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한 한 끼, 간단하다 싶으면서도 챙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매일 같이 끼니마다 뭔가 다른 것을 준비해서 가족들이 질리지 않는 밥상을 챙겨야한다는 생각 그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다. 영양학을 전공한 탓인지, 직업병 때문인지 몰라도 매번 반복되는 그 일이 짐스럽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외식할 때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따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단체급식처럼 영양, 색깔, 질감 등을 생각해 가면서 밥상을 차리게 된다. 반찬은 모듬으로 차려 놓는데 그러면 각자 큰 접시에 자기가 먹을 것을 덜어다 먹는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기의 음식양도 알게 되고 편식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고칠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위생적인 측면과 영양적인 측면에서도 좋지만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절제력과 특정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자신 만의 식사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 같아 좋다.
그런데 식사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기 기호에 맞는 것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도 어떤 이는 뉴스만을 보고, 또 어떤 이는 쇼핑에 이메일에 알게 모르게 점점 자기위주의 정보 편식을 하게 된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이 만화만을 고집하듯이 스포츠에 뉴스에 드라마에 저마다 어느 한쪽만을 고집하는 면이 많다. 물론 그것을 통해 즐거움과 함께 세상읽기도 하지만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편견과 선입견, 타인에 대한 오해와 착시가 발생하여 제대로 세상을 읽어 내기가 어려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뉴스를 통해 세상도 읽어야겠지만 드라마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도 들여다보고 가족과 함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족 간의 친밀도도 높이는 것이 삶에 더 유익하지 않을까?
내가 어렸을 적엔 낮에 텔레비전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항상 라디오를 틀어 놓았다. 라디오가 있는 그 시절에는 시간이 참 길었다. 그냥 들려오는 대로 클래식부터 가요, 팝송, 창에 이르기까지, 또 다른 사람들의 절절한 편지 사연과 법에 관한 정보와 각종 뉴스를 알게 모르게 듣고 살았다.
무의식적으로 내 마음속에 녹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내 모습인 양 느끼고, 제목도 모르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흥얼거리는 그것이 있었기에 때론 힘들고 사랑이 고플 때도 내 맘속에 쌓았던 것을 꺼내 먹을 수 있어서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웠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라디오가 참 좋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하루 종일 참 다양함을 가져다준다. 마치 편식하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처럼···.
영양학적으로 지나친 것은 과잉증, 부족한 것은 결핍증이라 한다. 넘치면 줄이고 부족하면 보충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래도 이러한 영양성분의 과소를 판단하는 것은 많은 진단법이 개발되어서 어렵지 않게 분별할 수 있지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은 쉽지가 않다. 누가 얘기해준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또 누가 알려 준다고 해도 귀를 열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고 부족한 것과 넘치는 것을 찾아 자기 알기에 힘써야 할 것 같다. 그런 뒤에야 남을 볼 여력과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회의 기본인 가정, 나를 알고 내 가정을 이해할 때, 제대로 균형 잡힌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필자 강수인은 올해 44세로 자녀 둘을 둔 가정 주부이다. 최근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학교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자녀 교육 방식을 전해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매월 서너번에 걸쳐 미국 교육 방식에 대해 '세종의 소리'를 통해 연재할 예정이다./편집자 씀>
그런데 수정했다면 어디다 했다는 것인지...
전과 동일 한 듯한데요...헷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