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이야, 도둑놈이야"
"나는 말이야, 도둑놈이야"
  • 임효림
  • 승인 2019.01.24 0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효림칼럼] 금고털이...어느 팔십노인의 인생 회상

ㅡ금고털이ㅡ

나는 말이야 도둑놈이야. 은행 금고와 돈 많은 부자의 금고를 열었는데, 내가 연 금고가 수십 개 그중에 아마 은행 금고가 20여 개, 부잣집 금고를 연 것도 열대여섯 개는 되지.
도둑질을 하는데도 도가 있다고. 먼저 탐욕을 버려야해, 금고를 열고 돈을 가져 나올 때는 돈이 금고 안에 아무리 많아도 사전에 정해 놓은 액수 외에는 가지고 나오질 않아요. 금고 안의 돈을 보고 탐욕을 내어 정도 이상을 가지고 나오면 짐이 무거워 위험해 지지. 따라서 도둑에게 탐욕은 바로 자멸이야.
이십대 중반에 시작해서 오십중반까지 삼십여 년 일 년에 한두 개의 금고를 열었어.

어떻게 하여 도둑이 되었느냐고? 그러니까 나는 아홉살 먹은 어린 시절에 밥이나 안 굶고 살려고 금고를 만드는 집에 머슴으로 들어갔지. 물론 세경 같은 건 없었어, 아홉살 짜리가 뭘 하겠어, 심부름이나 하고 청소나  하고 밥을 얻어 먹는 거지. 하지만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워서 스무 살이 넘으면서는 최고 일류 기술자가 된 거야. 내가 남다른 눈썰미가 있거든.

어느 날 퇴근길에 하얀 모시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 나를 잠간 보자고 하드라고. 그렇게 만나서 그 노인에게 도둑질 하는 것을 배웠어. 금고를 만드는 놈이니까 금고를 여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 다만 그 노인에게 배운 것이란 도둑질을 잘 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계율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어.

첫째, 탐욕심을 완전하게 극복해야 한다고 하셨지. 과도한 욕심이 도둑질의 실패를 가져오기 때문이지.
둘째, 철저하게 혼자서 하라고 하셨어. 공범이 있으면 비밀유지가 안되며 증거를 많이 남겨 잡히게 된다는 것이야.
셋째, 도둑질한 사실은 철저하게 비밀로 해야 한다고 했어. 부모형제, 처자권속 그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된다고 했지. 완전 범죄는 비밀유지에 있다고 하셨어.
넷째, 소비를 철저하게 절제해야 한다고 하셨지. 훔친 제물로 낭비를 하고 사치를 하면 안된다는 뜻이지. 훔친 돈으로 흥청망청 돈을 물쓰듯이 하면 꼬리가 밟히게 되기 때문이야.
다섯째, 그만 둘 때를 알아야 한다고 하셨지. 나이 오십오세가 넘으면 후계자를 키워 넘겨주고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하셨어. 나이가 들면 힘이 달리고 판단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겁이 많아져 실수를 하기 때문이야.

스승이 가르쳐 준 법도를 철저하게 지켰지. 왜냐고? 도둑질을 하는 것이 바로 도를 닦는 수행이니까. 그래서 한 번도 잡히지 않았어. 완벽한 완전범죄지. 지금은 내게 배운 제자가 역시 잘 하고 있어.

팔십 다섯이라는 김노인은 흡사 나한 같은 눈섶을 하고 내게 고백 했다. 자신의 많은 재산은 모두 은행을 털어 모은 것이라고.

<효림스님은 불교계에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스님으로 불교신문 사장, 조계종 중앙 종회의원, 실천불교 전국 승가회 공동의장을 거쳤다. 2011년 세종시 전동면 청람리로 내려와 경원사 주지를 맡고 있다. 세종시에서는 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을 역임하는 등 시민운동 참가를 통해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