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운동과 연기청년단체 독립운동은 어떻게 ?
3.1독립운동과 연기청년단체 독립운동은 어떻게 ?
  • 황우진 기자
  • 승인 2019.10.25 16: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18년 3월 이미 연기청년회 조직 3.1운동 주도적 역할
1927년 7월 17일자 동아일보, 1972년 추운실기 기록일치
세종시민회관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세미나가 열려 세종지역 3.1독립만세운동을 재조명하는 발표가 이루어지고 있다.

3.1독립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세종지역의 3.1운동을 재조명하는 제5회 세종향토사연구소(소장 황우성) 주최 학술세미나가 25일 세종문화원에서 개최됐다.

이날 학술세미나는 1부 순서로 유영렬 전국사편찬위원장의 3.1운동 의의에 대한 기조강연에 이어 장석흥 교수의 ‘조선민족대동단의 독립운동’, 최창희 한림대 명예교수의 ‘연기청년회의 조직과 활동’에 대한 연구가 발표됐다.

유영렬 전위원장은 1919년 3.1운동의 전개과정과 역사적 의미를 고찰하고 “오늘날 한국은 남북으로 분단 된 악조건 속에서도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예언처럼 아시아의 등불이 되었다”고 말하고 우리민족이 남북을 통일하고 경제대국, 문화대국을 이루는 것이 3.1운동의 완결이라고 결론지었다.

최창희 한림대 명예교수는 이날 세미나에서 지금까지 학계의 정설로 여겨진 ‘한국 청년운동사’를 뒤집는 새로운 시각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학계의 정설은 청년운동의 주도체인 ‘청년회’는 3.1독립운동 이후인 1919년 말부터 결성되기 시작하여 1920년대 이래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기반을 형성하였다고 보았다. 그러나 최교수의 연구논문 발표에 따르면 ‘연기청년회’는 1918년 3월 1일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조직되어 세종시지역(연기군)의 3.1독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고했다.

이는 1927년 7월 17일자<동아일보> 4면 <순회탐방 375 ▷연기청년회◁> 기사에서 확인됐으며 당시 연기청년회를 조직하는데 주역을 담당했던 맹의섭(孟義燮,1890~?)은 자서전 ‘추운실기(鄒雲實記, 1972)에서 연기청년회의 결성이 우리나라 청년회의 효시라고 밝혔다. 맹의섭은 고종황제 인산일인 1919년 3.1만세운동에도 참여한 뒤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조치원에 돌아와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최교수는 연기청년회가 조직된 후 약 10년이 지난 1927년 동아일보 기사나, 54년 뒤 추운실기 기록은 모두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20년 전 맹의섭을 연구한 논문에서도 일제하의 청년운동이 3.1운동이후 ‘문화정치’ 공간에서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주와 연기지역에서는 이미 1918년 청년회가 조직되었음이 확인되며 따라서 1919년 청년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시정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이날 학술토론회는 오전 1부 발표회를 마치고 2부에서는 세종지역 향토사연구위원들의 세종시 각 면별 3.1 독립운동전개에 대한 연구발표가 계속됐다.

세종시향토사연구회 황우성 소장은 “올 해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으로 이번 ‘세종향토사발굴조사 학술세미나’가 세종지역의 독립만세운동사를 재정립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어 ‘지역사 바로보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