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금병산 피신한 미군, 72일간 숨겨줬어요”
“세종시 금병산 피신한 미군, 72일간 숨겨줬어요”
  • 임재한 시민기자
  • 승인 2020.10.22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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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금남면 영대리 임창수 씨, 한국전쟁 속에 꽃핀 국경 초월한 인연
끊어졌던 소식 1971년 이어졌으나 참전미군 사망으로 기억 속에만 남아
임재한 세종향토사 연구위원은 친척 아저씨인 임창수 옹(사진 오른쪽)이 겪은 한국전쟁 중 미군을 숨겨 준 이야기를 기록해 '세종의소리'에 전해왔다.

세종향토사 연구위원이면서 세종시 문화관광해설사 모임회장인 임재한씨(62)가 세종시 금남면 영대리 근처 금병산에서 벌어졌던 ‘한국 전쟁 중 75일간 미군 숨겨준 이야기’를 보내왔다.

부안 임씨 친척 아저씨인 올해 아흔두 살의 임창수 옹은 한국에 와서 싸우다가 인민군에게 쫒겨 산 속으로 들어간 미군을 도와준 아름다운 이야기를 후대에 남기고 싶어 구술을 했다.

목숨이 오가는 전쟁 속에서 맺은 인연은 휴전이 되면서 끊어졌다가 1971년 임창수씨가 주한미국대사관을 찾아 사연을 전하면서 다시 이어졌다.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렸던 그들만의 아름다운 인연은 편지 다섯 번을 주고 받고서는 다시 끊어졌다.

그것도 영원히...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전했고 한국전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미군 랠프 L 길패트릭 상사(당시 27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길패트릭 상사의 여동생이 보낸 편지로부터 전해 들었다.

여동생은 “유산을 한국에 있는 임창수씨 등에게 물려주라고 했다”는 길패트릭 상사의 유언도 함께 전해주었다. 하지만 임 씨는 슬프고 감격했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한테 돌려줄 것을 요구하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아흔둘의 임창수 옹은 해마다 6월 25일이 되면 길패트릭 상사를 생각하고 금병산 기슭에서 잠시동안 맺어졌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그를 추모하곤 한다.

다음은 임재한씨가 보내온 글 전문이다.

올해 92세가 되신 임창수씨는 필자와 시제를 같이 지내는 가까운 친척 아저씨이다. 작년(2019년)에 뇌 수술을 하셨는데도 70년 전의 경험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이야기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오래 살아계셔서 감사드리고 만약에 이 세상에 안 계셨다면 금남면에서 일어났던, 6·25전쟁 때의 힘들고 어려웠던 상황을 몰랐을 것을 생각하면 아저씨한테 많은 고마움을 느끼면서 구술하신 내용을 적어 보겠다.

“옛날에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금남면에는 중학교가 없어서 고향 영대리를 떠나 24㎞ 되는 공주중학교를 다니기 위해 공주에서 하숙을 했어요. 집안이 먹고 살 만해서 대학까지 졸업을 했지요.

1950년 중학교 2학년 때 6·25 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집으로 피신을 왔어요. 하는 일도 없고 심심해서 집 근처 금병산에 올라 대전 방향에서 쌕쌕이(미 공군 F-86 세이버 전투기)가 대전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구경하고, 하산해 집에서 200m 떨어진 박산골까지 왔는데 숲속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봤어요.

연기가 피어날 리가 없는데 이상해서 그쪽으로 살금살금 살피면서 갔는데 실수로 돌을 건드려 돌이 굴러가는 방향에서 인기척이 나고 얼굴이 시커먼 사람이 총을 겨누기에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습니다.

 임창수씨가 목숨을 걸고 구해준 미군 랠프 L. 길패트릭 상사

난생 처음 본 미군이었는데 덩치가 산만하고, 얼굴에는 시커먼 털로 가득하고, 사람 같지도 않은 아주 키(190㎝)가 큰 짐승 같은 미군이었습니다.

어찌나 무서웠던지 오금이 저리고 몸이 얼어붙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손을 위로 올린 채로 한쪽 손을 흔들면서 안심하라고 표시를 하니, 내가 어려 보여서 그런지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하기에 살았구나 하고, 몆 발짝 내려오다가 호기심으로 뒤를 돌아다 보니, 총을 내리고 배를 문지르면서 배고프다는 사인을 하길래 고개를 끄떡이면서 알았다,

집에 가서 먹을 것을 가져다 주겠다고 손짓과 몸짓을 하고 정신없이 뛰어 내려왔습니다. 집에 뛰어와서 부엌에 가 보니 가마솥에 내 저녁밥만 한 그릇을 남겨 놓았습니다. 나는 그날 저녁을 굶고 어머니 몰래 보자기에다 밥하고 고추장을 싸서 가져다 주니까,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순식간에 먹었습니다. 손짓으로 내일 아침 다시 오겠다고 했더니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군요.

