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정고개'에서 태극기 나눠주며 "만세 소리나면 동참"
'갈정고개'에서 태극기 나눠주며 "만세 소리나면 동참"
  • 윤철원
  • 승인 2019.01.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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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의 '세종 독립만세운동'] ②아우내보다 19일 앞선 전의(全義) 만세시위...충청권서 4번째 시작
함께 거사한 지사들, 일부는 독립유공자 인정-아직도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여전히 묻혀 있어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나라를 잃고 10년 동안 실의 빠졌던 우리 겨레가 일제로 부터 독립에 대한 열망을 한 순간에 표출했던 이 사건이야 말로 우리역사에서 국민이 진정한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대내외에 천명한 첫 장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역사의 물결 속에서 세종시 지역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만세운동이 전개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세종의 소리’ 지면을 통해 6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연재는 ⓛ한눈에 보는 세종시 지역 3.1운동 ②전의면 ③조치원읍 ④금남,장군면 ⑤연기,연서,전동,소정면 ⑥연동,부강면 순으로 게재한다./필자 주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목격한 이수욱은 3월 13일 장날을 맞아 목판으로 태극기 150매를 제작, 갈정고개에서 나눠주고 만세소리가 나면 함께 가담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진은 태극기를 나눠준 갈정고개

흔히 3.1운동하면 유관순 열사와 아우내 장터를 떠올린다. 그런데 전의 만세시위는 이보다 19일이나 앞선 3월 13일 이루어 졌다.

일제의 『조선소요사건 일람표』에 의하면 충남에 총65회의 만세시위가 있었는데 그중 네 번째로 이른 시기에 일어났다. 충북에서 가장 빠른 괴산 동서부락 시위가 3월19일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충청권에서도 4번째임을 알 수 있다.

전의 만세 시위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의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이수욱(李秀郁)지사이다. 그는 1919년 3월 3일 치러질 고종황제 인산(因山, 황제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2월 28일 상경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3월1일 만세운동의 현장을 목격하고 감명을 받아, 귀향하면 전의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한다.

3월3일 황제 인산이 끝난 뒤 귀향한 그는 3월 6일 같은 동네에 사는 추경춘(秋敬春)에게 서울에서 본 만세운동의 광경을 이야기하고 전의 만세운동을 제안하여 동의를 구했다. 3월 7일에는 박성교의 집에서 추득천, 윤자벽,윤자훈, 윤상억, 김재주 등과, 다음 날인 3. 8일에는 김병옥의 집에서 정원필, 이장희, 이광희 등과 만나서 상의하여 함께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전의 장날인 3월13일을 거사 일로 정한 후 목판으로 태극기 150매를 제작하였다. 이들은 거사 당일 오전 7시부터 전의 시장으로 넘어가는 ‘갈정고개’에서 장보러 가는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품속에 잘 간직하였다가 점심 무렵에 만세소리가 선창되면 호응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이윽고 12시 40분이 되었다. 이수욱은 전의장터 한 복판에서 서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민국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시장 내 수많은 장꾼들이 호응하여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장터에서 만세를 부르던 군중은 이수욱을 따라 읍내를 행진하면서 만세를 외쳤다. 이렇게 시작된 행진은 전의역과 우편소를 지나 전의공립보통학교(전의초등학교)에서 멈췄다.

이날 있었던 상황을 1919년 3월 13일자 매일신보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13일은 마침 전의 장날이 되어 이른 아침부터 끊임없이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고로 경찰에서도 엄중히 경계 중이던 바, 정오 쯤 되어 자연 어느 곳으로부터 약 일백 사오십 명이 손에 종이로 만든 한국국기를 내두르고 “한국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가를 돌아다니기를 시작하여 우편소 앞에서 공립보통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서 수업중인 그 학교 생도들을 불러 낼 작정인데 이때 용산으로 부터 철도를 엄호할 목적으로 파견되어 있는 보병 약 20명이 출동하여 헌병주재소원과 협력하여 수괴자 10여명을 포박하고 점차로 해산케 하였는데 밤에는 더욱 경계를 엄히 하고 인심은 흉흉하다는 급보를 접하고 조치원 헌병 분견소에서 응원대를 파견하였는데 별로 사상자 등은 없다더라』

전의장터 만세운동은 아우내보다 19일이나 앞 섰으며 충청권에서는 4번째 였다.

이날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수많은 사람이 부상당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이를 증명할 만한 기록이 없는 것이 참으로 유감이다. 여하튼 이날 체포된 인사는 이수욱을 비롯해 모두 17명인데 4월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룬 인사가 있는가하면 일부는 태형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여 이수욱, 추경춘, 추득천 지사 등 3명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고, 윤상억, 윤상원, 윤상은, 윤자명, 윤자벽, 윤자훈, 이광희, 이장희, 이규영, 이상건, 이수양, 정상복, 정원필 지사 등 13명에게는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그러나 함께 만세운동을 추진했던 김재주 지사는 징역 6월의 옥고를 치룬 기록이 있음에도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 못했다. 이처럼 일제의 재판기록과 수형사실이 있음에도 서훈을 받지 못한 3.1운동 애국지사가 세종시 지역에서만 5명이나 되는데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국가에서 이분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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