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일, “일본 간병살인,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리려 소설썼다”
윤희일, “일본 간병살인,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리려 소설썼다”
  • 류용규 기자
  • 승인 2020.10.02 0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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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일 경향신문 기자, 장편소설 ‘코스모스를 죽였다’ 최근 출간 ‘화제’
현재 세종·대전·충남 담당... 도쿄특파원 때 간병살인 사회적 문제 천착
오랜 취재...치매 아내 - 간병 남편 ‘교환일기’ 형식, 우리 무신경 일깨워
윤희일 기자
윤희일 경향신문 선임기자가 치매에 걸린 가족을 둘러싼 갈등을 다룬 소설 '코스모스를 죽였다'를 출간해 화제를 낳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 중 연로(年老)해진 한 명이 불치병 진단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요양병원 같은 요양기관에 입원시킬 것인가, 아니면 가족들이 직접 간병할 것인가? 불치병에 걸린 가족이 의식이 있다면 십중팔구는 낯설디 낯선 요양기관 입원에 거부감을 보일 게 뻔하다. 그리고 그 병이 암(癌)보다 무섭다는 치매(癡呆)라면…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치매를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을 세종·대전·충남에서 활동하는 현직기자가 출간해 눈길을 끈다.

그는 경향신문 전국사회부 소속 윤희일 선임기자(부국장). 올해 기자 경력만 만 30년으로, 그 중 20년 가까이를 대전·세종·충남에서 활동해 온 경력을 갖고 있다.

그 중 3년 6개월은 정부세종청사 출입기자로 일했고, 이와 비슷한 기간인 3년 2개월 동안 경향신문 도쿄특파원으로 일본 외무성과 주일한국대사관 등을 출입했다. 이 외에 경향신문 서울 본사 국제부·경제부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그가 펴낸 장편소설의 제목은 ‘코스모스를 죽였다’. 그 흔한 자비(自費)출판이 아닌, 서울 소재 출판사인 ‘문학의문학’사에서 기획출판 된 장편소설이다. 한국일보와 세계일보의 사람들면과 문화면에 비중있게 인터뷰와 서평 기사가 실렸고, 추석연휴 직전 JTBC에서도 소개됐다.

하루하루 취재원을 섭외하고 취재를 하고 기사 작성에도 벅차기 마련인 기자가 오랜 기자 경력을 서서히 마무리 해야 할 시점에 장편소설을 출간할 수 있었던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리고 우리나라 문학판, 출판계에서는 다소 드문 치매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왜 치매에 주목했나.

“사회부 기자로 일할 때 피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타인의)죽음 아닌가. 여러 가지 죽음 중 우리나라에서 드러난 ‘간병살인’을 취재하고 기사로 쓰긴 했었다. 그러다 도쿄특파원으로 일본에 가서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애써 외면하는 간병살인이 ‘자주’라고 할 정도로 벌어지고 있는 거다. 사회복지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리나라에서도 피할 수 없는, 일반화될 것으로 봤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7년간 우리나라에서도 가족 간 간병살인이 173건이나 발생했을 정도다.”

- 7년간 173건이라니 놀랍다. 그래도 소설이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간병살인에 대해 신문 기사로 혹은 리포트(논문)로 쓰면 몇 명만 읽고 금세 잊혀지거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기사로만 쓰면 간병살인에 이르기까지 간병하는 가족 등의 심리적 갈등의 전개 과정을 자세히 쓰지는 못하지 않나.

우리나라에서도 7년간 173건이 발생했다고 했는데, 발생한 게 173건이면 살인 직전까지 갔다가 멈추거나, 고민하고 갈등만 했던 것은 얼마나 많겠나. 간병살인 이면의 다층적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소설로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 초기 구상에서 출간까지는 얼마나 걸렸나.

“먼저 도쿄특파원으로 있던 2014년 12월 자살을 다룬 ‘십년 후에 죽기로 결심한 아빠에게’라는 책을 냈다. 이듬해인 2015년부터 이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간병살인에 관한 취재를 계속하고, 현지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거듭하고, 관련 전문서적만 30권 이상 읽었다. 이렇게 해서 기초자료를 모았다. 책 내는데 만 5년 걸렸다.”

- 도쿄특파원으로 3년 넘게 근무를 했으니, 그럼 귀국 후 회사 일을 하면서 퇴근 후 밤에 책을 썼는지…? 가족들은 좋아하지 않았겠다.

