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내의 시신 곁에 앉아 울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시신 곁에 앉아 울고 있었다”
  • 김선미
  • 승인 2019.05.01 16: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선미칼럼] 치매 간병이 부른 가족 살해의 비극, 고령 사회의 어두운 단면

노인 인구 10명 중 1명 치매, 대형 노인요양시설 증설 찬·반 엇갈려

김선미 편집위원
김선미 편집위원

“남편은 아내의 시신 곁에 앉아 울고 있었다.” 활자는 눈을 찔렀고 먹먹한 통증이 명치 끝 부터 올라왔다.

오랜 간병에 지친 남편은 아내에게 요양병원 입원을 권유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를 거부했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10여 년 간 간호해온 80세의 남편은 요양병원 문제로 아내와 다투다 순간 격분해 흉기로 아내를 살해했다. 남편은 범행 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많이 지쳤고 너무 힘들었다.” 남편이 쓴 유서와 경찰에서 진술이다. 지난주 전북 군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사람의 목숨을, 그것도 수십 년 함께한 아내를 무참하게 숨지게 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륜 범죄이다. 하지만 아내 시신 곁에서 울고 있는 이 노인에게 그 누가 자신있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치매 간병 스트레스’로 가족을 살해하는 비극이 잇따르고 있다.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고 오랫동안 가족이 오롯이 그 짐을 안고 가야 하는 고령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많이 지쳤고 너무 힘들었다.” 패륜범죄이나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충격적인 간병 스트레스 범행은 국내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간병에 지쳐서 아내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범행을 알렸다. 구속된 남편은 물과 녹차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병원으로 옮겨져서도 식사를 거부하던 남편은 끝내 숨을 거뒀다.

부인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한 그는 곡기를 끊음으로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80대인 그 자신도 암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3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다.

92세 노인은 아들이 요양원에 보내려 하자 아들에게 총을 쏘았다. 어머니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했지만 아들은 ‘요양원행’을 주장하며 모자는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살해한 후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출동한 경찰을 순순히 따라갔고 법정에서는 아무런 변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미국 아리조나주에서 발행한 일이다.

아내 살해 후 곡기 끊은 남편, 요양원 보내려는 아들에 총 쏜 어머니

<아무르>. 몇 해 전 보았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영화의 첫 장면은 다소 충격적으로 시작된다. 여러 명의 소방관이 어떤 집에 들이닥친다. 방문 틈새를 빈틈없이 막은 테이프를 뜯고 방안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노부인의 시신이 눕혀져 있다. 시신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채였고 꽃에 둘러싸여 있었다.

방이라는 관 속에 누워 있는 노부인을 비추던 카메라는 과거로 돌아가 부부의 일상을 보여준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미카엘 하케네 감독의 <아무르>는 노년의 품위 있는 죽음, 부부의 사랑, 고통스런 노(老)-노(老) 돌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남과 여>의 장 루이 트랭티낭과 <히로시마 내 사랑>의 에마뉘엘 리바가 분한 조르주와 안느는 은퇴한 음악가 부부로, 오래 산 부부가 그렇듯 서로에 대한 믿음 속에 덤덤한 일상을 보낸다. 어느 날 안느가 쓰러지며 평온했던 부부의 일상에는 균열이 가고 암울함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노인 요양을 위한 국가 책임제 등을 실시하고 있으나 채매 노인 부양 등에는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기사내 특정사실과 무관함

영화 <아무르>, 품위있는 죽음, 노-노 돌봄, 부부의 사랑에 대해 묻다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안느는 남편에게 자신을 다시는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프랑스어로 ‘사랑’이라는 뜻의 <아무르>는 병들어 서서히 죽어가는 아내와 그녀를 보살피며 고통 속에 속수무책으로 지쳐가는 남편의 이야기다.

영화는 참혹했고, 보는 내내 가슴은 납덩어리가 내리누르듯 무거웠다. 자신의 손으로 떠나보낸 아내의 장례식을 위해 한 아름의 꽃을 사오던 조르주의 꾸부정한 어깨와 느린 발걸음이 지금도 눈에 밟힌다.

중앙치매센터가 발표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치매환자가 70만 명을 넘었고 치매유병률은 10.0%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인 10명 중 1명꼴로 치매를 앓고 있는 셈이다. 고령 사회와 더불어 치매환자는 지속적으로 늘어 2024년 100만 명, 2039년 200만 명, 2050년엔 3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 시설들의 노인 학대와 불법 행위, 요양시설에 대한 불신 더해

정부는 그동안 가족이 전적으로 책임져왔던 치매 노인의 부양 부담을 국가가 나누는 ‘치매 국가책임제’ 일환으로 대형 노인 요양시설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노인들을 사회에서 격리해 대형 시설에서 집단화하는 것은 인권과 안전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과, 가족 부담을 고려하면 시설 확충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택하는 것이지 누가 요양시설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할까.

모든 요양시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일부 요양시설들의 노인학대 등의 일탈과 불법은 요양시설들에 대한 불신을 더하고 있다. 정부는 요양시설을 확충하기에 앞서 관리감독부터 철저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