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백지계획때부터 시작됐다"
"행정수도, 백지계획때부터 시작됐다"
  • 임비호
  • 승인 2020.06.2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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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칼럼] 책과 기록 속에 세종시 역사문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옛 장기면 일대에 행정수도 백지계획을 갖고 수도 이전을 추진했었다. 사진은 세종시에 보관 중인 당시 책자들

세종시가 시작된 지 근 20여 년이 흘러간다. 2002년 대선 공약, 위헌 판결, 세종시 수정론, 세종시 설치법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을 안고 걸어왔던 세월이었다. 이런 세종시가 현재 진행형이라 한다면 전사(前史)와 같은 보고서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유고시에 직무실 책상 위에 있었다는 문건, ‘임시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백지 계획(이하 백지 계획)’이 그것이다. 오늘 소개 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소개하려는 이유는 세종시와 연관성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모습도 진단해보고, 나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보고 싶어서이다.

백지 계획의 진행과 의미

백지 계획은 77년 2월 10일 서울시를 연두 순시하면서 박 대통령이 밝힌 수도 이전 계획을 말한다. 백지계획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백지에서 이상도시를 건설한다는 의미도 있고, 계획하고자 했던 임시 행정수도를 어디에, 그리고 얼마의 재원을 투자해 언제까지 건설할 것인지 등 모든 것이 미정이란 뜻, 어떤 현실적 조건에도 구애 받지 않는다는 취지(김병린 전 서울시 도식 계획 국장 발언)이기도 하다.

당시 백지 계획은 입지 선정과 도시 설계로 이원화 형태를 취해 추진되었다. 후보 입지 선정 기준은 휴전선에서 70㎞, 해안선에서 40㎞ 이상 떨어져있고 서울과의 거리가 80∼2백㎞ 범위 내이며, 국토의 중심점과 근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입지선정을 하면서 천안, 연기군 대평, 논산 등 3개 지구로 압축 되었는데 입지 선정팀이 장기면 일대를 발견하면서 서울의 풍수지리와 아주 비슷한 곳이라 하여 최종적으로 이 곳이 선정되었다한다.

이곳은 전의면 금사리에서 시작하는 금북전월지맥이 사기소 언덕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천태산(해발 392m)을 주산으로 하여 오른쪽으로 백호격인 갈매봉이, 왼쪽에는 청룡격인 국사봉, 전월산, 괴화산이 중심을 감싸는 형상이고, 앞에는 남산 격인 장군봉이 있으며 그 안에 대교리, 평기리 등의 너른 들이 있고, 그 뒤로 금강이 흐르는 천혜의 명당이다. 대교리 김종서 장군 묘를 중심으로 중앙청이 들어서고 좌우대칭의 도시가 만들어지는 구상이었다. 지금의 세종시는 이 계획으로 본다면 좌측 날개 부분을 중심으로 다시 형성된 도시이다.

당시 행정수도 종합 계획도.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도시 설계 분야는 KIST(한국 과학기술연구소)내에 설치된 지역개발연구소(소장 황용주)에 의해 주도 되었는데 4년에 걸쳐 500여명 가까운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72개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총 46권의 방대한 부문별 보고서를 내놓았고, 79년 5월 두 권의 종합 보고서로 요약되어 박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도시 설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 때에 벌써 보행자 도로와 차도의 분리, 상하수도, 전기 등 지하매설이 가능한 지하 공동구, 고속 전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것이다. 지금도 보기가 쉽지 않은 모습인데 30년 전에 그런 설계가 나왔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혁신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백지 계획에 참여 했던 김진애 민주당 의원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하였다 “우리나라에 도시계획 개념이 처음 도입된 것이 1970년 그린벨트 제도 시행 이후였다. ‘신도시’라는 용어조차 없었다. 기껏 토지구획정리사업이나 신시가지 계획 정도만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임시행정수도 백지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도시계획에 관한 국내의 모든 역량을 가동해볼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계획이 진행되면서 기본적 지형 자료와 인구 자료, 측량 자료 등 필수 자원이 얼마나 빈약했는지 점검할 수 있었다. 허약했던 도시계획 연구 분야에 큰 자극을 준 계기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계승과 차별성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07월 20일 행정중심복합도시 기공식에 참석한 뒤 오찬 간담회를 갖고 "70년대 후반에 박정희 대통령이 계획하고 입안했던 것을 이제 와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며 "적어도 행정도시에 관한 한 박정희 정부의 업적을 제가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느낌이 묘하다"고 말했다(노컷뉴스 인용)고 한다. 정치적인 견해는 달랐지만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정책에서는 계승성을 갖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다.

사진 맨위는 백지계획, 중간은 행복도시, 맨 아래는 백지계획과 행복도시를 합친 도면

두 대통령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공통점은 우선적으로 수도권 과밀화 해결 방안과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정책적 목표일 것이다. 수도권 과밀화는 자체적으로 해결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정책이 요구되었고, 지역 불균형은 점점 더 심화되는 상황이기에 이런 정책의 동일성이 나왔을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전까지 한번도 진행해보지 못했던 민족 최대·최초의 도시개발 사업을 시도하게 한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입지의 근접성이다. 새로운 행정수도 입지를 정함에 있어 시간이 흘렀어도 비슷한 지점에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산·내·들이 골고루 있고, 조화가 잘 어우러지는 이곳이 사람이 거처하기에는 아주 최적의 장소인가 보다. 김진애 의원실에서 제공하는 두 시대의 입지 비교 자료는 흥미롭다.