밥을 갖다 주려면은 어머니한테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모든 것을 말씀드리니 그럼 아버지한테 상의해 보자라고 하시는데, 아버지가 알면 비밀이 새어나갈 것 같아서 아버지한테는 말씀드리지 말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룻밤이 지나고 저녁 때 밥을 싸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성하영이라는 동네 아저씨를 만났어요. 깜짝 놀라며 나를 보자마자 뭔가를 숨기더군요. 나도 숨기면서, 물어봤지요 성하영 아저씨도 혹시 미군 만나러 가냐고 물어 봤습니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기에 같이 협조해서 도와주고 비밀로 하자 약속을 했습니다. 공산당들이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 미군을 숨겨주다 들키면 가족까지 몰살하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비밀을 지키자고 약속을 했지요. 밥을 준비하는 우리 어머니와 성하영 아저씨 부인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비밀을 유지하면서 밥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두 사람의 보살핌 속에서 미군은 생명을 유지하며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면서 정을 쌓았습니다.

많은 시간이 가면서 날마다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인민군 부역자들의 눈을 피해 보살펴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지 후회도 했습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모르고, 곧 아군이 반격할 거라는 소문도 들리고 나는 정보 수집을 위해서 20리나 되는 대평리에도 자주 가서 정보도 알아 보았습니다. 다행히 우리 집에는 조그만 라디오가 있어서 일본 방송을 들어보니 대구까지 밀린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성하영 아저씨는 겁을 먹고 신고하자고 하는데, 지금 신고하면 어차피 다 죽는다 갈 데까지 가보자라고 설득하면서, 국군은 반드시 이길 거라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날짜는 계속 가고 지치고 희망이 사라져갈 때 9월로 접어들면서 연합군의 폭격기 소리가 자주 들려서 연합군이 승기를 잡았다는 안도감에서 기뻤습니다. 9월 중순부터는 인민군 패잔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는데, 인민군 패잔병들이 대로를 피해 산으로 이동을 하여 숨겨준 미군은 더욱 위험에 졌습니다.

혼날 것을 각오하고 아버지께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동안 참으로 어려운 일을 했다고 칭찬하시면서 지금은 집이 더욱 안전하니 집으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수시로 나타나는 인민군 패잔병들의 눈을 피해 미군을 집에다가 숨겨주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한테 들킬 것 같아서 화장실도 못가고 낮에는 대소변을 받아냈습니다. 어떤 날은 미군이 숨은 멍석 위에 인민군이 앉기도 하고, 얇은 창호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숨어 있기도 했습니다. 피말리는 고통과 연속이었습니다.

마침내 10월 1일 미군이 대평리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미군을 동네 청년들과 몽둥이로 호위하며 20리 길을 걸어가서 미군 부대에 인계를 해 주었습니다. 저 멀리서 미군 지프차가 달려 오더니 지프차가 멈추지도 않았는데 뛰어내려 끌어안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울었습니다.

통역관한테 미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전했던 베테랑 부사관 랠프 L 길패트릭(27세) 상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 육군 24사단(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의 일원으로 금강 방어선에서 지연작전을 벌이다가 퇴로가 막혀서 혼자 고립된 군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헤어지면서 미군 주소를 받았지만 전쟁 중에 잃어 버렸어요. 미군과 인연은 끝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항상 잊지 못하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증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특히 해마다 6·25가 돌아오면은 더욱 생각이 났습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1971년 인연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같이 밥을 날라다 준 성하영 아저씨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생사를 같이한 미군한테 부고라도 알리고 싶어서 주한미국대사관을 찿아가서 그동안의 사연을 이야기하니까,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여 기다리고 있던 중 한 달여 만에 길패트릭 상사를 찾았고 연락이 왔어요.

마침내 1972년 미국에서 반가운 감사의 편지가 왔습니다. 그 후 다섯 번의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1975년 마지막 편지는 미군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편지였습니다. 여동생 준 길패트릭은 오빠가 자신의 집을 한국에 있는 임창수와 성하영 부인한테 유산으로 물려주라고 하여 거기에 대한 상의 편지가 온 거지요.

길 패트릭 가족과 교환한 서신

나는 슬프고 감격했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한테 돌려주라고 정중히 거절하면서 상속을 받지 않았습니다. 길패트릭 상사는 생명의 은인들에게 얼마나 큰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지 나도 뭉클하면서 고맙고 그당시 고생한 것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이제 세 명의 동지 중에서 나만 남았고, 마음도 허전하고 몸도 쇠약해졌지만 또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그때처럼 또 그런 일을 했을 겁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도 컸지만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누구든 도와주고 보호해주시던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미군은 우리를 위해 이역만리 타국까지 공산화를 막기 위해 온 사람인데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들어서 그런 일을 한 거죠.”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을 드렸더니, “결코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6·25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장병들 국민들이 일치단결하여 공산당을 막고 우리나라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 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는 몸이 노쇠해 참석은 못하지만 마음과 정신으로 힘을 보탤겁니다”라고 하셨다. 필자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으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구술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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