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교시 체육시간.
“피구해요”
어김없이 아이들이 하고 싶은 종목은 피구였다.
나는 다른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놀이를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놀이의 재미를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나와 오로지 피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던 아이들은 체육시간마다 줄다리기를 한다.
“쌔~앰, 제발 우리가 하고 싶은 피구를 많이 하게 해 주세요”
“그럼, 다른 놀이 한 번 배워보고 수업 끝나기 10분 전에 피구하면 어떨까?”
그렇게 설득해서 겨우 체육수업을 진행했다.
내가 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피구가 아닌 다른 놀이를 할 때도 분명히 즐거워보였는데 아이들은 피구를 하지 않으면 체육을 하지 않은 것이라며 늘 억지를 부린다.
약속대로 수업 끝나기 전 10분은 피구를 하도록 했다. 던지는 공에 온 힘을 실은 듯 공이 빠르게 날아가는 소리와 상대방을 맞추는 소리가 무섭게 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피구공이 왔다 갔다 하더니 갑작스레 가장 덩치 큰 아이가 던진 공은 상대편 진영이 아닌 강당 한쪽 구석에서 쉬고 있는 남자아이의 얼굴로 향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쉬고 있던 아이는 날아온 공에 안경을 맞고 울기 시작했다. 던진 아이는 당황하여 얼른 사과를 했지만 맞은 아이는 한쪽 눈을 감싸 쥐고 울기만 했다. 다른 선생님에게 남은 아이들을 맡기고 보건실로 내려갔다. 보건선생님은 안경테가 부러지면서 눈동자를 살짝 찌른 것 같으니 빨리 병원을 가라고 했다.
맞은 아이도 피구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그 날은 다리가 아파서 강당 한쪽 구석에 앉아 구경하는 입장이었는데 그 좋아하는 피구는 해보지도 못하고 피구공에 맞았으니 아프기도 하지만 억울하기도 할 터. 체격 좋은 6학년 아인데도 친구의 공을 맞고 우는 모습은 천생 아기였다. 아픈 아이를 옆에 두고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병원으로 데려가는 차 안에서도 공을 던진 친구를 욕하며 엉엉 울기만 했다. 안과에 도착하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이런 저런 검사를 받았다. 아이가 검사를 받는 사이에 아이의 엄마와 통화하는데 귀한 아들이 다쳤다는 말에 직장에서 나올 수는 없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걱정스러움이 수화기 너머로 묵직하게 전해졌다.
큰 병원을 가야하는 건 아닌지, 심각한 건 아닌지 아이 엄마의 걱정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가라앉지 않았다. 부모라면 누구나 당연한 걱정이겠지만...다행히 검사결과는 걱정할만한 상태가 아니란다.
치료를 마치고 약을 받은 후 안경점에 들러 부러진 안경테를 바꾸고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아들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도 일찍 퇴근하여 집으로 오는 길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아이는 다친 덕분에 아버지와 즐거운 오후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다.
다친 아이는 원래 장난기가 많고 짓궂은 아이였다. 평소에 친구들에게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장난을 걸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까불거려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로 알려져 있었나보다.
며칠 뒤 학교로 찾아온 그 아이의 엄마는 병원에 함께 갔다 온 이후로 아이가 선생님을 따르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아마도 그동안 나와의 사이가 안 좋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건 아이의 엄마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아이는 장난꾸러기에다 말썽이 많아 나를 힘들게 한 일도 많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나를 챙겨주는 사려 깊은 아이기도 하다.
나를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는 아이였다는 사실을 그 엄마에게 알려줬다. 아마도 학급친구들이 집에 가서 그 아이가 선생님을 힘들게 한다고 말했던 것이 그 엄마에게 전해졌었나보다. 그 때문에 그 아이의 엄마는 마음고생을 했던 것 같았다.
내가 그동안 그 아이와 나누었던 문자내용과 그동안의 학교생활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뜻밖이라는 반응이었다. 전혀 몰랐다고... 그저 아이가 선생님께 미움을 받고 있는 줄만 알았다고...
물론 아이들이 미운 순간이 있다. 그렇지만 학부모들에게 금쪽같은 자녀가 교사에게 라고 다르겠는가!
교권이 무너져가고 교실이 붕괴되어간다는 요즘의 학교. 학년 초에 모두가 꺼려하는 6학년 담임을 자청하면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학급운영은 그 어느 때보다 힘겨웠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예전과 달라져서인지 모르겠으나 학기 중간에 휴직을 떠올리며 고민하기도 했었다. 6학년 아이들에게는 젊은 선생님들이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고 쉽게 소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학급 아이들에게 미안해지고 점점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게서 멀리 있는 것 같았던 아이들이 “쌤”을 부르며 한걸음씩 다가올 때는 교직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은 수그러들고 지금도 여전히 말썽꾸러기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아직은 교단이 싫지 않은 지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아이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