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체칠리아 무산 위기..몰랐다면 ‘무능’, 알았다면 ‘기만’"
"산타체칠리아 무산 위기..몰랐다면 ‘무능’, 알았다면 ‘기만’"
  • 김선미
  • 승인 2019.09.2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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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칼럼] 세종시 해외 유명대학 유치, "국제적인 '봉'되나"
김선미 편집위원
김선미 편집위원

최근 벌어진 산타체칠리아음악원 유치 무산 위기 파문은 양해각서 남발과 솔직하지 못한 행정이 부른 예견된 참사라는 점에서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자치단체장과 기관장,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업적으로 포장되고 있는 양해각서(MOU)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잇단 대학 유치 불발, 양해각서 남발과 솔직하지 못한 행정이 부른 참사

“행복도시 입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거나 입주에 관심을 표명한 대학은 국내 30개 대학, 외국대학 9개 등 모두 39개 대학에 이른다. 국내 대학들은 물론 미국 '코넬대', 아일랜드 '코크국립대', 체코 '브르노국립예술대', 호주 '울릉공대' 등 외국 대학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의 야심찬 계획이다. 이 계획들이 결실을 맺었다면 지금쯤 세종특별자치시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교육·연구도시로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 유치 실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덕분에 세종시 4-2생활권을 ‘대학 공동캠퍼스–산학연클러스터센터–벤처파크–국제과학비지니스밸트’로 이어지는 산·학·연 협력 공간 조성마저 차질을 빚게 됐다.

화려한 MOU대로라면 지금쯤 교육·연구도시로서의 위용을 자랑했을 것

세종시 건설은 단순한 신도시 건설이 아닌 행정부처를 중심으로 수도권의 기능과 역할을 분산시키는 사실상의 ‘행정수도’ 건설이다. 세종시 출범 이후 인구가 30만 명이 넘어서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지만 이제 겨우 세종 국회의사당 설치가 가시화되는 등 행정수도 완성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건설의 책임을 지고 있는 행복청의 느슨하고 안이한 업무 수행은 세종시 미래에 대해 미덥지 못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처절할 정도로 지지부진한 대학 유치 성적표는 구태의연한 보여주기식 행정의 전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40여개의 대학 중 세종시 입주가 확실한 곳은 내년에 세종 충남대병원을 개원하는 충남대 의대와 2021년 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는 KAIST 융합의과학원 설립이 고작이다.

갈 길 먼 행정수도 세종시, 미덥지 못한 행복청의 부실 행정 불안감 키워

확실한 성과물로 내세웠던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음악원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학의 세종시 입주마저 물 건너가는 상황이다. 특히 조수미를 배출한 음악원이라며 기회 있을 때마다 대표적 업적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해왔던 산타체칠리아음악원은 무려 3차례나 설립 인가가 불허됨에 따라 무산될 위기에 처해 지역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2차례의 교육부의 인가 불발에도 설립에 자신감을 보여 왔던 행복청이다. 하지만 최근 3번째 마저 불허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 설립 신청 주체, 음악원 학생 수요 예측, 교원 수급계획, 재정운영계획 등 신청 요건 전반이 미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총체적 부실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8월 첫 불발 후 세 번째 신청에 이르기까지 1년 동안 행복청은 무얼 했는지? 유치 의지가 정말 있기나 한 것인지?

산타체칠리아 본교, “학교 이름은 빌려주지만 재정지원은 일절 않겠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씩이나 거의 같은 이유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하기가 어렵다. 첫 번째 실패는 경험 미숙, 상황에 대한 오판, 준비 부족 등이었다고 해도 두 번째부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왜 인가가 안 나는지 문제점을 몰랐다면 ‘무능’한 거고 알고도 면피용으로 관성적으로 추진했다면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교육부가 인가를 불허한 가장 큰 이유는 산타체칠리아 측이 세종시에 분교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점으로 알려졌다.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은 어떤 경우에도 세종 분교에 본교 차원의 재정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름은 빌려주지만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세계 유수의 대학 유치가 치킨집, 빵집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하며 유치에 나서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산타체칠리아 대학 음악원 전경
산타체칠리아 대학 음악원 전경

외국대학 유치 성공 사례 거의 없어, 재정지원 끝나면 태반이 철수

사실 국내에서 외국대학 유치 성공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MOU를 맺을 때는 화려하고 거대한 그림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대부분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한국의 재정지원이 끝나면 철수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른바 먹튀다. 덕분에 한국만 국제적 봉, 호구가 되고 있는 셈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 측이 필요 이상 저자세로 목을 매기 때문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MOU의 남발, 이제는 협정서 들고 활짝 웃으며 사진 찍는 데에 취해 현실 가능성을 외면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행복청은 전시행정으로 더 이상 국민을 현혹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40개의 MOU도 좋지만 단 개라도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려 실질적 성과를 내도록 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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