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신궁있던 침산공원, 충령탑 세운 건 반일이었다
일제 신궁있던 침산공원, 충령탑 세운 건 반일이었다
  • 임비호
  • 승인 2020.09.1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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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칼럼]연기 8경 중 침산추월<하> 가을 달빛보는 '침산공원'
5.16 군사쿠테타 직후 순국 영령위해 일제 신사터에 건립된 충령탑
일제시대 신사가 있었던 곳에 침산공원과 충령탑을 건설해 반일과 반공의 의미를 담은 곳이 됐다. 사진은 충령탑 내 위패 봉안소

침산공원 명칭은 일제 신궁에 대한 저항하는 의미가 있다.

맹의섭 선생은 추운실기에서 일제 강점기 시기에도 이곳을 계속 ‘침산공원’이라 고집하셨다 한다. 일제가 이곳에 신사(神社)을 세우고 조치원 공원으로 명명하였기 때문에 이와는 다른 본래의 의미를 살리는 용어를 쓰고자 하셨다한다. 1915년에 일본인이 발행한 ‘조치원 발전지’ 제5장 종교 ‘신사’ 란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조치원 신사는 시가의 서쪽 경관이 수려한 웅비산(雄飛山) 정상에 있다. 천조대신궁을 봉사한다. 1908년(명치41년) 여름 조치원의 유지들이 봉건을 결의하여 동년 10월 건축, 낙성하여 동년 12월 31일 이세대모에서 분령을 모셔다가 제사를 지내어 조치원의 수호신으로 삼아서 매년 6월 1일에 대례제사를 지낸다. 신사 경내에는 해마다 여러 가지 나무와 꽃을 심어서 북쪽은 조치원 공원으로 만들어 사계절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주권을 빼앗고, 땅도 점거하고, 이제는 정신마저 지배하려는 의도로 조선인 마음의 고향이었던 곳에 일제는 신사를 만들고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였기에 이에 저항하는 의도로 신사 이미지는 줄이고 원래 명칭을 지속적으로 부른 것이다. 이곳은 신궁이 아니라 가을의 달빛을 보는 침산공원이라고 외쳤던 것이다. 시의적절한 표현이라 긍정이 된다.

위 기록으로 유추 할 수 있는 또 하나는 신사의 위치이다. ‘신사 경내에는 여러나무와 꽃을 심고 북쪽에 공원을 만들어...’ 라는 부분에서 신사의 위치는 지금의 충령탑이 있는 곳이 아니고 하단의 정원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토지대장을 보아도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의 충령탑 하단 지번이 침산리 179-1인데 소유관계를 보면 ‘신사’에서 1969년 1월 12일 국(國)으로 전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침산공원 조성에 기여한 인물인 전 국회의원 김제원, 신진자동차 대표 김창원씨등 공적비

지금의 충령탑이 있는 침산공원은 언제 만들어졌나?

지금의 충령탑이 있는 침산공원은 언제 그 모습을 갖추었을까? 추운실기에서 맹의섭 선생은 5.16군사쿠테타 이후라고 기록하고 있다.

“해방 후에 일본인의 신궁 자리에 독립기념비를 건립하자고 계획 중이었으나 경비 문제로 연타 부진하였다. ~중략~ 5.16군사혁명이 무혈 성공한 후에는 독립 기념비보다 6.25동란에 국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군경의 영령을 위하여 충령탑을 건설하자는 소리가 높아졌다,”

당시의 분위기가 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 사건, 베트남의 전쟁 등으로 반공이 극히 고조되는 분위기이었기에 충령탑 설립은 더욱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침산 공원 내 충령탑은 1969년 10월 1일 행정, 민간, 그리고 김제원, 창원 형제 같은 지인들이 힘을 모아 세워지게 된다.

충령탑에는 372인의 호국영령 이름이 새겨져 있고, 봉안소에는 706명의 지역 출신으로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 경찰 등 706명의 위패가 봉안되어있다. 더불어 봉안소 앞 좌우로 연기군출신 독립의열명사숭모비와 조국통일기원비가 세워지고, 이후 김제원·창원 형제의 송덕비, 그리고 최근에 보훈의 빛 탑까지 설립되었다.

당시 심었던 메콰세콰이어는 이제 하늘을 덮는 거목이 되어 공원을 조용히 지키고 있다. 동산이었다가 신궁이 되었다가 이제 호국영령을 기리는 장소로 변한 것이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 가을밤 달을 한번 보러 가야겠다.

침산공원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조치원 시내는 점차 공터와 녹색 공간이 줄어드는데 이곳은 점점 더 짙어지고 깊어진다는 것이다. 세상은 시대에 따라 잘도 변하고 있는데 이곳은 시간을 잡아먹어 고요를 키우고 있는 듯하다.

조치원 읍 충령탑이 있는 곳, '방아리'라는 명칭에 맞게 침산공원이 들어서 있다.

이제 어디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안정된 숲이 되었다. 아마도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혼이 살아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진가는 더욱 빛날 것이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충령탑의 제단이 아래로 내려왔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의 구조는 조국 통일 기원비와 독립 의열 숭모비를 좌우로 하는 계단을 올라 호국영령에게 분양하는데 이제는 호국영령 뿐 아니라 독립 유공자를 비롯한,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는 분향을 했으면 한다.

침산공원이 반공을 위시로 한 호국영령에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독립 유공자, 지역과 나라를 지킨 분들까지 포함하는 기념 공원이 되었으면 한다.

아~, 이제 계절이 익어가는 가을이 되면 우리 한번 시간을 잊은 침산에 올라 은은한 달빛을 한번 만나보자!.

   
 

임비호, 조치원 출생, 국제뇌교육과학대학원 지구경영학 박사과정,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전)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전)세종시 환경정책위원, (전)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이메일 : bibo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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