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활짝 핀 세종, 혹시 무릉도원은 아닐까"
"복사꽃 활짝 핀 세종, 혹시 무릉도원은 아닐까"
  • 임비호
  • 승인 2019.04.3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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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 칼럼] 복숭아에 얽힌 어린시절...솎아낸 복숭아 삶아 먹는 걸 이해못하시던 선생님
1906년 농촌진흥청의 산실인 권업모법장 과수시험포가 조치원 봉산리에 들어선 게 시초
세종시의 꽃은 다른 것과 달리 복숭아로 지정된 이래 한번도 바뀌지 않을 만큼 지역 특산물이 됐다.

봄기운이 울긋불긋 꽃 대궐을 이루더니 이제 하나 둘씩 짙은 연녹색을 더하고 있다. 조천을 물들인 화려한 벚꽃과 구릉지에 넓게 핀 복사꽃들이 봄의 향연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 가로변 벚꽃이 도심을 화사하게 꾸미고, 구릉지 복사꽃들은 우리들 마음까지도 봄으로 장식하는 것 같다.

봄이 되어 우리의 마음에까지 피어나는 복사꽃이 세종시 상징 꽃이다. 과거 연기군 시절부터 계속 이어지는 시화(市花)이다. 시목(市木)은 향나무에서 소나무로 바뀌고, 시조(市鳥)는 제비에서 파랑새로 바뀌었어도 시화(市花)만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세종시 어디를 가도 발길마다 눈길마다 마주치는 것이 복사꽃이기 때문일 게다.

어린 시절 탱자나무 울타리 복숭아꽃은 우리들에게 다양한 놀이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신호탄이었다. 복사꽃 핀 과수원 아래에서 토끼풀로 꽃반지 만들며 놀기도 하고, 술래잡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꽃이 피었다 지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초등학교 앞 구멍가게에는 노란 햇병아리들과 함께 달달한 당원이 묻어있는 풋 복숭아들이 선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씁쌀한 뒷맛이 남는 당원의 달달함에 이끌려 우리들은 엄마에게 혼나면서 얻은 코흘리개 동전을 홀린 듯 내밀곤 하였다. 지금도 달달한 풋 복숭아의 그 맛은 추억의 한 장면으로 고스란히 뇌리에 남아 있다.

복숭아 농사에 주력했던 조치원 사람들에게는 당연했겠지만 외지인들에게는 생소한 복숭아 식문화(食文化)가 있었다. 솎아 낸 어린 복숭아를 삶아 먹었던 바로 그것이다. 60~70년대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한 시절이라 그랬는지 조치원 사람들은 솎아낸 풋 복숭아를 삶아서 달달한 당원에 무쳐 별미처럼 먹었다.

더불어 어린 시절 나의 기억 속에는 먹고 남은 하얀 씨앗들을 오물딱 쪼물딱 만지며 놀다가 터트렸던 장면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경기 진오기 새남 중 복숭아 나무가지로 활을 쏘아 잡기를 잡는 장면, 사진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학교 농업시간이었던 것 같다. 외지에서 오신 선생님이셨는데, 조치원에서는 풋 복숭아를 삶아 먹는다고 하니 이상하고 이해가 안 된다는 식으로 계속 고개를 꺄우뚱거리며 낯설어 하셨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복숭아 농사를 많이 짓고 먹을 것이 없었던 시절의 독특한 문화이기에 낯설어 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이해되기도 한다.

세종시에 봉숭아 과수가 많게 된 계기는 일본이 조치원에 경부철도 역을 세우고 1906년에 농촌진흥청의 산실인 권업모법장 과수시험포가 조치원 봉산리에 세워져서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일본은 근대화 과정 중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기에 본국의 국민들 생필품과 산업 원자재를 싼 값으로 제공하기 위해 조선을 삼키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편하는 단계이었다.

문명화라는 명분으로 일제는 세종시 인근 하천변에 제방을 쌓아 안쪽은 논을 만들고, 바깥쪽은 단무지와 감자를 생산하는 곳으로 만들었으며, 구릉지에는 세종시 기후 조건에 적합한 복숭아 과수를 재배했던 것이다.

결국 일제에 의해 세종시에 복숭아 과수가 많아지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처음부터 세종시에 복숭아 과수가 민족의 자생적인 힘으로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왜 세종시에서 복숭아 과수가 잘 되었을까? 복숭아 나무는 생물학적으로 장미과에 속한다. 관목류인 장미과 복숭아나무는 교목인 큰 나무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에 그들을 피할 수 있고, 햇빛을 풍부히 받을 수 있는 곳이 적당하다. 또한 배수가 잘 되며 적당한 기온을 유지하는 것이 최적지라 할 수 있다.

세종시는 지구의 지각변동에서 오래 된 시기에 속하여 낮은 구릉지가 주를 이루고 있는 지형을 가지고 있으며, 금강과 미호천으로 인한 미세한 일교차가 있어 과수에게는 긴장감을 높일 수 있는 곳이라 과질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일설에 의하면 같은 품종이라도 다른 지역에 가면 세종지역에서 생산한 복숭아와 같은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것이 아마도 세종시가 가지는 기후 지형의 조건 때문이 아닐까한다.

잘 익은 복숭아와 이를 관리하는 서왕모

우리 지역에 복숭아 과수가 많아서 좋은 점은 홀릴듯한 화사한 꽃을 많이 볼 수 있고, 밤에 먹으면 미인을 만든다는 과일을 풍부히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복숭아에 관련 된 많은 이야기를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복숭아의 꽃과 열매 그리고 복숭아 나뭇가지에는 많은 신화와 전설을 품고 있다.

복사꽃의 화려함은 인간 삶의 이상향이 된 무릉도원을 형상화하는데 쓰였고, 겨울 찬 기운이 가시기 전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기에 대표적인 양목(陽木)으로 알려져 동쪽으로 난 가지로 귀신을 쫒는다는 속설을 가지고 있다. 열매의 생김새가 여인의 생식기를 닮아 생명력을 길러주는 의미로도 사용되며, 불로장생을 의미하는 신선들의 과일로 상징되기도 한다.

이런 전설과 신화를 들을 때면 이 지역에 사는 내가 괜히 으쓱해지기도 한다. 내가 사는 복사꽃 화려하게 핀 이곳이 혹시 무릉도원은 아닐까? 복숭아를 많이 먹으니 신선처럼 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귀신이 복숭아나무 가지를 무서워하여 멀리 도망가 행복만 활짝 피는 동네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아니 그런 동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종의 시화(市花) 복사꽃을 보면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나를 웃게 만든다.

   
 

임비호, 조치원 출생, 공주대 환경과학과 졸업,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전)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전)세종시 환경정책위원, (전)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이메일 : bibo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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