“퇴근 후 피곤한데 어떻게 책을 쓰나? 대신 휴일날 집 근처 작은 도서관에서 가서 노트북컴퓨터로 썼다. 종일은 아니고 3~4시간씩 썼다. 오후에는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만들었다.

도서관에서 소설을 쓸 때는 먼저 생각한 대로, 초안 잡은 대로 써내려갔다. 원고의 양이 쌓이면, 소설 전개상 필요없는 부분을 잘라내고 버리는데 주력했다. 잘라내고 버리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실제 쓰는 기간만 햇수로 2년은 걸린 것 같다.

문장은 그럴듯하게 보이게끔 어렵게 쓰는 게 아니라, 무조건 쉽고 짧게 쓰자고 처음부터 마음먹었다. 노트북컴퓨터 자판을 정신없이 두들기다 도서관에서 몇 번 쫓겨나기도 했다. 시끄럽다고. 그 후 조용하지 않아도 되는 도서관으로 옮겨 작업을 했다.”

- 경력이 오래된, 숙련된 기자라 하더라도 회사 일로 기사 쓰는 것에 더해 다른 글을 쓴다고 결심하고 실천하는 게 쉽지 않다. 오랜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나.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가 매일매일 일기를 쓰라고 엄하게 요구했다. 초등학생의 일상이 매일 다를 수가 없지 않나. 지겨워서 빼먹으면 호되게 혼났다. 아버지 직업이 이쪽(글쓰는 일)이 아닌데도 강요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기 쓰라고 강요하는 아버지가 밉다’라고 쓴 적도 있다. 아버지가 검사하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후 이게 습관이 돼서 거의 매일 짧게라도 메모를 남긴다. 하루하루 일상을 정리해 쓰는 것은 아니고. 기차를 타고 갈 일이 생기면 보이는 풍경, 떠오르는 생각 등을 짧게나마 노트북컴퓨터를 꺼내서 메모한다. 이게 원동력이 된 것 같다.”

- 그래서인가, 소설의 각 장 제목이 일기처럼 몇 월 며칠로 시작한다.

“치매 환자는 30년, 40년 된, 오래된 기억은 하지만 어제오늘의, 단기 기억은 잘 잃어버린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실제로 치매를 치료할 때 의사들이 일기를 쓰도록 환자에게 권유한다. 하루를 기억하고 회상하고 해서 치매 상태를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소설에서는 간병을 하는 남편이 그날그날 벌어지는 일상을 차분하고 자세하게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쓰고, 아내는 남편이 쓴 일기를 읽어보고 그것에 대한 답장을 쓰는 ‘교환일기’를 쓰는데, 기억력을 잃어가는 상태이기 때문에 일기를 중간밖에 쓰지 않는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그런 방식으로 소설을 전개해 갔다.

남편은 이렇게 헌신적으로 간병을 하는데 어느 순간 아내는 나를 죽여달라고 말한다. 실제로 치매 환자들은 간병하는 가족에게 죽여달라, 또는 당신과 함께 죽고 싶다고 요구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기 존재성과 존엄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죽여주는 게 좋은 방법일 순 있지만, 그건 범죄가 아닌가. 간병하는 가족은 고민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모지코 역사관에 있는 영빈관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윤희일 기자
모지코 역사관에 있는 영빈관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윤희일 기자

윤희일 기자 본인이 정한 원래의 소설 제목은 ‘아내가 내 아내를 죽였다’였지만, 출판사가 ‘코스모스를 죽였다’로 바꿨다고. 코스모스는 소설 서두에서 밝히듯이 주인공이 잘록한 허리에 늘씬한 아내를 보고 처음 느낀 이미지이다.

그가 책은 낸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2014년 ‘십년 후에 죽기로 결심한 아빠에게’는 2016년 중국에서 ‘아빠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아’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 돼 그해 중국의 교사와 전문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책 100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앞서 ‘서남표 리더십과 카이스트 이노베이션’ ‘다지털시대의 일본방송’ ‘일본 NHK-TV 이렇게 즐겨라’를 낸 작가이기도 하다.

책 한 권을 내는데 보통 4~5년 걸렸다는 윤희일 기자가 몇 년 뒤 어떤 현상에 천착해 또 책을 낼지 주목된다.

윤희일 기자는 충남 서산 출생으로 대전 충남고교를 나와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노동·인권 등을 다룬 기사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을 비롯해 가톨릭매스컴상, 인권보도상 등을 받았다.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대전대학교 정치언론홍보학과, 목원대학교 광고홍보언론학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공모를 통해 대전시 공용자전거 이름 ‘타슈’를 정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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