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위해 인술 펼치는 행동하는 지성인”
“고향위해 인술 펼치는 행동하는 지성인”
  • 신도성 기자
  • 승인 2011.12.15 10:4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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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약국 김승웅 대표... 후배양성과 봉사활동에 힘 기울여

   금남약국을 운영하며 고향을 지켜온 청송 김승웅 박사가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인술을 펼치고 있다.
"선대부터 살아온 대평리가 우여곡절 끝에 나라 행정의 중심지로 태어나는 것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고향 금남면에서 나고 자라 40여 년째 약국을 경영하며 살아온 청송(靑松) 김승웅 박사(69)는 세종시를 둘러싸고 벌어진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토로했다. 김 박사는 청송이라는 호 이름처럼 푸른 소나무로 고향을 지켜오고 있다.

김 박사는 1942년 연기군 금남면 박산리에서 3남4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금남초등학교(31회)와 금호중학교(5회)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 인창고등학교와 경희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26세 되던 해에 약사자격을 따냈다.

그런데 그 해 고향에서 사업을 하던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자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낙향한 김 박사는 금남면 용포리 193번지 현 위치에 금남약국을 개설했다.

해방되던 해 홍수로 대평리 마을 떠내려가 용포리로 이전

“외지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요. 원래 대평리는 일제시대 현재의 건설청 주변에서 마을이 번창했었습니다. 내가 네 살 때인 해방되던 해 금강에 큰 홍수가 나서 마을이 폐허로 변하자 지금의 용포리로 마을이 옮기게 된 거예요.”라고 밝히는 김 박사는 대평리가 나라 중심의 큰 도시로 자리잡음을 기뻐했다.

당시 홍수로 폐허가 된 곳에서 마을사람들은 밭을 만들어 특수 농작물로 시오리(참외과 식물)와 무 등을 농사지어 단무지를 만들어 대전과 군 부대에 납품하며 수익을 올렸다. 정부시책으로 밭을 논으로 바꾸면서도 원주민들은 열심히 살며 자식들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결과 각계에서 금남면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다. 근세 대표적인 인물로는 자유당 때 진헌식 충남도지사(내무부장관도 역임), 공화당 때 성낙서 충남도지사, 노명우 충남도지사 등이 있다.

고향의 지킴이로 금남면의 산 증인으로 활동한 김 박사는 토박이 친구들이 아직도 많이 살고 있는데, 객지 사람들이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토박이 친구들이 모여 상의한 끝에 원주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믿고 맡길 수 있는 ‘(가칭) 금남원주민조합’을 설립키로 뜻을 모아 조만간 창립 발기인 총회를 열 예정이다.

노무현 정부 때 안이 이루어진 세종시 개발안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수정안이 나왔을 때 원주민들은 마음 고생이 너무 심했다. 심지어 지역 출신 총리나 장관들은 물론 정치인등 지도층 인사들이 “대기업 공장이 들어와야 주민들이 잘 산다”고 마을 사람들을 회유했다.

하지만 원주민 마을사람들은 똘똘 뭉쳐 항거했다. “조상의 선대 무덤을 비롯해 농작지와 집을 내줄 때, 공장 지으라고 준 게 아니다”며 원안대로 행정중심도시 추진을 강력히 요구했다.

“공장 지어준다”는 각종 회유에도 주민들 흔들리지 않아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던가. 이명박 정부는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 종전의 수정안을 철회하여 세종시는 미래 한국의 중심 수도로서의 기능이 기대된다.

김 박사는 “어떻게든 원안대로 되어서 마음이 편하고, 땅을 내준 의미와 보람을 느낀다”며 “원주민조합이 결성되면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이 피해가 없도록 권익을 보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후덕한 인상에 활달한 성격의 김 박사는 그동안 다방면에서 활동을 벌였다. 고향에서 현재의 약국 건물 터에 한옥을 구입하여 약국을 개설한 김 대표는 74년 건물 200여 평의 대지에 3층 건물을 지었다. 당시 금남면에서는 가장 큰 건물로 인기를 끌었다. 김 박사는 어려서 부친이 간으로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약사를 지원하여 대학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간에 관련한 것으로 취득하여 ‘간 박사’로 소문이 나있다. 지금도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김 박사는 또한 올해 60주년을 맞는 금호중학교 총동창회장을 맡아 장학기금 조성사업으로 후배 양성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금남약국의 한 견에는 20여 년 전 유명한 서예가가 썼다는 초서체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藥學智的進碩士 金醫名勝進時雄(약학지적진석사 김의명승진시웅:약학의 지혜로 석사의 경지까지 갔으니, 김씨의 의술이 이름을 날리어 때에 맞추어 영웅으로 나아간다)의 내용은 이미 김 박사의 봉사하는 삶을 예고한 글이다.

김 박사는 또한 1986년 금남신협을 창설하여 고향의 자금을 잘 운용하기도 했고, 충남아마튜어레슬링협회 회장, 충남약사회 회장을 역임하는가하면 국제라이온스클럽 309-2지구 부총재 등도 맡아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살라”고 가르쳐

자식들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살라”고 권고한다는 김 박사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인해 갖게 된 약사의 직업에 아주 만족한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중매로 만난 대전 출신의 동갑내기 부인 손길순 여사와의 사이에 2남2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우리나이로 70살의 연세임에도 피부가 너무 맑고 윤기가 나는 김 박사에게 기자가 건강 비결을 묻자, 7가지로 요약해 대답했다.

첫째로, 밥을 먹는 데 현미와 콩을 넣어 주식으로 한다.
둘째, 신선한 야채를 많이 먹는다.
셋째, 적당한 운동을 매일 30분에서 1시간 한다. 김 박사는 유산소 운 동으로 런닝머신을 한다고 밝혔다.
넷째, 항면역식품(버섯반찬, 해조류, 야채 등)을 먹는다.
다섯째, 절제(節制)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음하지 않고 담배는 전혀 안 피우고 저장식품이나 가공식품은 절대 안 먹는다.
여섯째, 물은 약알칼리수(PH 6.3정도)를 마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루드루마을의 광천수처럼 깨끗한 물만 잘 마시게 되면 건강이 매우 좋아진다는 것이다.
일곱째, 하루에 20~30분 씩 햇볕을 쬐어라. 햇볕에는 비타민 A, D를 생성하는가 하면 각종 바이러스를 죽이는 살균력이 대단하다. 따라서 얼굴이나 배, 관절 부위에 수건 등으로 가리고 햇볕을 쐬면 좋다.

김 박사는 자신의 7가지 건강비결만 잘 지키면 건강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스승을 찾아 나선 문외한이 인생의 고수로부터 대단한 비법을 전수받은듯 희열을 느꼈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고 했던가. 그저 기쁘고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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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딱 2019-11-21 11:14:34
와 정말 멋있으시네요 저도 사실 꿈이 약사는 아니지만은 멋있네요

박경자 2012-02-01 16:46:37
금남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유명하세요~
온화하신 성품과 금남에 없어서는 안될 귀한분이세요~~~

스톤 2012-01-08 18:16:38
40세 같네요...

금남사람 2011-12-15 12:08:51
금남을 지키는 분이군요. 건강비결도 좋은 정보가 되었고 정으로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더 뿌듯합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