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입시부정, 병역 비리 견뎌낸 후보자는 없었다
자녀 입시부정, 병역 비리 견뎌낸 후보자는 없었다
  • 김선미
  • 승인 2019.08.2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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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칼럼] 조국이 부른 ‘역린지화(逆鱗之禍)’...역린 건드린 혹독한 댓가
청문회 후 사퇴, 딸도 학교 그만 둬야, 세대 넘어 국민 가슴에 대못박았다

문재인 정부의 페르소나, 조 후보자가 폭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김선미 편집위원
김선미 편집위원

‘역린(逆鱗)’. 거슬러 난 용의 비늘. 용은 온순하고 사람과 친근한 동물로 등에 사람이 올라탈 수도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잘못해서 용의 턱 아래 거슬러 난 비늘을 건드리면 용은 노해서 등에 올라탄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왕과 같은 절대 권력자의 노여움을 뜻하는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역린지화(逆鱗之禍)의 고사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특혜 의혹이 ‘역린’을 건드렸다. 왕이 아닌 ‘국민 역린’을 말이다. 동생의 위장 이혼·위장 소송, 부동산 위장 매매, 가족 사모펀드 투자 등의 의혹이 쏟아져 나올 때만 해도 이 정도로 파장이 크게 번질 줄은 몰랐다.

강력한 검찰 개혁 구상, 사회 환원에도 별무소용 민심은 악화일로

제 자식도 제 마음대로 못하는데 장성한 동생의 가정사까지 들추며 공세를 벌이는 것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았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동생에 대한 무차별적 폭로에 더해 조국 후보자 부친의 묘비 사진에 손주 이름까지 공개한 자유한국당 김진태의원의 막무가내 폭로는 오히려 역풍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딸을 둘러싼 논문 특혜, 장학금 특혜 의혹이 불거지며 민심은 악화일로다. 무엇보다 2030 세대의 분노와 배신감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명문대-의학전문대학원’을 위한 입시 레이스, 그들만의 견고한 성, 스카이캐슬 입성을 향한 상류층, 사회지도층의 특혜와 편법 행렬은 조국 후보자와 같은 ‘금수저’ 배경을 갖지 못한 이 땅의 대다수 국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 논문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신공’을 비롯 고구마 줄기 뽑히듯 줄줄이 이어지는 의심스러운 UN 인턴 과정 등은 ‘사실상 부정입학’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자식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부모의 마음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선 것이다.

고교 1년생이 논문 제1저자? 2030 세대 넘어 국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다

2030 세대의 실망감과 분노를 넘어 국민적 공분은 민심 이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층마저 흔들릴 지경이다. 조 후보자는 사과와 함께 사모펀드와 사학재단 웅동학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여론을 돌리기에는 별무소용이다.

핵심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페르소나나 다름없는 조국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의 폭탄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의 자녀 문제는 도덕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 지 오래다. 자식 문제에 발목이 잡혀 낙마한 사례가 부지지수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 출범 후 첫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시작으로 취임 3일 만에 옷을 벗은 이기준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비롯 자녀 관련 의혹으로 총리와 장관직 낙마 잔혹사가 이어진다. 여론의 검증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탈락한 후보자들은 더 많다.

정치인 고위 공직자 자녀 관련 의혹으로 줄줄이 이어진 낙마 잔혹사

자녀 문제와 관련한 정치권의 최대 사건은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차남 병역 면제 논란이다. 당시 당선을 장담했던 여당 후보였던 이 후보는 아들의 병역면제가 발목을 잡으며 결국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후 고위 공직자에게 아들의 병역 문제는 후보자 당사자의 병역 이행 여부보다도 더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다. 오죽하면 ‘아들 없는 것이 다행’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이제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자녀 입시부정, 병력비리 등 국민들의 역린과 관계된 의혹에 휩싸여 문재인 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다. 사진은 SBS 화면 캡처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자녀 입시부정, 병력비리 등 국민들의 역린과 관계된 의혹에 휩싸여 문재인 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다. 사진은 SBS 화면 캡처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자녀의 병역, 입시, 채용, 이중국적 등의 문제는 인사청문회의 단골 메뉴다. 온갖 결격사유 중에서도 가장 민감하게 작용하는 것이 자녀와 관련된 문제다. 특히 자녀의 부정입학, 병역비리 의혹은 돈이나 부동산 문제보다 더 폭발력이 크다.

조 후보자의 딸 문제가 가져온 후폭풍의 최대 피해자는 조 후보자 본인과 딸, 가족에 앞서 국민이다. 문재인 정부에도 엄청난 부담을 안기고 있다.

돈, 부동산 투기 의혹보다 폭발력이 더 큰 자녀의 입시부정, 병역비리

조국 후보자는 오늘 검찰 개혁안을 발표하며 딸 의혹에는 정면 돌파할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한 번 돌아선 민심이 돌아설지는 미지수다. 당사자와 가족은 물론 무한 신뢰를 보냈던 청와대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서울대 교수로도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최선의 방법은 청문회에서 ‘잘못 알려진 억울한’ 부분을 충분히 해명한 후 사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설령 임명이 된다 해도 이처럼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정상적인 업무추진이 가능하겠는가. 가혹하지만 조 후보자의 딸 역시 박희태 장관 딸이 그랬듯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시작해야 그나마 국민적 공분을 누그러뜨리지 않을까 싶다. 국민의 역린을 건들인 혹독한 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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