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진 학생에 소송비용 내라는 교육감, 어떻게 볼까
재판 진 학생에 소송비용 내라는 교육감, 어떻게 볼까
  • 류용규 기자
  • 승인 2020.09.0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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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어린 학생들인데 지나쳐” vs ”어려도 법과 원칙대로 해야”
변호사들 “소송비용 안 받는 사례 흔해... 교육청이 알아서 할 일”
세종교육청 “세금으로 대응... 부과 안 하면 법 위반에 공무원 징계”
행정소송에서 진 세종시 어진중 대성고 학생들에게 부과된 소송비용을 면제해 달라는 청원을 채택한 지난 3일 세종시의회 임시회 본회의(왼쪽). 학생들에게 부과된 소송비용 문제를 어떻게 매듭지을지 고심하고 있는 세종시교육청 전경(오른쪽).

교육감이 자신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미성년 학생들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하라며 청구서를 보냈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유형의 사건의 여파가 지금 세종시에서 진행되고 있어 시민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시 어진동 어진중학교·대성고교 교문의 약 20m 앞에서 한 주상복합아파트 공사가 시작되면서, 이 학교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등하교 안전 및 학습권 등이 위협받는다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어 구성된 어진중·대성고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해 세종시교육감을 상대로 대전지방법원에 교육환경 영향평가 승인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학부모 100여명은 취하하게 됐고, 학생 41명은 소송 당사자로 남았다.

그리고 대전지방법원은 지난해 말 이 소송을 기각했다. 그러면서 모든 민사소송 결과에서 보듯이, 재판부는 ‘소송비용은 패소한 원고가 부담한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이후 세종시교육청은 민사소송법이 규정한 절차에 따라 소송비용 532만1270원을 41명의 학생들이 분담하라며 1인당 약 12만9780원씩 청구하는 서류를 보냈다.

학부모들은 이에 반발해 세종시의회에 소송비용 부담 면제 청원서를 제출했고, 세종시의회는 지난 3일 열린 제64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이 청원을 채택했다.

이렇게 되자 세종시민들 사이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 모씨(54·한솔동)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창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하라고 하는 것까지는 좀 지나치다”면서 “명색이 교육감은 교사와 학생들을 지휘·감독하는 권한과 함께 보호하고 보듬어야 하는 위치에 있지 않은가. 안 해도 된다면 그냥 지나가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박 모씨(47·새롬동)은 “소송이 애들 장난인가. 달리 말하면 싸움을 거는 거다. 소송을 걸었다가 질 경우 그 후 결과도 생각해 보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소송 당사자가 미성년인 어린 학생이라도 그렇다”면서 “법이 정한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본다. 학생들에게도 이번 기회에 좋은 공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법률가인 변호사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전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민사소송법이 소송비용을 패소한 쪽에 물리도록 한 이유는 무분별한 소송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라면서 ”소송에서 이긴 쪽은 일종의 채권자가 된다. 채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채권을 회수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소송비용을 물릴지 말지는 세종교육청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말했다.

대전의 다른 변호사도 “다른 차원의, 다른 사안의 민사소송에서 소송비용을 면제해 주는, 받지 않는 사례는 흔하다”면서 “끝까지 법의 잣대만을 들이댈 것인지 여부는 승소한 자가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세종시에서 활동 중인 한 변호사는 “이 소송은 사익(私益), 그러니까 금전을 받아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한 소송은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 “공익적 차원에서 제기한 소송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학생들로부터 소송비용을 회수하지 않을 경우 국민이 낸 세금을 낭비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소송을 걸어오니 국가예산으로 소송을 진행한 거니까. 소송비용 회수를 하지 않으면 공무원이 업무를 해태(게을리 했다는 뜻)했다며 징계를 받을 수도 있고... 양면이 상충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세종시교육청은 소송비용을 받아내지 않을 경우 지방재정법·지방자치법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담당 공무원이 이후 감사원 감사 등 각종 감사에서 지적을 받아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으로 소송을 진행한 만큼 승소했으므로 소송비용을 회수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세종교육청 관계자는 “세종시의회가 청원서를 채택한 만큼 우리는 이에 어떻게 처리 결정을 내렸는지 응할 의무가 생겼다. 시의회는 채택한 청원서를 5일 이내에 우리에게 이송하게 돼 있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면서 “현재 교육청 내부 실무진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다각도로 검토중이다. 다음주중 또는 다음주 후반이면 처리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성년인 학생들이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 하는 전례가 드문 사안을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법과 원칙대로 집행할지 또는 항간의 정서상 어린 학생들이므로 관대하게 넘어갈지 그 결론은 다음주중 내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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