같은 행정수도를 진행하면서 두 대통령의 가장 큰 차이점은 비공개와 공개의 차이일 것이다. 대통령 직무 중에 진행하는 정책과 대선 후보 정책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시대적 배경에 따라 비공개 진행과 공모 진행이라는 모습을 띤다. 박 대통령 시절 행정수도의 진행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 보고되는 형식이라면 노 대통령 시절 행복도시의 진행은 국제 공모에 의해 진행되었다.

2005년 6월부터 진행된 도시 개념 국제 공모전에서는 전 세계 25개국에서 제출된 121개(국내 57개팀, 국외 64개팀) 작품이 출품되었고, 대상 5점, 장려상 5점이 선정되었다. 심사위원회(위원장 david harvey)는 이번 공모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 삶의 질, 세계관, 제안되고 활용 가능한 기술 등의 요소를 염두에 두고 심사를 하였다고 하였다.

당선작 중 기본적인 아이디어로 활용 된 것은 스페인의 건축가 Andres Perea Ortega 「The city of thousand cities」이다. 이 당선작의 기본 아이디어는 도시의 중앙부분은 환경, 생태적으로 보존하고 도시 기능은 둘레에 분산 배치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환상형 도시 개념이다.

행복도시 생태보전핵심지역에 설치된 합강 오토캠핑장

이명박 대통령의 태클과 변형(2008~ 2013년)

서울 시장을 역임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세종시 건설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같았다. 대선 후보 시절 명품도시를 약속했지만 당선 후에 태도와 입장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명풍 도시 공약이 기존 세종시에 플러스알파가 아니라 기업도시로의 수정론이다. 세종시 건설은 수정론이 부결 된 2010년 6월(근 3년 6개월)까지는 잠정 휴업 상태에 이르렀다.

아니 바꾸려는 세력과 지키려는 세력의 치열한 투쟁의 시절이었다. 이 중에 2009년부터 시작 된 4대강 사업은 실질적인 세종시의 구조를 변경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중앙녹지공간의 구조와 면적의 변경이다. 2007년 2~10월 진행된 중앙녹지공간(중앙공원 포함) 국제 설계공모 결과 당선작(오래된 미래·해인조경 노선주)에서는 전체 녹지공간 698만2천㎡ 중 20.5%인 142만9천㎡를 농지 등으로 보전하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후 계속 미뤄지다가 4년이 지난 후, 2011년 12월에 공원면적 140만9천307㎡ 중 34.6%인 48만7천㎡가 논을 비롯한 보전지역으로 겨우 제시되었다.

이는 기본 제방의 존치 및 경사가 조정되는 결과를 낳았고, 성토를 해야 하는 수목원과 박물관 단지가 새로이 등장하게 하였다. 4대강 사업에 의해서 세종시 녹지 공간 틀이 구조적으로 변경 된 것이다. 환상형 도시의 기본 정신이 4대강 사업과 토목자본의 이해 관계에 따라 해체 된 것이다.

또한 4대강 사업을 하면서 기존 세종시 계획에서 변한 것이 생태 핵심지역이라 지정돤 합강 습지 주변이다. 확실한 이유도 없이 보전지역이 친수 공간인 오토캠핑장으로 바뀐 것이다. 생태도시라는 기본 취지가 근본적으로 무시되는 상황이 연출 된 것이다.

내륙습지의 최대 철새 도래지가 연면적 10만㎡에 자동차 11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오토캠핑장과 샤워장, 화장실, 취사장, 음수대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5면 규모의 웰빙캠핑장으로 변한 것이다. 이 곳은 4대강 사업이 세종시 건설 계획보다 우선적으로 진행되었던 슬픈 현실의 현장이다.

세종시 생태네트워크및 주요 보전지역 계획도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를 꿈꾸며

“ 대전과 광주와 같이 읍이 되었는데 우리는 왜 이 모양이야”

청소년 시절 어른들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임시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백지계획’이란 이름을 들으면 지역 발전이란 기대감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항상 교차했었다.

이제 백지계획을 계승한 세종시가 우리의 눈앞에 있다. 많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인간의 풍요와 편리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삶의 질이 보장되는 쾌적한 도시,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공동체. 사람과 사람이 경쟁보다는 협동하는 사회가 되길 빌어본다. 정감록의 염원이 담긴 도시, 망이 망소의 한이 풀리는 도시, 동학농민의 꿈이 실현되는 도시까지 될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백지 계획의 이상이 행복도시로 고스란히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꾸불꾸불한 길이지만 그리로 가고 있다고 촛불 하나를 밝혀 본다. 완전한 행정수도가 되는 날까지...

   
 

임비호, 조치원 출생, 국제뇌교육과학대학원 지구경영학 박사과정,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전)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전)세종시 환경정책위원, (전)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이메일 : bibo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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