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효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효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 최민호
  • 승인 2020.09.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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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의 아이스크림] 명가(名家)의 명가훈(名家訓)... "고루하지만 정신 깃들어"
경주 최부자 6가지 교훈, 캐네디 가는 '약속', '토론'으로 훗날 대통령 압승 토대

‘집에 가훈이 있습니까?’ 하는 물음에 ‘예. 있습니다’라고 답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가훈이 있느냐는 질문 자체에 고루한 냄새가 풀풀 나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가훈’이라 하여 그 집안사람들이 귀감으로 삼아 지켜야 할 교훈을 액자에 담아 방에 걸어두기도 하였지만, 요즘 시대에 이런 가훈이 있는 집안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또, 가훈이라 해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니 ‘고진감래(苦盡甘來)’니 하는 지금 시대감각으로 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고사성어가 주된 것이라서 가슴에 와 닿는 감동이 일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표구된 박제”

가훈에 대한 인상은 이런 것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전통을 이어오는 훌륭한 가문에는 나름대로 숨은 가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후손들은 그 가훈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들은 ‘가훈을 집안을 지키는 등대’라고 말한다.

미국의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가는 미국 가정에서는 자녀교육의 교과서로 통한다고 한다.

두 가지를 반드시 실천하는 가풍이 있었다는 것이다.

첫째, 식사시간이다. 식사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식사를 주지 않았다.

약속의 중요성도 깨우쳐주지만, 둘째로 더 중요한 것은 식사시간에 하는 토론과 교육이었다.

아이들에게 날마다 뉴욕타임즈를 읽고 토론을 시켰고, 재벌회사의 회장이었던 아버지 조세프 케네디(Joseph Kennedy)는 사회에서 일어난 각종 이야기를 식사시간에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들려주었다.

세상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밥상머리 교육이었던 것이다.

존 에프 케네디가 훗날 TV토론에서 닉슨을 압도하고 미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이 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자신은 단점이 많은 사람이라면 매일을 반성하는 일기를 썼다.

그의 일기쓰기를 본보기로 삼아 아내와 아홉명의 자녀등 전 가족은 일기쓰는 것을 톨스토이 가문의 가풍으로 삼았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매일매일 진보해 나가는 그의 인생은 그의 사후 아홉 명의 자녀들이 일기를 바탕으로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을 10여권이나 출간하여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우리 집은 효자를 원하지 않는다’를 가훈으로 삼은 조선시대 사대부가 있었다.

광해군 때의 정광필이라는 당시 유명한 선비였다.

‘효자를 원하지 않는다...’

당시로서는 성현의 가르침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비루하고 유학의 역적 같은 가훈이었다. 지금도 어색하기만 하다.

정광필은 당시 유교의 폐습을 타파하는 교훈을 가훈으로 남긴 것이었다. 당시 부모가 돌아가면 시묘라 하여 3년간을 여막을 짓고 산소에서 육식도 삼가고 죽만 먹으며 근신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3년이 지나면 영양실조에 걸려 심지어 죽는 사람도 속출하였지만, 세상은 그런 사람을 보고 효자가 났다고 칭송해마지 않았던 것이다.

가훈은 고루한 냄새는 나지만 예전에는 집안의 정신이 되면서 삶의 지침이 됐다. 사진은 지난 해 연기향교의 가훈써주기 모습
가훈은 고루한 냄새는 나지만 예전에는 집안의 정신이 되면서 삶의 지침이 됐다. 사진은 지난 해 연기향교의 가훈써주기 행사 모습

이런 불합리한 폐습을 타파하기 위해 자신의 자손들에게는 이를 지키지 말라는 가훈을 내린 것이다.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이야기다.

고려시대에 최영 장군의 가훈은 간단했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최 영 장군은 이 가훈에 따라 절약과 검소, 그리고 청렴을 생명으로 삼아 역사의 위인으로 남았다.

미국의 세계 최고의 부호 록펠러는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가훈을 남겨 막대한 유산을 사회에 기부하였다.

구한말에 세상에 태어났던 소설가 박종화 선생(1901-1981)은 조선말기의 혼란한 시대상을 반영한 듯, 가훈을 ‘한 우물을 파며 분수를 지켜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세상의 바람에 휩쓸리며 자손들이 희생될까 경계를 한 것이다.

300년을 부자로 이어온 경주 최부자는 다음의 여섯 가지 가훈을 남겼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둘째, 재산을 만석이상 지니지 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만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예나 지금이나 후손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기르기 위한 마음은 부모라면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어떤 가훈을 남길 것인가, 어떤 모범을 보일 것인가는 부모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 자녀를 위해 부모가 남겨야 할 유산은 무엇일까?

‘자식은 부모의 앞에서 크는 것이 아니고 부모 뒤에서 큰다’ 라는 말이 있다.

‘자식은 하라고 해서 하는 존재가 아니고 부모가 하면 따라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남겨야 할 것은 ‘물고기가 아니고, 물고기를 잡는 그물 만드는 법’이라는 탈무드의 격언은 정말 가슴 속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스크림!(I scream!)

최민호 제24회 행정고시합격,한국외국어대학 졸업,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단국대 행정학 박사,일본 동경대학 석사,전)충청남도 행정부지사,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행복청장,국무총리 비서실장,배재대 석좌교수,홍익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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