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염원..없는 아들 대신 이룬 딸의 기적
아빠의 염원..없는 아들 대신 이룬 딸의 기적
  • 이인해
  • 승인 2019.04.24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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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칼럼] 이인해 배재대 미디어 콘텐츠 학과...인도 여성 인권의 승리, 영화 ‘당갈’
이인해
이인해

영화 ‘당갈’은 스포츠 영화지만 단순히 운동선수로서의 성장영화가 아니다.

여성 레슬러로서 주위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던 두 딸 ‘기타’와 ‘바비타’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마하비르’와 함께 세대 갈등과 여성 차별 사회 속에서 서로 화합하고 이겨내는 서사에 집중한다. 영화 속에서 레슬링과 그것을 위해 하는 모든 행동은 비단 인도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와 사회 속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는 여성의 해방을 의미한다.

“금메달은 다 똑같은 금메달인 걸 몰랐지. 아들이든 딸이든 따면 되는걸.”

‘마하비르’는 아들을 통해 레슬링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꿈을 이루려 하지만 네 명의 딸만줄줄이 낳게 돼 번번이 포기한다. 우연히 딸 ‘기타’와 ‘바비타’에게서 레슬링의 재능을 발견하고 딸들을 통해 그 꿈을 실현하게 하려 한다. 여성 인권이 낮고, 성고착화가 만연한 인도에서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던 레슬링의 여성 선수로 살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는 딸들에게 집안일을 그만두게 하고 치마가 아닌 짧은 반소매, 반바지로 갈아입힌다. 마을의 어른들은 물론 또래 친구들의 비웃음과 놀림을 받던 ‘기타’와 ‘바비타’는 혹독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용기를 내 아버지에게 레슬링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다. 괘씸했던 아버지는 다음 날 두 딸의 긴 머리를 ‘남자아이처럼’ 짧게 잘라버린다.

“우리의 현실은 딸이 태어나면 요리와 청소를 가르치고 온갖 집안일을 시켜. 그러다 14살이 되면 결혼시켜 버리지. 짐을 치우듯이 말이야. 본 적도 없는 남자한테 딸을 넘겨버리는 거야. 아이나 낳아 키우라는 거지. 딸이란 그런 존재니까. 적어도 너희 아빠는 너희를 자식으로 여기시잖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딸들에게 이루어지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행동들은 충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비추어진다. 하지만 14살에 아버지에게 등 떠밀려 결혼식을 올리던 자매의 친구를 통해서 ‘기타’, ‘바비타’의 상황은 오히려 여성 해방의 의미를 보여준다. 두 자매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강요받는 ‘여성스러움’을 완전히 탈피한 것이다.

‘기타’는 실력을 인정받아 국립 체육 학교에 입학한다. 아버지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과 훈련 방식이 마음에 들던 ‘기타’는 자신만의 훈련 방식을 고집하던 아버지와 싸운다. 일탈의 의미로 머리를 기르고, 외모를 치장하고 남학생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기타’는 훈련에 집중하지 못해 결국 국제 경기에서 매번 패한다. 그런 ‘기타’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아버지를 이해하고 먼저 화해를 청한다. 그리고는 스스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치장하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훈련에 집중한다. 아버지로 인해 레슬링을 시작했지만 자매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승리를 이끌어 낸다.

여성의 해방이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강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하지만 긴 머리, 치마, 예쁜 장신구들, ‘여성스러움’을 스스로 버리지 못하고 아버지를 통해 버려지는 것이 인도 사회에선 더 현실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마하비르’는 사랑하는 딸들이 인도 사회 속 차별받는 여성이 아닌 모두와 평등한 여성으로 자라길 바랐다.

“잊히는 경기를 해서는 안 돼. 너의 승리는 너만의 것이 아니고 수백만 인도 여자아이들의 것이야. 너는 여자를 하찮게 보는 모든 사람과 싸우는 거야. 여성은 열등하다는 인도의 문화에 대한 저항이며 인도의 여자아이들 인권의 승리야. 네가 진다면, 수많은 인도 여자아이들이 지는 거야.”

‘기타’는 남자아이와의 작은 시골 레슬링 경기를 시작으로 올림픽까지 출전한다. 올림픽 출전 직전 국제 경기 당시 방황과 일탈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았던 ‘기타’지만 다시 아버지의 코치를 통해 올림픽의 결승전까지 올라가 금메달을 딸 기회만을 남겨둔다. 경기 전 아버지가 딸에게 한 이야기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다.

영화 '당갈'의 한 장면, 출처 : 다음

‘기타’의 결승전 경기는 표면적으로 같은 여성 운동선수와의 경기지만 ‘기타’는 레슬링을 시작한 첫 순간부터 여성으로서 여성 인권이 낮은 인도 사회와 싸우고 있던 것이다. 여성에게 ‘여성스러움’을 강요하는 사회, 여성을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사회, 여성들의 진출이 어려운 사회, 어렵게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마저 무시하는 사회. 그 사회의 일원이자 여성인 ‘기타’와 ‘바비타’는 모든 싸움을 하나씩 이겨냈다.

“늘 아빠가 달려가서 널 구해줄 순 없어. 난 싸우는 법을 가르칠 뿐 넌 혼자 싸워야 해! 노력해서 살아 나와!”

결승전의 긴박한 상황에서 ‘기타’는 어릴 적 훈련할 때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경기에서 ‘기타’는 아버지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승리하지만 끊임없는 응원과 지원을 통해 금메달리스트 ‘기타’로 성장시킨 것은 아버지이다. ‘마하비르’는 ‘기타’와 ‘바비타’에게 두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 강압적인 아버지로 양면적인 모습을 보인다. 두 딸에게 아버지는 그들이 속한 또 다른 사회이다. 모순적이던 그 모습이 어쩌면 여성들을 억압하던 사회가 이제는 여성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한다. 사회는 그 사회를 향한 여성의 도전에 도움과 응원을 보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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