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가 한가로이 누워있는 '황우산', 세종에 있어요"
"황소가 한가로이 누워있는 '황우산', 세종에 있어요"
  • 윤철원
  • 승인 2021.02.12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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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칼럼] 소띠 해에 주목받는 도담동, 연동면 황우산
황룡사 재건과정에 소가 누워 있는 큰 바위 발견, 경내 보존
황룡사에 보관된 황소바위, 1935년 황룡사 재건과정에 발견된 것으로 소가 한가로이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올해는 신축년(辛丑年)으로 “흰 소의 해”라고 한다. 우리 전통의 오행(五行)사상에 의하면 10간(十干)을 둘씩 짝을 지어 갑과 을(甲乙)은 청색, 병과 정(丙丁)은 붉은 색, 무와 기(戊己)는 황색, 경과 신(庚申)은 흰색, 임과 계(壬癸)는 흑색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거기에 12지(十二支)를 결합하는데 올해가 신축년 소띠(丑) 해이면서도 흰색을 상징하는 신(辛)간에 해당하기 때문에 신축년은 “흰 소의 해”라는 것이다.
 
소는 부지런함, 역동성, 끈질김, 부(富), 여유, 겸손, 평화 등의 이미지로 비유되고 있는데 우리에게 참 좋은 동물이라는 인식을 주고 있다. 특히, 흰색은 예로부터 순결과 상서로운 징조를 의미하는 색이라고 알려져 있어서 흰색 동물을 서수(瑞獸, 상서로운 동물)라며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백호(白虎), 백사(白蛇), 백마(白馬), 백록(白鹿) 등이 나타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기뻐하곤 했던 것이다.

올해 흰 소의 해를 맞이하였으니 한해를 사는 동안 이왕이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소망해 본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코로나를 물리치고, 경제적으로도 좋아지고, 건강한 삶과 형통함이 우리 삶에 넘쳐나기를 기대해 본다.

소의 해를 맞이하여 세종시에서 소의 의미를 담고 있는 황우산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세종시에서 황우산(黃牛山)이라는 지명을 가진 산은 2곳이다. 하나는 도담동에, 다른 하나는 연동면 명학리에 위치해 있다.
 
먼저, 도담동의 황우산은 황소가 누워 있는 형국으로 옛 연기군의 남면 방축리(方丑里)는 이 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풍수설에 의하면 황우산이 황소(丑)라면 방축리는 외양간(方)에 해당되기 때문에 사람이 거주하는 양택지로서는 천하대길지라는 것인데, 현재 도담동의 도램마을 일원이 그곳이다. 이 산은 1919년 4월 1일 유시풍 선생이 주도하여 마을주민 수백명과 더불어 독립만세를 외쳤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세종시 연동면 소재 황우재 마을, 이 곳에는 소와 관련된 전설이 서려 있다. 뒤쪽에 보이는 산이 황우산이다.

또 하나는 연동면의 황우산(해발 194m)인데 풍수적으로 상당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황우산 자락을 비롯해서 인근에 황우도강형(黃牛渡江形), 행우경전형(行牛耕田形), 장군영병도강형(將軍領兵渡江形), 장군출동형(將軍出動形), 36대 장상지지(三十六代 將相之地) 등 5개소의 명당이 있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황우도강형과 행우경전형은 황우산 동편 황우재(명학2리)마을에, 장군영병도강형과 장군출동형은 황우산 서편 합강리와 북편 다솜리(옛 용호3리)에 있다고 하는데, 마을의 형세를 살펴보면 일단 수긍이 된다. 그런데 36대에 걸쳐 재상과 장군이 나타나게 된다는 36대장상지지(三十六代將相之地)는 오랜 세월 수많은 풍수객들이 탐방하였으나 발견하지 못하였다 하니 그 혈처가 어디인지 궁금증이 더해 진다.  

