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네가 가라 아세안”..여론 부글부글, 청와대 화들짝
“김현철, 네가 가라 아세안”..여론 부글부글, 청와대 화들짝
  • 김선미
  • 승인 2019.01.30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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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칼럼] 새해에 생각하는 말의 무거움과 무서움, 인생 2모작 대박 누군들 생각않나?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모든 재앙은 입에서 비롯된다는 걸 명심해야

‘아세안 가라’ 발언 파문,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경질

김선미 편집위원

“여기(한국) 앉아서 취직 안 된다고 ‘헬조’'이라고 하지 마세요. 신남방국가를 가면 ‘해피조선’입니다”

“지금 50~60대는 한국에서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거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ASEAN), 인도로 가세요”

“한국은 자영업자가 힘들다고 하는데 한국 식당들은 왜 아세안에, 뉴욕·런던에 안 나갑니까”

‘중동 가라’의 시즌2도 아니고 이게 무슨 말인가? 처음에는 가짜 뉴스 아니면 악마의 짜깁기인줄 알았다. 일부러 염장을 지르려고 작정을 한 발언이 아니고서야 이보다 더 무감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세안 가라고? ‘중동 가라’의 시즌2 등장인가

“헬조선 탓 말고 아세안 가라”는 일갈에서 영어의 몸이 된 전직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소환한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 시 취업난을 겪는 청년들을 향해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중동 가라”라고 말해 청년층을 넘어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현실과 동떨어진 “중동 가라”는 대통령의 발언에 영화 《친구》에 나오는 명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에 빗댄 “너나 가라, 중동”이라는 조롱조의 패러디가 봇물을 이루기도 했다.

국내서 취업 안 된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중동으로 가라’던 전직 대통령의 안이한 현실 인식에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번에는 “헬조선 탓 말고 아세안으로 가라”니 기함할 노릇이다. 그것도 현직 청와대 경제 참모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으니 그 파장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부적절한 발언, 분노의 뇌관이 되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겸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아세안으로 가라’며 베트남에서 영웅이 된 박항서와 한류 열풍을 예로 들었다.

“박항서 감독도 처음에는 구조조정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베트남에서 새로운 축구감독을 필요로 한다고 하니까 거기 갔지 않습니까? 거기에서 인생 이모작 대박을 터뜨리지 않았습니까.”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는 한글 시험이 열리는 날에는 시험장이 터져 나갈 정도로 한글을 배우려고 난리다. 그런(국문과 나와 취업이 안 된) 학생들을 몽땅 '한글 선생님'으로 보내고 싶다.”

그래서 아세안으로 가라고? 막말로 박항서는 아무나 되나, 동남아 취업 현실을 제대로 알기나 알고 하는 말인가.

인생 이모작 대박 누군들 꿈꾸지 않으리, 그러나 현실은?

여론이 부글부글 들끓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청와대도 화들짝 놀랐다. 현실과 동떨어진 신중치 못한 청와대 핵심 참모의 발언은 심각한 경기침체와 최악의 취업난에 속이 타들어가는 국민들에게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파문이 일파만파 번지자 김 보좌관은 “신남방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표현으로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쳤다”며 사과를 했다. 하지만 해명과 사과에도 불구하고 파문이 가라앉기는커녕 일파만파로 번지자 결국 김 보좌관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세안으로 가라’라는 발언 파문이 일어난 지 하루 만에 경질된 것이다. 참모들을 둘러싼 숱한 논란에도 사람을 잘 바꾸지 않는 청와대로서는 이례적으로 발 빠른 조치다.

지지율 하락과 20대와 50~60대의 지지층 이탈에 고심을 하던 청와대로서는 하필이면 20대 청년층과 50~60대를 저격한 꼴이 된 김 보좌관의 발언이 미칠 파장을 그만큼 심각하게 본 것이다.

들끓는 여론, 화들짝 놀란 청와대, 이례적으로 발 빠른 조치

물론 김 보좌관으로서는 억울한 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이나 청년, 자영업자들이 국내를 벗어나 보다 진취적인 마인드로 기회가 있는 아세안으로 눈을 돌리자는 이야기였는데 애초의 의도와 취지는 사라지고 뭇매를 맞았으니 말이다.

말에 책임을 져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항상 신중하게 발언하고 사안에 접근을 해야 한다. 사진은 KBS 화면 캡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도, 무거운 정책회의도 아니었다. CEO들이 모인 간담회 자리에서 신남방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예로든 비유와 사례가 나비의 가벼운 날개짓이 거대한 폭풍을 일으키듯이 국민적 공분을 사는 화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학자 출신인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국내 최고 일본경제 전문가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틀을 잡는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참모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김 전 보좌관의 낙마는 본인에게도 타격이지만 청와대도 핵심 참모를 잃게 되는 것을 넘어 국민적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악수가 아닐 수 없다.

부적절한 말이 나비효과처럼 거대한 폭풍을 일으키다

여기서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말의 무서움과 무거움이다. 자리가 높을수록 책임이 무거울수록 말의 무게 역시 무거워져야 한다. 말의 무거움보다 더 무겁게 여겨야 할 것이 말의 무서움이다.

새해다.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모든 재앙은 입에서 비롯된다는 ‘화생어구(禍生於口)’ 입은 재앙의 문이라는 ‘구화지문(口禍之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는 ‘설참신도(舌斬身刀)’와 같은 사자성어를 가까이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평범한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말로 짓는 죄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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