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문화재 '수난시대'
천안 문화재 '수난시대'
  • 금강일보
  • 승인 2013.04.1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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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정 하단부 콘크리트로 보수 흉물화
송시열 금석문 글자 일부 훼손된 채 방치

조선시대 3대 기행 중 어류시인인 문초김부용묘 입구에 쓰러져 있는 노송(맨 위부터 순서대로). 충남도 지정문화재인 노은정이 마루 밑부분을 시멘트로 막아놔 문화재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우암 송시열의 글씨로 전해지는 금석문이 글자가 훼손된 채 방치돼 있다. 사진 훼손된水자.

천안시 관내에 있는 국가지정문화재및 도·시지정문화재들이 수난을 겪고 있어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 관내에 있는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물급 12점과 도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8점(무형문화재 없음)과 기념물을 포함한 21점, 등록문화재 제385호 태극기 목판등 22점 총 60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관리의 부재로 문화재들이 훼손·변형돼 있지만 이에 따른 조치가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에 있는 ‘노은정(老隱亭)’은 도지정문화재 제355호로 1688년(숙종 15년)에 노은 김상기(金相器)가 지은 정자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이곳은 도원팔경 중의 하나로 한 여름에는 나무가 우거지고, 깨끗한 물이 흘러 그 풍광이 빼어나다.
자료에 의하면 처음에는 팔작지붕이었으나 여러 번 중건을 거치면서 우진작 지붕으로 변형됐다.
또 마루 밑부분을 콘크리트로 막아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또 다른 조선시대 직산현의 지방행정관청이었던 호서계수아문(湖西界首衙門·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 누각 주변에 직산현에서 부임해 일했던 현감들이 그들의 치적을 새긴 공덕비 역시 관아 안쪽에 있던 것을 길 옆으로 이전, 두 줄로 겹쳐놔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어느 정도 관리가 돼 다행이지만 비지정문화재(향토유적) 목조건물 24개 건조물을 비롯한 분묘 등은 일부 사유지에 설치돼 있어 전혀 관리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천안예총에서 4월이면 추모제를 지내고 있는 조선시대 황진이, 매창과 더불어 3대기생 여류시인 운초 김부용(雲楚 金芙蓉)의 무덤 주변에 고고히 서 있던 노송들이 지난 여름 폭우에 넘어 간지 오래지만 누구하나 손 보는 사람이 없다.
또한, 김부용의 남편인 조선후기 세도가였던 봉조하 김이양의 묘 또한 묘비는 이미 사라지고 수풀이 우거져 사람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지만 누구하나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여기에 북면 행암리에 위치한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낙수암 落水岩)로 알려진 금석문은 몰지각한 사람들이 쓰레기를 태우고, 천렵(川獵)을 하기 위해 불을 때거나 계곡을 찾는 피서객들이 이곳에 앉아 음식을 먹는 등으로 글자가 훼손된 지 오래다.
향토사학자 K(56·남) 씨는 “문화재는 한 번 훼손되면 영원히 복구하기 어렵다”며“훼손되기 전에 잘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조상들이 물려 준 문화유산을 잘 지키는 것이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후손에게 길이 물려 줄 문화재들이 관리소홀과 의식결여로 훼손되고 있어 대책마련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천안=김헌규 기자 khk1102@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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