까지 진도를 언제까지 나가주면 되겠냐고 묻곤 했다. 그래서 그건 학부모가 정할 게 아니라 아이 수준에 맞추는 게 아니냐며 되물은 적이 있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아이들 선생님(튜터)을 구할 때가 생각났다. 중학교 2학년 정도의 단어만 외우고 그 흔한 영어학원 한번 다니지 않은 큰아이와 초등학교 1학년 한국어 받아쓰기나 하던 둘째를 데리고 갔으니 참 막막했다. 도착해서 이틀 후부터 공립학교에 우선 다니게 했는데, 화장실 간다는 말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따로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서 본인이 직접 선생님께 말하고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아이는 집에 올 때까지 참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래서 가정교사를 구하는 것이 급했다. 학교 수업스타일에 대한 정보도 얻고 학교숙제도 조금씩 봐줄 수 있는 선생님이 필요했다. 우여곡절 끝에 큰 아이는 퇴직 교사이신 페트리샤 선생님을, 둘째 아이는 현직 교사인 제니퍼 선생님을 모실 수 있었다. 처음에 페트리샤 선생님께 둘째도 부탁했지만 자기가 가르칠 수 있는 학년이 아니라며 제니퍼 선생님을 소개해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참 행운이었다.

장소는 선생님이 바쁘다는 금요일은 공공도서관을 이용했고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했다. 영어를 처음 한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학년별로 자기가 가르치는 어떤 매뉴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아이가 거의 같은 수준이었는데 큰아이에겐 쉬운 영어동화를 선택해서 번갈아 한쪽씩 읽어가며 중간 중간에 설명하는 식으로 진행했고, 둘째 아이에겐 파닉스(발음)부터 가르쳤는데 한쪽은 그림, 다른 쪽은 단어가 있는 것인데 모두 손수 준비해서 아이와 함께 단어장을 만들고 가르쳤다. 처음 언어를 배우는 아이 한명을 위해 올 때마다 다른 내용을 준비해 왔기에 가위와 풀, 그리고 색연필이 필요했다.

그런 모습을 보자니 처음엔 참 답답했다. 당장 학교에 가서 써야 할 기본적인 것 좀 먼저 가르쳐 줬으면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내려가기를 몇 달. 큰아이는 무슨 내용인지 잘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며 투덜거리고, 작은 아이는 우리도 모르는 단어를 외우고 있었으니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영어를 모르는 학생들을 가르쳐 본 경력있는 선생님이었기에 무조건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6개월쯤 지났을까 아이들에게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어발음이나 이해 정도가 눈에 띄게 좋아져 1년 만에 ELL(외국인 학생반)을 나와 정규반에 들어 갈 수 있었다. 보통 1년반 이상은 걸린다고 했다. 학부모나 아이들 취향에 맞춰 튜터를 이 선생님 저 선생님으로 바꾸었던 다른 학생들에 비해 한 선생님을 믿고 따랐던 게 아이에게는 일관성을, 선생님들과는 신뢰를 쌓을 기회가 되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았다.

실제 어느 때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이해하는지, 어떤 방법이 효과적인지, 아이가 정말 이해했는지 하는 선생님의 학습지도 노하우에 내심 놀랬다. 그 후 아이들과 책 읽는 내 방식도 바꿨다. 같이 독서하는 시간을 갖다가도 하루 한 시간 정도는 한글로 된 동화책을 서로 번갈아가며 큰소리로 읽었다. 제대로 된 문장에 적절한 조사와 어미가 입에 배다보니 읽기 능력이 자라는 것은 물론 어휘력도 상상력도 좋아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영어동화책을 읽어 주는 자원봉사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둘째 아들
도서관에서 수업하는 날엔 선생님이 추천해 주는 수준에 맞는 책도 빌리고 비디오도 빌려 왔다. 도서관에서는 여기저기서 과외하는 모습, 혼자 공부하는 모습, 어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젊은 엄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30분씩 책을 읽어주는 대학생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인상적이었다. 우연이지만, 지금은 올해 중학생이 된 둘째가 집 근처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영어동화 읽어주기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아무튼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들으려는 학생들은 많았지만 순서대로 큰소리 한 번 나지 않고 질서가 지켜지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미국에도 스승의 날은 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면서 봄이면 알러지 때문에 아예 티슈 통을 들고 다니고, 조금 일찍 도착하면 차안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다가 정확한 시간에 맞춰 초인종을 눌렀던 페트리샤 선생님이 참 그립다.

배를 타고 먼 곳을 보면 아름다운 경치가 보이지만 가까운 곳을 보면 멀미밖에 하지 않는다. 멀리 앞을 내다보는 지혜로운 선생님들, 매운 회초리를 아끼지 않았던 그 시절이 새롭게 가슴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강수인, 대전 출생, 대전여고, 충남대 졸업, 침례신학대 영양사, 미국 미주리주 콜럼비아 시 2년 거주, 미용사 자격증 취득 후 노인복지관, 군부대 봉사활동 eskang21@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