여하튼 명학리 황우재 마을의 풍수형국은 행우경전형(行牛耕田形)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경기도와 충청도지방 명당의 풍수그림책인 『만산도』에 수록되어 있다. 황우재마을 바라보면 느릿느릿 쉬지 않고 일하는 소의 모습이 연상되어서인지 황우산 자락에 감싸여 터 잡은 마을풍경이 한가롭고 아늑해 보인다. 

황우산과 관련된 전설은 이 마을에 소재한 황룡사에서도 전해진다. 이 사찰은 지금도 명학2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장수황씨 문중에서 나라의 태평성대와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선 중기에 창건했었는데 어느 때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건물이 소진되어 절터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소의 머리 부분에 정자가 들어섰다는 원모정과 만산도

그 후 1935년에 진허당 현명스님이 사찰을 복원하려고 절터를 닦던 중에 와우형상(臥牛形狀, 소가 한가로이 누어 쉬는 모습)을 한 바위를 발견하였다. 지금도 황룡사 경내에서 잘 보전되어 있는 황소바위는 그 내력을 알고 바라보면 신기한 마음에 더욱 그럴 듯해 보인다. 황우산 자락 절터에서 황소바위가 출토되었으니 황룡사 경내가 어미 소의 자궁에 해당하는 명당이 아닐까? 신기한 이야기와 신비로운 모습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황우산 주변 지명을 연결한 전설도 있다. 옛날에 황우산 아래 살던 황소가 밭을 갈기 위해 「황우재」에서 출발하여 「잿절」에서 쟁기를 챙기고, 「보석골」에서 쟁기줄을 갖추고, 「생지울」에서 여물을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합강」에서 밭갈이 도구를 챙기고 「원당」에서 물을 마신 후에 「황우재」로 돌아와 밭을 갈고 「평탄안(平坦安」에서 누워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등장한 지명 전부 황우산 주변 마을 이름이다.   

황우도강형(黃牛渡江形)이란 황소가 강을 건너는 형국으로 소머리에 해당하는 지점에 방점을 두는 것인데, 소가 강을 건널 때 머리가 물에 잠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황우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신탄진 방향에서 서류(西流)하던 금강이 부강면 금호리에서 휘돌아 황우산 쪽으로 북향하여 달려오다가, 황우산 코앞에서 다시 한번 굽이쳐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잠시 숨을 고른 후에, 합강(合江)에서 미호천과 합류하는 모습을 두루 관망할 수 있다.

풍수의 문외한도 풍수상 득수처(得水處)와 파구(破口)가 모두 바라보이는 이 광경을 보고 황우산이 명산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황우산에서 소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은 어디일까? 황우산을 내맥으로 하는 「용댕이산」이라고 한다.

금강에서 바라다 본 황우산<왼쪽>과 용댕이 산<오른쪽>

「용댕이산」은 금강 변에 있는데 지금부터 100여 년 전만 해도 강과 맞닿은 곳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기암괴석이 우뚝 서 있었고, 그 아래로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소(湖沼, 웅덩이)로 강물이 흘렀는데 대단한 절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강포구에서 상업으로 부자가 된 김학현이라는 분이 용당암(龍塘巖, 일명 집둥바위) 정상이 황우도강형의 명당이라는 소문에 자기 아버지를 추모하려는 뜻에서 1900년대 초반 원모정(遠慕亭)이라는 정자를 세웠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금강의 풍광에 더하여 황우도강형의 터에 멋진 정자가 세워지자 원근의 시인 묵객과 풍수가들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탐방하는 명승지가 될 수 밖에...!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정자를 짓고 나서부터 부잣집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불운을 견디다 못해 고명한 스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으니 소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에 원모정을 세웠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에 원모정을 그 절에 시주하였고, 1960년대 초반 철거하여 사찰을 중창하는 데 사용하였다고 한다.

정축년 음력 정초에 황우산에 얽힌 전설과 이야기를 소개하였는데 시간이 된다면 36대장상지지도 찾아볼 겸 한 번쯤 둘러볼 만한 곳으로 추천한다. 아무쪼록 “흰 소의 해”에 독자 제위 가정마다 상서로운 일과 만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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