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예양리, '미꾸지'에서 유래됐다
미호천·예양리, '미꾸지'에서 유래됐다
  • 윤철원
  • 승인 2019.03.1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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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 칼럼] 미호천과 '미꾸지'...산끝 마을에서 '미끝', 그 다음이 '미꾸지'
1910년 작성된 '조선지지'에 미호천, 미호진 등장...이때부터 공식명칭 사용
미호천은 연동면 예양리 '미꾸지'라는 지명에서 유래됐다. 사진은 미호교에서 바라본 미호천

휘도는 긴 강, 십리 넘는 듯 / 一帶長江 十里餘

들녘사람 취미는 고기 잡는 버릇일세. / 野人淸趣 癖於漁

저문 달은 물가 닿은 하늘에 걸렸는데 / 第看月落 汀空夜

횃불 들고 오고 감은 별빛 같아라. / 炬火縱橫 星火如

장기항(張基恒)의 동진어화(東津漁火)

동진강에서 횃불 들고 물고기 잡는 모습(동진어화, 東津漁火)을 노래한 한시다. 크게 휘돌아가는 강, 기우는 달, 맞닿은 물끝과 하늘, 이리 저리 휘둘리는 횃불..... 예전 여름밤 물고기 잡는 광경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 선하다.

동국여지승람에 “동진(東津), 그 근원이 셋이니, 하나는 진천 두타산이오, 하나는 청주 적현이며 하나는 전의에서 나오는데 남으로 흘러 공주의 금강으로 들어간다”고 쓰여 있다. 여기서 동진강은 연기현에서 부르던 미호천의 옛 이름이다.

미호천! 아름다운(美) 호수(湖)같은 강(川)!

충북 음성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약 89km를 달려 세종시 합강에서 금강과 합류하는 대표적인 금강수계다. 그물길이 세종시 지역에서는 연동면 예양리에서 합강리까지 10km 정도 관류한다.

미호천(美湖川)이라는 하천명을 1900년 이전에 발간된 각종 지지(地誌)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미호천을 군현별로 각각 달리 호칭했기 때문이다. 청안현에서는 반탄(潘灘), 진천현에서는 주천(注川), 청주목에서는 작천(鵲川) 또는 망천(輞川), 연기현에서는 동진강(東津江)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각 지역별로 다양하게 호칭되었던 이름이 미호천으로 통일된 것은 1910년대 초반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미호천은 어디에서 유래하였을까? 세종시 연동면 예양리 ‘미꾸지’라는 마을명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 근거를 살펴보기로 한다. ‘미꾸지’를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미곶진(彌串津)으로 표기하였다. 1899년 연기군지도에서는 미곶진(美串津)으로 음차가 바뀐다. 1910년대 작성된 ‘조선지지 자료’에서 미호진(美湖津)과 미호천이 등장하는데 이때부터 다른 호칭은 공식명칭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1899년 연기군 읍지도에 그려진 미호천

‘미꾸지’는 나루터였다. 조치원 방면을 왕래하려면 연동면 예양리와 오송읍 미경동(동평5리)을 연결하는 이 나루를 거쳐야 했다. 미호천 제방이 축조된 후에도 나룻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기에 애용되었으나 1970년대 초반 미호교가 준공되고 나서부터 그 역할을 완전히 상실해서 이제는 기억마저 가물가물하다.

‘미꾸지’는 ‘미끝’ 즉 산 끝 마을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를 음차한 것이 미곶(美串)인데 옆 마을의 ‘물미’라는 지명과 서로 대응하는 것이 흥미롭다. ‘미꾸지’가 ‘산자락 끝 마을’이라면 ‘물미’는 ‘물 닿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미호천 제방을 쌓기 전에는 ‘물미’까지 강물이 흘렀다고 하는데 미호천제방에서 1km 정도 떨어져있기 때문에 정말 이 마을까지 물이 닿았을까하는 의아함이 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유래를 알고 나면 지명에 대한 친근함이 한층 깊어지듯 미호천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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