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산성, 전의-소정지역 정신적 고향이었다
고려산성, 전의-소정지역 정신적 고향이었다
  • 임비호
  • 승인 2021.01.16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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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칼럼]
고등리 마을에서 올려다 본 고려산, 그곳에 고려 고성이 있고 전의, 소정지역 삶의 터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산성(연기 제 7경)에 올라 차령고개를 넘는 발걸음을 본다.

황량하게 남아있는 옛 성터인데

천년 고려사직 아직도 유명하다.

행인은 전조의 일을 묻고 싶어 하는데도

이끼 낀 바위 돌만이 물속에 서서 있네

이 시는 맹의섭 선생이 연기팔경 중 제7경인 고려고성(高麗古城)을 노래한 것이다.

고려고성은 세종시 북쪽 소정면 고등리와 대곡리에 있다. 둘레가 250m에 퇴뫼식 토석혼축성으로 되어 있다. 축조 시기는 삼국시대이고, 역사적 용도로는 백제 부흥군 근거지로 쓰였고, 기우제를 드리는 장소로, 고려 태조 왕건의 사당이 있던 곳이라 알려져 있다.

고려 산성이라 불리는 것도 몽골 제국의 내분에 의한 합적단이 침입했을 때 그들을 몰아내고, 이것이 조상의 은덕이라 하여 이곳에 고려 태조의 사당을 지어서 그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첨단 일반산업단지 건물들에 눌려 초라한 시골 야산 같은 모습이고 그저 금북정맥 마루금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지들만이 펄럭이고 있을 뿐이다.

고려고성은 맹 선생이 임의로 작성한 연기팔경 일차 결집에서는 제외되었다가 지역 유생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새로이 포함되었다. 천년 고려사직 명성만 있고 지금은 쓸쓸한 이곳을 전의·소정 지역 유생들은 왜 지역 대표 경관으로 추천했을까?

고려고성의 가치를 알려면 경부선 철도 건설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제대로 그 맛이 난다. 철도 부설 이전의 전의·소정면 지역 특색을 잘 설명하는 문학 작품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조선 전기 사람인 서거정(1420~1488)의 칠언절구로 된 ‘전의제시(全義題詩)’이다.

천안에서 공주로 가는 방향에서 본 차령고개 모습

지분차현자동서(地分車峴自東西)[땅은 차현을 나누어 절로 동과 서를 이루고]

노입전성고부저(路入全城高復低)[길은 전성에 접어들어 높고 낮고 한데]

산세주조위근곽(山勢周遭圍近郭)[산세는 빙 돌아들어 성곽을 에워쌌고]

수음료요호장제(樹陰繚繞護長堤)[숲 그늘은 얽혀 둘러싸 긴 언덕을 보호하네]

-임정기 번역

1연에서 나오는 차현은 차령 고개의 한자표기로 금강과 삽교천을 가르는 금북정맥 산줄기 중 전의와 공주 그리고 천안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동서를 가른다는 말은 김춘추가 당나라를 갈 때 사용한 항구, 청일 전쟁이 일어난 장소,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왔던 개항지인 내포 지역과 천안을 중심으로 하는 내륙을 구분한다는 기준이란 말이다.

2연에 나오는 전성은 지금의 전의·소정의 옛 이름으로. 이 지역의 길이 높고 낮았다 한다는 말은 서울에서 호남으로 가는 삼남대로 중 차령고개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머물게 하는데 그 배후도시의 모습을 설명하고 하고 있다.

배후도시의 기능은 군사적 의미까지도 가지게 한다. 즉 전의·소정은 남북으로는 서울과 호남을, 동서로는 내포와 내륙을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는 말이 된다.

3연에서는 전의·소정지역의 산세를 말하고 있다. 그 산세가 빙 둘러 있고, 곳곳에 성곽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자연 지형으로 외부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조건과 자족할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을 전부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고려고성과 관계된 고지도와 안내판, 덕고개 표지판과 정상 모습

이런 자연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전의·소정 지역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 수 있었고, 자체 역사와 문화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한 시대에는 중심이었던 목지국 인근 성읍국가가 되고, 백제 부흥운동 시기에는 전씨들이 국보가 된 비석들을 만들었으며, 고려 개국 때는 이도(李棹)라는 분이 개국공신으로 전의 성주로 임명되었다.

4연에서는 전의·소정지역의 고개와 능선이 깊은 숲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오랜 역사을 가진 전의·소정 지역은 자연스레 공동체를 유지 운영하는 방안을 가지게 된다. 그 방법으로 마을 북쪽에 있는 상징적인 산에 제단을 쌓고 자연과 조상에 제를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이 바로 지역의 조산이 되는 월조산 옆 고려산이었다. 고려산에 산성을 쌓고 그곳에서 군사적 차원에서는 차령고개로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보고, 공동체 단합을 위해서는 조상신과 자연에 제를 올린 것이다..

이는 이곳이 정신적인 고향이며,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하는 장소가 되었다는 다른 표현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이 아직도 지역에 남아 있어 아마도 고려산성을 연기의 7경으로 선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고려고성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 가치가 살아난다.

고려산성 입구에 있는 표지석
   
 

임비호, 조치원 출생, 국제뇌교육과학대학원 지구경영학 박사과정,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전)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전)세종시 환경정책위원, (전)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이메일 : bibo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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