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튼 스쿨, 서머 힐...어떤 것이 좋은 학교일까
영국 이튼 스쿨, 서머 힐...어떤 것이 좋은 학교일까
  • 최민호
  • 승인 2020.09.26 19: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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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의 아이스크림] 흔들리는 교육, 방황하는 자녀
"자유, 나는 자유를 원한다"...교육의 본질적인 이유
자유로운 교육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영국 서머 힐과 엄격한 규율을 중시하는 이튼 스쿨 중 어느 것이 좋은 방식일까하는 물음에는 정답은 없다.
자유로운 교육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영국 서머 힐과 엄격한 규율을 중시하는 이튼 스쿨 중 어느 것이 좋은 방식일까하는 물음에는 정답은 없다.

무덥던 여름도 끝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는 얼씬하기도 어렵다. 공부는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요즘 학교는 왜 있어야 하고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자손의 삶까지도 지배하는 원천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운명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결정적이고, 그래서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문제이기도 하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가 공부를 왜 해야 하고, 왜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가 라는 질문일 것이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도 아닌데 말이다.

답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의문은 그치지 않는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질문에 불성실하고 위선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고 생각한다.

돈이나 권력이 행복은 아니라고 누구나 말한다. 그렇지만 내심으로는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녀들을 좋은 학교로 보내는 것은 그것이 행복과 성공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학교를 나와야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직장을 얻어야 안정되고 돈도 권력도 얻기 쉽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행복은 남과 싸워서 얻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면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경쟁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기회가 균등해야 하고, 공정해야 하며 정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은 참된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라 하면서 학교는 입시위주로 가르치고, 실력이 중요하다면서도 좋은 학교의 간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모순을 개혁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하던 대학교수가 자신의 자녀는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시키고자 하여 세상을 분노케 하고 있지 않는

나는 이 땅에서 초 중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면서 살았고, 또 자녀들을 길렀다. 그런데 공부를 떠나 내 자녀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 헷갈린 적이 많았다.

전통적인 유교식 교육관에 의하면 ‘매 끝에 효자난다’고, 철없는 학생은 선생님이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훈육해야 한다는 교육관이 있는가 하면, 현대의 서구식 교육철학은 사랑과 칭찬을 통해 아이들의 개성과 인격을 자유롭게 길러줘야 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선생님을 군사부일체라 하여 교권을 대단히 중시하였는데 그러다보니 학교비리가 문제되고, 선생님을 ‘가르치는 근로자’라는 시각으로 보다 보니 교사들의 사명감이나 교권이 무너져버렸다는 개탄의 소리도 듣는다.

유교적인 가르침과 일제시대, 그리고 지금의 서구의 교육철학이 서로 충돌하면서 모순을 보이는 것이다.

한 사회공동체는 일관된 교육에 의해 가치관이 정립되는 것인데, 세대 간에 가치관이 달라 대화자체가 안 된다는 말도 많이 듣고 있다.

교육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의 주장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두 학교를 소개하고자 한다. 생각의 단초를 제시해보기 위해서이다. 판단은 각자가 할 일이리라.

영국에 서머힐 (Summer hill)이라는 학교가 있다. 1921년 영국의 알렉산더 니일(Alexander Sutherland Neill)이라는 교육자가 자신의 이론에 입각하여 설립한 학교다.

이 사람은 “교육의 목적은 스스로의 삶을 사는 것이지, 부모가 원하는 삶이나 교육자가 원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서머힐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모든 자유를 허락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4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아이들이 자유로운 감정을 가져야 한다.

둘째,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야 한다.

셋째, 자연스럽게 발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한다.

넷째, 어른들로부터 두려움과 강압을 제거하여 어린 시절도 행복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 학교는 수업을 듣고 안 듣고는 학생들의 자유다.

시험이 없다. 숙제도 없다. 교복도 없다. 원한다면 알몸으로 수영도 가능하다.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규제라는 것도 없다. 예를 들면 학교 유리창을 깨면 벌칙대신 껴안아 준다. 규칙은 철저하게 선생님과 전교생이 자율적이고 평등하게 정한 회의를 통해 정한다.

마음껏 놀아도 된다. 놀다보면 심심해서 교실이나 선생님을 찾는다. 그렇게 공부가 시작된다는 것이고, 재미있어 공부를 한다.

서머힐은 5세부터 17세까지의 학생만 받는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일반 학교로 진학한다. 당연히 학업성적이 떨어져 일류학교를 못가는 학생이 많다.

대체로 서머힐 출신들은 자율성과 책임감, 창의성이 강하고 정직하다고 말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율적으로 하는 자질이 길러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학업실적이 떨어지고, 마음대로 하는 방종스런 태도가 위험하다는 점과 사회생활의 적응도가 낮다는 비판도 많다.

그들은 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그것이 다른 점이다. 행복과 성공의 관점이 전혀 다른 것이다.

일류학교를 진학한다는 것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원하는 삶을 살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행복한 삶은 이런 것이다’ 라는 정해진 정의란 없다. 각자가 내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1999년, 영국교육청(OFSTED)은 이 학교의 폐교명령을 내리고자 했다. 수업일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머힐의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이 일제히 반대했다. 언론도 반대하여 폐교를 면했다.

