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기생충에 기생하려는가
한국 정치, 기생충에 기생하려는가
  • 김선미
  • 승인 2020.02.2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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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칼럼] 기생충과 ‘빈곤 포르노’...가난이 구경거리돼 ‘힙’하게 소비되는 시대

가난을 포장해 관광상품화 하면 가난한 지역 주민들의 삶이 개선될까

김선미 편집위원

팔다리는 꼬챙이처럼 말라 앙상하고 갈비뼈가 아른거리고 배는 비정상적으로 볼록 나온, 지금이라도 금방 쏟을 것 같은 눈물 그렁그렁한 큰 눈망울. 아이는 때가 낀 조막만한 손으로 무심하게 얼굴에 붙은 파리를 쫓는다. 아프리카의 병들고 굶주린 아이들을 돕자는 국제 후원단체의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늘어진 전선이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좁은 골목. 추레한 런닝 차림으로 부채질을 하는 표정 없는 사람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찔하도록 가파른 낡은 계단과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낡은 담벼락에는 화사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최근 몇 해 사이 국내에서도 새로운 관광지(?)로 ‘힙’하게 떠오른 몇몇 달동네 모습이다.

갈비뼈가 아른거리는 아이들의 눈물과 낡은 담벼락을 장식한 화사한 꽃잎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는 물론 미국 아카데미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영화 <기생충>의 열기가 뜨겁다. 비영어권 영화에 한번도 문을 열어준 적 없는 콧대 높은 ‘로컬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영화에 대한 열기는 가히 역대급의 신드롬이다.

당연히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온갖 낯뜨거운 마케팅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서민 음식을 상징하는 짜장라면과 우동라면을 함께 끓인 라면에 한우를 올려 비싼 가격을 받는 것은 애교에 속한다. 영화와 관련한 불법 출판물까지 범람한다고 한다.

마케팅의 화룡점정은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아닌가 싶다. 왕조시대나 독재정권을 연상케 하는 봉준호 동상 건립, 봉준호 생가 복원 등등... <기생충>에 기생하려는 염치도 반성도 없는 일부 정치권의 코미디 같은 발상은 보는 이들마저 부끄럽게 한다.

<기생충>에 기생하려는 염치도 반성도 없는 도 넘은 정치권의 마케팅

지자체들도 <기생충> 신드롬에 숟가락을 얹기 위해 영화를 이용한 관광자원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철거한 영화 세트장을 복원한다든지 관련 영화제를 연다든지 온갖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기생충> 열풍이 개념도 생소한 ‘빈곤 포르노’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극단적이고 자극적으로 연출하고, 선정적으로 묘사해 보다 많은 후원금 모금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빈곤 포르노‘라는 용어는 1980년대 국제 자선 캠페인이 급증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형태의 모금 광고나 가난에 대한 묘사가 특정 국가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고 인권을 유린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효과적인 모금 방법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진출처 : 다음

가난을 자극적⸱선정적으로 묘사, 편견과 인권유린 부추기는 ’빈곤 포르노‘

서울시가 최근 서울시 관광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영화 <기생충> 촬영지를 관광코스로 개발해 한류 관광 상품화를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영화 속 돼지쌀슈퍼(우리슈퍼)와 ‘기택 동네 계단’으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의 빌라 길이다.

영화 속 촬영 장소는 영화의 흥행 이후 명소로 자리매김해 관광객을 불러모으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낯선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동물원의 동물을 대하듯 보듯 곰팡이와 눅눅함으로 가득찬 내 반지하방을 들여다 보고 골목을 기웃거리며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나의 동의도 얻지 않고 그 사진을 SNS에 올린다면?

가난이 결코 죄가 아니고 잘못이 아니지만 남루한 내 삶의 민낯이 누군가의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것은 인격적 테러다. 서울시의 <기생충> 촬영지의 관광지화가 발표되자 이른바 ‘빈곤 포르노’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촬영지 거주민을 동물원의 동물로 만드는 것”이란 지적이다.

누군가 곰팡이와 눅눅함으로 가득찬 내 반지하방을 들여다 본다면?

가난의 상품화. 서울시가 처음은 아니다. 몇 해 전에는 인천에서 쪽방 체험촌을 한다고 해서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있다.

‘빈곤 포르노’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넘어서서 지역공동체를 위협하고 주민들의 생활권, 인격권을 침해하는 오버투어리즘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관광산업의 그림자를 생각게 한다. 세트장이 아닌 가난한 거리에는 가난을 ‘체험’이 아닌 실제로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가난이 무슨 상품인가. 가난에 분칠을 해 지역경제와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처럼 포장한다고 해서 지역 주민들의 삶이 개선될까. 관광화가 지역민들을 가난에서 탈출시켜 줄까. 가난마저 구경거리가 되어 ‘힙’하게 소비되는 시대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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