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 "민주화운동이 제 젊은 삶의 전부였죠"
이세영, "민주화운동이 제 젊은 삶의 전부였죠"
  • 황우진 기자
  • 승인 2020.07.10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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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이세영 변호사...민민투중앙위원으로 80년대 옥고치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0일간 고문 끝에 5년 징역형...옥중결혼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이세영 변호사는 굴곡 많은 인생사를 엮어내면서 이해찬 국회의원과의 인연으로 세종시에 정착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이세영 변호사는 굴곡 많은 인생사를 엮어내면서 이해찬 국회의원과의 인연으로 세종시에 정착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세상이 달라집니다. 백신이 개발되어 코로나가 종식돼도 우리는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비대면 사회, 온-라인 세상의 변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무더위와 장마, 코로나로 지친 일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다소 무거운 생각을 가지고 지난 3일 오후 이세영(57) 변호사를 세종시 소담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2014년부터 4년간 세종시 자문변호사로 일해 왔고 지난 총선에서 출사표를 던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총선 폭풍이 지나간 지금 후보로 나섰던 그의 생각과 삶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자못 궁금했다.

“총선이후에도 제 생각이나 삶은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달라졌다면 소담동에 사무실을 내고 세종신도시에서 변호사 일을 새롭게 시작한 정도입니다.”

전주가 고향으로 소탈한 성격에다 자신만의 특별한 인생이야기는 80년대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의 여정을 여실히 보여주며 그의 젊은 시절 인생이 투영되어 있었다.

‘무자비한 고문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도 몰라’, 옥중결혼...

“5.18 광주민주항쟁은 4년 내내 대학생활을 지배했습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권학생으로 4년간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1986년 5월 서울대 5학년생(학생운동 후 지하에서 운동을 계속하는 사람을 지칭함)으로 붙잡혀 이적단체 수괴 죄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습니다. 20일 동안 죽도록 고문을 당했는데 ‘이렇다가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겠구나’하는 무서운 압박감을 받았습니다. 결국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었지요.”

대학생활 4년은 철저하게 학생운동 주동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5학년생으로 지하로 잠입해 ‘민민투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학생운동을 계속했다. 대의명분은 오직 하나 ‘민주화’였다. 그 결과로 돌아온 건 처절한 고문과 5년 징역형이었다.

변호사 이세영이 젊은 시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서울시민들과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젊은 시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서울시민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당시 시국사범은 가족이외에는 면회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지금 제 아내가 끝까지 저를 믿고 혼인신고를 해서 옥중결혼으로 가족이 되어 찾아왔어요. 감옥생활을 하며 갈등이 많았습니다. 학생운동, 사회변혁운동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삶을 찾아야하는 지 고민하고 고민했어요.”

80년대 5.18광주 민주화운동에서 점화된 민주화의 불길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잠시 꺼진 듯 보였다. 그러나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민중시위가 전국으로 번지고 100만 명이 운집한 광화문 대규모시위로 번지면서 결국 80년대 민주화운동은 1987년 6.29선언을 이끌어내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은 승리의 길로 나갔다.

'남영동 이적단체 수괴'...사법시험 합격하다

“19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운동 시국사범들은 대거 석방됐는데, 저는 그때도 석방되지 못하고 1988년 대통령특사로 사면 받고 학교로 돌아와 이듬해 2월에 졸업을 했어요. 졸업 후 영어강사를 전전 하다가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시국사범에게 사법시험 자격을 부여한다는 발표 후에 사법시험을 준비해서 2년 후 사법시험에 합격했어요. 기적 같은 합격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저에게는 그 만큼 절실 했어요.”

연수원 졸업 후에 변호사 이세영은 같은 처지로 법조인이 된 동료 변호사 2명과 서울에 합동사무실을 열고 IMF시대에 ‘서민법률구조활동’을 시작해 법조계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전관예우로 얼룩진 법조계의 비리가 언론에 연일 보도되면서 법무사정도로 비용으로 문턱을 낮춘 이들의 활동이 전국뉴스로 증폭되어 2006년까지 변호사로서 호황을 누렸다.

신나는 법조계 성공담을 들으며 서울에서 잘 나가던 변호사가 갑자기 세종시 고문변호사로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가 궁금했다.

“2006년경 이해찬 전 총리님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변호사로서는 그런대로 자리를 잡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언지 부족하다는 생각에 우리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이해찬 전 총리님과 세종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2014년 조치원에 사무실을 개소하고 세종시 법률고문을 맡았습니다.”

2019년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된 이세영 변호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년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된 이세영 변호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종시는 초창기에 행정절차가 정비되지 않아 법률적으로 자문 할 일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는 후일담은 세종시 출범당시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대변했다. 그래도 그는 세종시를 뿌리내리게 한다는 자부심으로 밤새도록 법률자문을 도맡았다. 이러한 열정으로 이변호사는 2018년 10월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이 됐다.

세종시에서 새롭게 둥지를 틀다

규제개혁위원회가 일반 국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정부기구라서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우리나라 법령 가운데 행정부가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규정은 반드시 거쳐야하는 법령 심의기구입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해서 25명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주 20건 정도의 법령을 심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요규제법령은 반드시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 한 가지 최근 세종시 현안으로 떠오른 'LH 개발이익 환수' 에 대한 이변호사의 견해를 물었다.

“최근 세종시가 갖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을 검토해 봤을 때 LH에 개발부담금 부과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세종시 건설이 단계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상태를 일부공사의 완공으로 본다면 개발부담금 부과가 가능하고 봅니다. 세종시 담당부서에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세종시 현안중의 하나인 ‘상가공실’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상가공실 문제해결은 제 공약사항 중에 하나였습니다. 상가부지가 과도하게 공급돼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이미 지난 얘기고 지금은 그 해결책을 고민할 땝니다. 우선 크게는 세종시 부동산 규제가 정당한지 검토가 필요하고 정책목표와 규제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또 세종시 내부적으로는 용도전환으로 공실상가를 활성화 하는 정책도 하나의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숨 쉴 틈도 없는 달변에 ‘변호사는 역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코로나에 대한 걱정으로 다시 화제가 돌아왔다.

“이제 세상이 변했습니다.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세상을 대비해야 합니다. 앞으로 경제나 문화, 정치가 비대면 사회로 바뀐다고 봅니다. 물론 그래도 대다수는 국민은 오프라인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을 주도하는 활동은 비대면 온라인 세상으로 변화하는데,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이러한 흐름을 빨리 받아들이고 변화를 주도해야 우리나라가 세계사의 주역으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2시간 가까운 인터뷰를 하며 1980년대부터 우리사회의 변화를 뒤돌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그의 미래에 대한 전망처럼 우리나라와 세종시가 변화무쌍한 세계역사의 흐름을 타고 포스트 코로나 인류역사에서 세계사의 주역으로 떠오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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