그러다가 2007년에는 영국 최고의 학교라는 명예를 안게 된다. 아직도 찬반논란이 있지만 서머힐은 100년 가까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립학교로 건재하고 있다.

이와는 정면으로 대비되는 학교가 있다.

유명한 이튼스쿨이다. 이튼스쿨은 서머힐과는 정반대의 철학을 가진 학교다. 1441년에 설립된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립학교로 뛰어난 영재들과 상류층 자제들이 입학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남학생만 입학 가능하다.

이 학교는 12-18세까지의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보수적이고 규율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연미복 같은 교복을 입고, 학년과 등급, 성적에 따라 철저한 우열반 체제를 운영한다.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기숙사의 사감은 학생의 사생활까지도 통제한다.

이튼 학교의 교육목표는 개인의 행복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지도층을 길러내는 것이 목표이다. 전통을 지키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는 것을 가르친다.

이튼 출신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최전방에 지원하여 제1, 2차 세계대전 중에 이튼 칼리지 출신 전사자들이 무려 2,000여명에 달했다. 영국 최고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수여받은 졸업생이 38명이나 된다.

나폴레옹을 물리친 웰링톤 장군이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전투의 승리는 이튼의 교정에서 나왔다”

라는 말은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졸업생 상당수가 옥스퍼드 대학이나 케임브리지 대학등 명문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20명의 영국 수상과 근대 영국의 정치, 경제, 과학을 이끈 지도자를 배출했다.

서머힐스쿨과는 너무도 대비되는 학교인 것이다.

어느 학교가 좋은 학교일까?

그것은 어떤 인생을 사는 것이 옳고, 어떤 교육이 옳은 것이라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 답일 것이다. 인생의 행복과 성공의 목표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교육을,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로 일차원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관을 가르치고 체험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일방적인 정의가 국가의 교육정책이 되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부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 있다면 도대체 무엇일까?

감히 말한다면 ‘자유’라고 하겠다.

무상교육은 보편적인 교육복지를 실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사진은 좋은 교복 콘테스트 모습
더 많은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결의와 노력.
그것이 공부를 하는 본질적인 이유요, 교육과 학교와 선생님이 감당하여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은 세종시 교육청의 좋은 교복 콘테스트 모습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무지로부터의 자유, 고뇌로부터의 자유...

이런 자유를 얻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낄 것 같다.

불교에서는 이런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를 ‘해탈’이라 하여 최고의 행복으로 치고 있지 않은가?

모든 자유를 얻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각자 누리고 싶은 자유가 있고, ‘자유의 목표’가 있게 마련이며, 스스로 정한 이 ‘자유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 우리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생이란 이런 자유를 얻기 위한 맹렬한 노력의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이 맹렬한 노력을 학창시절에 하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한다.

자유란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소중한 것이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외침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삶 그 자체의 의미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힘든 공부를 해서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 많은 공부를 하면 얻어지는 자유도 더 많을 것이요, 더 높은 공부를 하면 얻어지는 자유도 높아서 우리는 더 좋은 학교를 찾아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공부든 무엇이든 노력없이 원하는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 방법을 택하고 싶다.

그러나 철칙이 있다. 나의 자유를 얻기 위해 남의 자유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행복을 위해 남의 행복을 빼앗는 것이니까.

서머힐도 이튼 칼리지도 다 좋은 학교다.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 목표가 다를 뿐이다.

그러나 서머힐에서 얻고자 하는 것도 자유요, 이튼 스쿨에서 얻고자 하는 것도 자유임에는 틀림없다. 자유의 내용이 다를 뿐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공부의 목적이 그저 재산이나 권력같은 한정된 목표에 있는 것으로 보고 치닫는 어른과, 스스로 누리고 싶은 행복이 무언지조차 모르고 속박으로 내몰리는 자녀들의 방황이 부딪치면서, 공부의 목표와 동기를 상실한 모순에서 나오는 혼란이라 생각한다.

돈과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자유의 가치가 무엇인지, 자유를 통해 인생을 어떻게 행복하게 즐길 것인지에 관한 철학이 없는 빈곤한 성공은 소금물처럼 마실수록 갈증을 부르며,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의 의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한 지식인이 부도덕한 사람이 있다면 이런 교육철학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참다운 자유가 무엇인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자유가 무엇인지 몰라 자유를 지키지 못하고, 행복이 무엇인지 몰라 불행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행복에도 단계가 있다면 더 높은 곳에 다다라 더 많은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결의와 노력.

그것이 공부를 하는 본질적인 이유요, 교육과 학교와 선생님이 감당하여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자유. 나는 자유를 원한다.

아이스크림!(I scream!)

최민호 제24회 행정고시합격,한국외국어대학 졸업,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단국대 행정학 박사,일본 동경대학 석사,전)충청남도 행정부지사,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행복청장,국무총리 비서실장,배재대 석좌교수,홍익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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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2020-09-27 07:08:25
옳지만 틀린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