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기순, "봉사하면 제가 행복해져요"
노기순, "봉사하면 제가 행복해져요"
  • 김중규 기자
  • 승인 2020.12.04 09: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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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세종시 '명예의 전당' 등재자...노기순 자장면 봉사단장
25년 봉사 인생, 지난해 국무총리상 수상 이어 올해 등재 확정
25년 봉사인생을 살아온 노기순 자장면 봉사단장은 봉사를 통한 행복을 찾는 전도사이다.

“봉사는 저의 행복이죠. 힘들고 어려울 때 정신없이 봉사를 하다 보면 모든 시름을 잊고 행복을 느끼죠.”

평생을 봉사로 생활하고 있는 노기순 자장면 봉사단장(62).

지난해 전국 자원봉사자 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데 이어 올해는 세종시 자원봉사자 명예의전당 등재자로 확정됐다. 5,000시간 이상 봉사자를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수 있다.

한평생을 이타(利他)적인 생활을 해온 노 단장에게 명예의전당 등재와 국무총리상 수상은 오히려 많이 부족하다는 표현이 걸맞을 만큼 봉사는 인생의 전부였다.

이것 저것 합쳐서 25년 동안 총 5,624시간을 봉사 현장에서 일했다. 이제는 자장면이라는 음식을 매개로 봉사단을 이끄는 노 단장에게 등재 소식은 ‘봉사의지를 다지고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냥 편하게 일하고 싶어요. 한 것도 별로 없는데... 창피하기도 해요. 봉사를 얼마나 했다는 시간보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해요.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음식을 만들어 드실 수 있게 하는 게 너무 좋아요.”

국무총리상 수상 후에도 인터뷰를 거절했던 그는 여전히 쑥스러워하면서 봉사인생의 시작한 계기를 먼저 설명했다.

충남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에서 자라나서 21살 꽃다운 나이에 당시 연기군 동면 문주리 장씨 집안으로 시집을 왔다. 1979년도였다. 평범한 시집살이를 하던 노 단장에게 ‘봉사’를 가르쳐준 건 바로 시아버지였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마스크 제작 등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것이 더 많아졌다.

시집에서 16년 지냈던 1995년. 한학자이자 침(針)으로 무료 치료봉사를 해오던 시아버지 장갑진 옹(2005년 작고)에게 치료를 받으러 온 손님이 노 단장의 다소곳한 자태를 보고 “적십자 봉사활동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시골에서 지관도 하고 사주팔자도 봐주고 무료 침도 놓아주던 시아버지가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겠다”고 권유한 것이 25년 봉사의 길 시작이 됐다.

“맨 처음 간 곳이 전동면 오암복지원이었어요. 1995년 11월쯤으로 기억해요. 할머니들 목욕을 시켜드리고 청소를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일순간 보람으로 변했다. 봉사가 반복되면서 내가 즐거워하는 걸 깨닫고는 이게 가야할 길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 결정은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시아버지가 터 준 봉사의 길에 깊이를 더해 준 건 가슴이 아프지만 아들의 죽음이었다.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던 아들 장래호씨가 서른의 짧은 생을 마치기 전 어머니 노기순 단장과 같은 봉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자원봉사센터에서 컴퓨터로 남을 돕는 일을 한 것을 비롯해 한 달에 2-3차례씩 바자회에 참여해 일을 거들어 주기도 했다.

2011년. 금쪽같은 아들은 “봉사도 좋지만 이제는 엄마 인생을 살아라”는 말을 남기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엄마! 엄마! 불러도 보고 싶은 엄마!”라는 글이 마지막이었다. 상실감은 허무함으로 이어지고 그게 우울증이 되어 돌아올 즈음, 그는 봉사에 더욱 매진했다.

“아들을 보내고 나서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만약에 봉사가 없었다면 그것 때문에 어떻게 되었을 수도 있었어요. 아들은 봉사 그만하고 제 인생을 살아라고 했지만 쉽지가 않더라고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자장면으로 음식 봉사를 하고 있는 자장면 봉사단원들

그랬다. 슬픔을 잊는 방법으로 다른 일에 몰입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아들을 보낸 슬픔을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봉사에 미쳤다. 사물놀이 문화 보급과 재능 나눔 공연 봉사로 2011년 전후로 362회에 886시간을 남을 위해 살았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시던 어르신들이 다음에 갔을 때 편하게 대하면서 몸을 맡길 때 정말 보람을 느껴요. 목욕 봉사를 하면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일 때, 그리고 한 차례 건너뛰었을 때 ‘왜 안왔느냐’고 물을 때 어려움을 잊게 만들어요.”

아들의 흔적을 지우려고 내 몸을 혹사시켰다고 말을 하지만 천직으로 여기지 않으면 어디 있을 법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노 단장은 이렇게 말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몸이 아플 때 가기 싫다고 하지만 일단 나서면 그게 싹 없어집니다. 저를 기다려주는 분이 있다는 게 너무 너무 행복해요.”

요즘 노 단장은 여느 해보다 더 바쁘다. 코로나19가 봉사의 손길을 더 많이 기다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장면 봉사에다 마스크 및 생활복 제작, 방역과 일손돕기 등...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죠, 상이라는 게 어깨를 더 무겁게 하네요. 조금만 잘못하면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게 두려워요. 조심하면서 봉사 인생을 이어가겠습니다.”

25년을 봉사로 살아온 노기순 자장면 봉사단장. 봉사가 행복의 기준이 되는 그의 인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얼마나 더 봉사로 지역사회를 밝게 하고 나눔문화를 실천할 지는 자신의 건강과 의지에 달려있다.  오래도록 남을 위한 삶으로 사회에 모범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봉사를 손길이 필요로 하는 곳이면 노 단장은 주저하지 않고 달려간다. 그게 스스로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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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민 2020-12-08 10:25:29
자원봉사자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신 노기순 단장님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