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성착취범 관대한 사회가 낳은 '변종 바이러스'
n번방, 성착취범 관대한 사회가 낳은 '변종 바이러스'
  • 김선미
  • 승인 2020.03.26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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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칼럼] 디지털 성범죄는 ‘치외법권’? 범죄자 80%가 벌금형, 집행유예

이게 ‘실제’ 라니! 지옥문이 열린다 해도 이처럼 놀라지는 않아

다크 웹(Dark Web), 딥 웹(Deep Web), 다크 인터넷(Dark Internet), 딥 페이크((Deep Fake), 토르(Tor)…. CSI 사이버 등 미국 TV 범죄수사물에서 보던 이런 디지털 용어들을 우리나라에서 현실로 마주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 사태가 웬만한 뉴스들은 블랙홀처럼 집어삼키고 있는 가운데 터진 전대미문의 디지털 집단 성범죄 사건이 대한민국을 경악과 분노로 뒤흔들고 있다.

미성년자 피해자가 대거 포함된 ‘n번방’ 사건이다. 아르바이트 등을 미끼로 유인한 수십여 명의 여성을 협박해 강제로 가학적인 성착취 영상물을 찍게 하고, 이를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유포한 것이다.

CSI 사이버에서 보던 다크 웹, 딥 웹을 현실로 마주하게 될 줄이야

‘노예방’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 n번방의 피해 여성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74명에 이른다. 이 중 16명은 더 끔찍하게도 10대 미성년자이다. 무려 26만 명이 20만원에서 150만원을 내고 성착취 영상물을 들여다 보았다.

지난해부터 대학생 2명이 ‘n번방’에 잠입 추적, 세상에 알려지며 공론화됐던 ‘n번방’ 사건은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검거되며 국민적 분노는 메가톤급으로 폭발하고 있다. 끔찍하고 잔혹하기 짝이 없는 n번방에서도 24세 조주빈이 운영한 ‘박사방’은 유독 더 엽기적이고 악랄하고 가학적인 성착취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언론이 전한 n번방 추적기는 영상물도 아닌 글로 읽는데도 앞이 아득해진다. 아이들이 문신도 아닌 칼로 ‘노예’ ‘박사’ 등의 표식을 새기고, 온갖 가학적인 성폭력을 당하는 모습의 목불인견의 처절한 기록들. 여성의 몸에 애벌레가 기어 다녔다는 대목에서는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게 영화나 상업적 음란물이 아니고 ‘실제’ 라니! 지옥문이 열린다 해도 이처럼 놀라지는 않을 것 같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헤아릴 길조차 없다.

앞이 아득해진 n번방 추적기, 헤아릴 길 없는 피해자들의 고통

우리가 외면하고 느슨하게 대처하는 사이 사이버 공간에서 ‘변종’ 바이러스처럼 퍼진 디지털 성범죄. 현실이 영화나 소설을 능가한다지만 온갖 추악하고 끔찍한 사건을 다루는 수위 높은 하드코어 범죄수사물에서도 10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묘사는 없었다.

국민적 분노는 아동 등의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통한 혐의로 체포된 박사방 운영자뿐만 아니라 이용자 전원의 신상공개와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폭발하고 있다. 지난 18일에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은 불과 1주일 만에 26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는 180만명이 넘었다. 청원 마감은 한참 남았다. n번방 관련 청원자를 모두 합하면 현재까지 550만 명이 넘는다. 성착취물 제작자와 유포자는 물론 영상물을 본 참여자까지 엄벌에 처하라는 국민들의 명령이고 절규다.

하드코어 범죄물에도 없는 경악할 미성년 성착취, 처벌은 솜방망이

문재인 대통령까지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하라”는 지시를 했으나 현실은 암담하다. 보통사람들의 경악과 분노와 달리 현행법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치외법권’ 지대나 다름없다. 아무리 가혹하고 악성이어도 그렇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범죄자에 대한 기존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인 것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7년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분석 결과’를 보면,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한 성범죄자의 최종심 유기징역 평균 형량은 징역 2년에 불과했다.

이나마 20.8%만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80%는 벌금형·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 5년 이상 징역, 최고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는 현행법이 있음에도 관대해도 너무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이다.

사진 출처 : SBS 화면 캡처

아동·청소년 포함한 만개가 넘는 음란물, 검찰 구형은 고작 3년6개월

n번방 3대 핵심 운영자 중 하나인 ‘와치맨’은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 앞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여성의 가슴이나 중요 부위가 드러난 사진과 동영상 등 1만 건이 넘는 음란물을 공공연하게 전시한 혐의다. 여기에는 아동·청소년의 신체 부위가 노출된 나체 사진과 동영상 100여 개도 포함됐다.

그럼에도 검찰은 고작 3년 6개월을 구형했다. 통상 법원의 선고는 검찰의 구형량의 절반 정도니 1년 6개월 후면 범인은 또다시 사이버 공간을 휘젓고 다니게 될 것이다. 상급심으로 올라가면 벌금형이나 집유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n번방과 비슷한 성착취 유사 텔레그램방이 100개 넘는다는 추산이다. 설령 몇몇이 처벌을 받는다 해도 유사 범죄는 박멸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법원과 검찰, 정치권이 성착취범과 ‘공범’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박멸은 하지 못한다 해도 더 이상의 미온적 처벌은 안 된다. 느슨하고 관대한 처벌은 공권력과 법마저 디지털 성범죄를 개인의 성적 취향, 단순 오락거리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당장 국제적인 양형기준에 맞는 강력한 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에 앞서 있는 현행법이라도 적극적으로 최대한으로 적용하시라. 법원과 검찰, 정치권이 성착취범과 공범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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