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 연합군이 주둔했던 '당암리'
나,당 연합군이 주둔했던 '당암리'
  • 임영수
  • 승인 2013.03.29 1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영수 칼럼]'왕박골', '소골','망골' 등 정감가는 지명 수두룩

   당암리 표지석
당암리는 백제 때 웅천의 지역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웅주에 속했으며 고려때는 공주목에 속하였다. 조선시대 때에는 공주군에 속하였으며 조선말엽에는 공주군 삼기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입석리(立石里), 두곡리(杜谷里), 당동(唐洞), 용암리(龍岩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장기면에 편입하였으며 당동(唐洞)의 당(唐)자와 용암리(龍岩里)의 암(岩)자를 따서 당암리(唐岩里)라 하였다.

아빠 : 오늘부터는 공주지역의 마을을 돌아 보겠다.

재영 : 공주에서는 두개 마을이 세종시 건설 지역이지요?

아빠 : 그래. 장기면의 당암리와 제천리인데 오늘은 당암리에 대하여 알아보자. 우선 당골의 유래부터 들려줄까?

재영 : 예. 들려주세요.

아빠 : 당암리 1구를 ‘당골’이라 부르는데 이는 옛날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킬 때 당나라 군사들이 이곳에서 주둔하였다 하여 당골이라 불렀다고 해. 당나라 군사들이 이곳에서 철수할 때 용바위를 부수고, 금을 채취하여 떠났다고 하는데 동쪽 기슭에 큰 바위가 있고 산제당도 있지.

이곳 마을에는 문신이었던 권첩(權惵)의 묘가 있는데, 권첩은 숙종17년(1691년)에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고 정언을 거쳐 세자시강원보덕을 지냈지. 뒤에 동부승지, 의주부윤,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의 관찰사와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하고 영조 때 한성부 판윤을 거쳐 좌참찬에 이르러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어.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토경(土競)이지.

‘소골’은 당암초등학교 아래를 가리키는데 지형이 마치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소골’이라 불렀는데 변하여 ‘솟골’이라고도 부르지. 솟골에서는 소를 키워야 부촌이 된다하여 소를 많이 키우고 있어. 또 이 마을을 ‘용암’이라 부르는데 이는 마을 뒷산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용바위’라고 부르기 때문에 ‘용암(龍岩)’이라고 부르지.

‘망골’은 당골의 북동쪽에 위치하여 마을을 산이 둘러싸서 막은 것처럼 되어 있어서 ‘막은골’ 또는 ‘사곡(社谷)’이라 불렀어. 지금은 ‘망골’이라 부르지.

   마을 전경
'선돌’이라는 마을은 망골의 남서쪽에 있는데 마을에 선돌이 있어서 ‘선돌’이라 부르는데 예전의 선돌자리에 지금은 문관형의 장승이 마을 양쪽에 있었는데 한쪽은 누군가가 가져가 버렸어.

재영 : ‘선돌’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 해 주세요.

아빠 : ‘선돌’은 말 그대로 돌을 세워 놓았다는 뜻이지.
이 선돌을 ‘송곳바위’라고도 불렀는데 ‘추암(錐岩)이라 부르기도 하였지. 일제 강점기에 금강변의 제방을 쌓기 위하여 이 바위를 깨뜨렸는데 그 때 돌 아래에서 바랑을 맨 스님 형상의 돌조각이 나왔는데 일본인들이 가져갔대.

재영 :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모두 가져간 것 같아요.

아빠 : 그러니까 나라를 빼앗기지 말아야하지.
선돌마을은 300여 년 전부터 전주이씨가 살아왔는데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권첩이 임무를 마치고 공주로 돌아오는데 권첩이 관찰사 재직시 늘 곁에 두고 아꼈던 애석(愛石)을 강원도 사람들이 정치를 잘 했다고 감사의 뜻으로 선물했어.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아끼던 애석이라고 하더라도 강원도의 돌을 충청도로 가져갈 수 없다고 하여 강원도 경계지역에 놓고 왔지. 이 소식을 들은 강원도 사람들은 청렴함을 칭찬하면서 이 돌을 짊어지고 와서 마을 입구에 세워 놓았어. 그 때부터 이곳을 선돌이라 불렀지. 권첩이 세상을 떠나자 이 돌은 묘정에 세워 두었다가 지금은 우성면 내산리 웅진교육박물관 못 미처 좌측의 다리 건너편 권첩의 묘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 입구에 세워 놓았어.

   당암초 단체사진

‘횟골’은 망골 아래쪽에 있는데 옛날에 석회가 많이 나와서 ‘횟골’이라 불렀지.

망골 서쪽은 ‘부기동’이라 부르는데 이곳은 예날 부자가 살았던 곳이라 ‘부기동’이라 부르지. 실제로 지금도 이곳에서는 기와장이 발견되고 있어.

당암리에 있는 고개를 ‘불무고개’라고 부르는데 이곳에서 불을 피울 때 연기가 잘 빠지는 것을 돕기 위하여 ‘불목’이라는 것이 존재했어. 이곳을 통하여 연기를 내보내어 ‘불목이 고개’라고 부르지.

응달마을과 당암초등학교 사이를 ‘언고개’라고 부르는데, 마을과 마을 사이에 얹혀있다는 뜻으로 ‘언고개’라고 하였어. 높은 지대이므로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지.

부기동과 망골 사이를 ‘불탄터’라고 부르고 있어. 이는 불무고개에서 불을 지피고 나면 부기동을 지나게 되어 재(숯)가 남게 되는데 이 재를 처리하는 곳을 ‘불탄터’라고 부르고 있어.

소골에서 북쪽 위를 ‘왕박골’이라 부르는데 조선시대 어느 임금님이 이곳을 거쳐 가다 잠을 자게 되었는데 왕이 잠을 잔 곳이라 ‘왕박골’이라 부르지.

재영 : 왕박골이라는 지명은 엉터리인 것 같아요.
전설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아빠 : 함정고개 전설을 들려줄게.
함정고개는 연기군 남면 송원1리 만자동으로 난 언덕길을 말하는데 효자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고 묘에 움막을 짓고 삼년 시묘살이를 하는데 어느 날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어. 효자는 겁이 덜컥 났지. 캄캄한 밤중에 산속에 혼자 있으니 호랑이가 얼마나 무섭겠니. 그런데 그 호랑이는 시묘살이 하는 효자의 묘막 앞에서 공손하게 엎드려 잇는 것이었어. 효자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는 것이었지.

   주민들
이를 알아차린 효자는 ‘잘 됐다. 혼자 적적하였는데 호랑이와 벗을 삼아야 겠다‘며 좋아 하였지. 그런데 어느 날 매일 나타나던 호랑이가 안 나타나는 것이었어. 꿈속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서 호통을 치는 것이야. “너의 친구 호랑이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니 얼른 가보라고” 효자는 꿈에서 깨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호랑이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었어. 효자는 얼른 함정을 파헤치고 호랑이를 구하였지. 그래서 그 고개를 함정고개라 부르게 되었어.
     
임영수, 연기 출생, 연기 향토박물관장,국립민속박물관 전통놀이 지도강사, 국사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이메일: ghmuseum@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